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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an 16. 2024

제주에 오면 반드시 오는 그곳

한라생태숲~절물자연휴양림(한라산둘레길)

나는 숲을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숲이 바로 절물자연휴양림이다. 눈이 많이 온 겨울이었고, 나는 혼자 절물자연휴양림을 왔었다. 그리고 하얀 눈과 초록빛 침엽수림이 어우러져 환상의 풍경을 보여주는 그곳 절물에서 나는 숲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현실의 세계가 아닌 듯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천상세계에 발을 디딘 듯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숲은 나에게 고귀한 신의 땅이자 따뜻한 자연의 품에 안기는 평화를 선물해주는 곳이 되었다.     


오늘은 한라생태숲에서 길을 출발한다. 그곳에서 숯모르숲길을 거쳐 편백숲길에서 산림욕을 즐기고, 절물자연휴양림의 장생의 숲길을 걸을 계획이다. 이곳은 한라산 둘레길이기도 하다. 한라생태숲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숯모르숲길을 들어가는 입구 표지판이 있다. 숯모르란 ‘숯을 구웠던 등성이’란 뜻의 옛 지명이다.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옛 숯을 굽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숲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숲길이다. 


숲길 2.4km 지점에는 절물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편백숲길이 있는데, 이곳의 편백나무들의 울창함이 이 길의 포인트이다. 여름에 이 길을 걸으면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청명함을 느끼며 시원하게 숲을 즐길 수 있다. 편백나무 숲의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키큰 편백나무의 시원함에 반하게 되고, 시간이 멈춘 듯 제대로 신선놀음을 할 수 있다. 오늘은 겨울이었지만 낮 최고 기온이 17도 까지 올라 따뜻한 겨울 숲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겨울의 햇빛은 귀하다. 그리고 제주의 겨울은 그 귀한 햇볕을 따뜻하게 누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우리 몸의 비타민D는 햇볕을 쬐야만 생성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번 만들어진 비타민D 는 우리 몸에 저장되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뼈의 3분의 1쯤은 제주의 햇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겨울, 여름마다 제주를 찾아 숲의 햇볕은 담뿍 쬐고 가기 때문이다. 여름 제주의 숲은 시원하고, 겨울 제주의 숲은 따뜻해서 좋다. 그래서 햇볕을 내 몸 한 가득 저장해 비타민D가 만들어지고 내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기분이다. 제주에서 받은 에너지로 나는 또 1년을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다.           


개오리오름, 샛개리오름 등 작은 오름을 지나 드디어 절물휴양림이 장생의 숲길로 들어선다. 장생의 숲길은 낙엽활엽수림과 50년 생 삼나무림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숲길이다. 겨울이라 낙엽활엽수림은 잎을 떨구고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빛을 남기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다. 장생의 숲길은 해발 약 600미터에 위치해 공기가 남다르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 청명하고 깨끗한 숲의 피톤치트가 온 몸을 가득 채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또한 급경사 없이 비교적 평평한 숲길이기 때문에 천천히 숲을 음미하며 걸을 수 있다. 총 길이 11.1.km로 약 3시간이 30분이 소요되지만 중간중간 숲에 정신이 팔려 쉬다 걷다 하다보면 더 걸릴 수도 있다. 절물은 하루종일 숲의 품에 안겨 숲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놀이터이다.     







숲에서 나는 자주 눈을 감는다. 때로는 가는 길을 멈추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눈을 감기도 한다. 그러면 들리지 않던 숲의 작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풀 벌레가 날아다니는 소리, 처음 듣는 아름다운 새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사삭 거리는 소리, 노루가 뛰어가는 소리, 숲이 고요하게 숨쉬는 소리. 그 소리에 내 심장박동을 조율하면 나도 숲이 되어 고요하게 숨쉬게 된다. 때로는 눈을 감았을 때에야 들리는 것, 보이는 것이 있다. 그리고 숲은 나에게 눈을 감고 세상을 더 잘 느끼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탐하는 감각의 욕망을 멈추고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법, 생각을 멈추고 영혼의 심장소리에 귀기울이는 법. 숲은 나에게 존재 그 자체로 가르쳐 준다. 그숲은 나에게 말없는 스승이자 아늑한 생명의 품이다.           







장생의 숲길 중간에는 절물오름을 오를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나는 장생의 숲길을 모두 걷지 않고, 절물오름을 탐방하기로 한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은 조금 가파르지만 조릿대와 구불구불한 제주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아름답다. 그 풍경에 취해 걸어 올라가면 시원한 한라산과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머금고 푸근하게 서 있는 한라산, 그리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들과 바다. 어쩜 이렇게 완벽하게 어울리는지. 이곳에 서면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그냥 나도 자연의 일부로 살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살려지고 있다는 감각. 자연에 오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의지로 삶을 산다고 착각하고 살았지만 사실 나는 살려지고 있다. 삶이 스스로 살아가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높은 곳에 오르면 그런 감각을 느낀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발버둥치고, 인위적으로 노력할 필요 없다. 그냥 삶의 기쁨과 살아있음의 행복을 만끽하며 즐겁게 존재하면 된다. 노력하고 싶으면 노력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으면서 그냥 삶이 알아서 펼쳐지도록 내버려 둔다. 그래, 그래서 나는 숲이 좋다. 이런 것을 말없이 알려주는 스승이 세상에 또 무엇이 있을까.  

    

절물오름을 내려와 삼나무들이 빽빽한 산림욕장 평상에 누웠다. 절물에서의 마지막 시간, 하늘을 바라보고 온 몸을 쭉 펴고 깊게 숨을 내쉰다. 아, 행복하다. 들리는 건 새소리와 바람소리뿐. 온 몸에 기분좋은 노곤함이 퍼지며 이대로 스스로 잠들어버릴 듯 편안하다. 제주에 오면 반드시 순례하듯 꼭 오는 절물에서의 마지막 시간. 내가 이 숲을 매번 찾게 되는 이유는 숲이 나에게 주는 가르침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 없이 나에게 삶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고마운 스승. 그 스승이 언제나 이곳에 존재하며 나를 기다려준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뭉클해진다. 나무를 두 팔 벌려 가슴 가득 안으니 내 안에 고마움과 사랑이 가득 가득 넘친다. 이제야 나의 쉴 곳, 나의 스승, 내가 태어났고 돌아갈 그곳, 나의 고향을 찾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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