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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Feb 04. 2024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를 걷고 싶다면 경주다

경주 대릉원, 첨성대, 계림, 월성,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오늘은 경주 시내권의 대릉원, 첨성대, 계림, 월성,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모든 유적지들이 가까이 몰려 있어서 코스를 짜기에 좋았다.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걷기로 한다. 여행 오기 전 <걷기를 생각하는 걷기>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밖으로 나가 해가 질때까지 걷고 싶어진다. 걷기를 사랑하는 나에게 이 책만큼 걷기를 부채질하는 책도 없을 것이다. 그래, 오늘은 마음껏 걷고 마음껏 경주를 느끼자.




첫번째 목적지는 대릉원. 대릉원은 신라 시대의 고분군이다. 고분은 모두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시대만의 독특한 무덤군이다. 총면적은 약 181평으로 신라시대의 왕, 왕비, 귀족 등의 무덤 50기가 모여 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무덤은 산에 올라가면 조그맣게 솟아있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대릉원의 무덤(고분)들은 마치 제주의 오름처럼 크기가 거대하고 평지에 볼록 솟아 낯설음을 준다. 





왜 신라시대의 왕과 귀족들은 이런 무덤을 만들었을까. 책 <일상이 고고학, 나혼자 경주여행>에 따르면 신라가 아직 왕권이나 국력이 약했던 시절, 고구려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헤 서로 동맹을 맺었다가 적이 되었다 하며 조금씩 세력을 넓혀간다. 약소국이었던 신라는 고구려의 도움을 얻어 세력을 키우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며  왕권이 강화되고, 강해진 권력을 대내외적으로 크게 과시하게 위해 왕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거대한 무덤군을 만들었다라고 한다. 이후 힘이 강해진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게 되고 백제와 연합하여 나제 동맹을 맺고, 마지막 마립간이었던 지증왕시대부터는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이라는 칭호를 쓰기 시작했다 한다. 법흥왕이 즉위한 후에는 불교를 공인하고, 금관가야를 병합하여 백제와 힘을 합쳐 고구려를 격파하여 한강까지 진출하게 된 신라. 지금은 거대한 무덤들만이 남아 그들의 화려했던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




여러 고분들 중 유일하게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천마총을 방문했다. 천마총은 발굴 조사를 하는 도중 금관, 팔찌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천마)그림이 출토되어 천마총이라 불리게 되었다. 천마는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으로 다리 앞 뒤에 고리모양의 돌기가 나와 있고 서기를 내뿜는 입의 모습은 신의 기운을 보여주는데, 동물의 신 흰색의 천마가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 나르는 역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상의 동물 천마가 죽은자의 영혼을 태우고 새로운 세계로 간다고 믿었다. 천마총 안의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보물들은 모두 그러한 믿음을 보여준다.




천마총



천마총을 둘러보고 대릉원을 나와 첨성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죽음 이후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어떤 죽음을 만들고 싶은가. 대릉원은 나에게 죽음과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게 했다. 화려했던 과거 신라시대의 왕족과 귀족들의 권위가 무덤으로 남아 우리에게 역사적 사실을 증언해주듯 우리는 죽음 이후에 무언가를 남길 수도 있다. 나는 죽음 이후에 남기고 싶은 것이 있는가.

 죽으면 내가 창조한 세계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물질이나 권력 등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나는 오로지 사랑만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살아있을 때 했던 사랑과 자비의 행동들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변화한 세계안에서 누군가의 세계 또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라는 무거운 자아와 무덤 대신 ‘사랑’이라는 존재상태로 삶을 살고, 마무리하고 싶다. 언젠가 죽을 때 ‘아, 멋진 삶이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세계를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멋지게 살고 싶다.





첨성대 앞에서의 사색을 마치고 내가 향한 곳은 월성이다.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던 도성이다.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년)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한다. 성의 동, 서, 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고,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세월의 흐름에 사라지고 나무들과 돌로만든 석빙고, 성의 흔적만이 남아 그 시절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 이 몸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풍경도 언젠가는 세월에 의해 조금씩 희미해지다가 사라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이 또렷하게 인식되며 찰나의 순간 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나 자신의 한 순간을 알아차린 순간. 그 순간이 하염없이 안타깝다가도 나를 자유롭게 한다. 인생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그리고 지나간 순간은 이미 사라져 날아가 버렸다. 그러니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을 명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매 순간 깨어있는 수행이고, 그 수행을 통해 자유와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이 찰나 나는 어디에 있고,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3가지를 스스로에게 매 순간 묻자.



월성에서 나와 동궁과 월지를 향했다. 신라 왕궁의 별궁터인 이 곳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 진귀한 새와 짐승, 화려한 연못과 크고 작은 섬들이 아름다웠을 별궁. 사실 이곳은 밤의 모습이 더 화려하고 유명한 곳이라 낮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마치 화장을 지운 맨얼굴의 여인을 보는 듯 전혀 다른 모습의 동궁이다.




월성을 나와 들을 가로질러 미탄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분황사를 방문해 모전석탑을 만난 후 바로 앞의 경주 황룡사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황룡사는 신라 시대 대표사찰로 그 면적이 불국사의 8배였다고 한다. 무려 553녀부터 645년까지 100여년 가까이 걸려 만들고 증축하여 완성한 사찰이다. 신라삼보라 불리는 세 가지 신라 대표 보물 중 두 개인 장육존불, 9층탑이 황룡사에 있었고, 새들이 진짜 나무 인줄 알았다고 하던 솔거의 금당벽화도 이곳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다. 황룡사지는 그것들이 존재했던 흔적만 남아있고, 넓디 넓은 들판만 하늘과 맞닿아 펼쳐져 있다. 황룡사지의 너른 들판에 앉아 잠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에 변하지 안는 진리가 딱 하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찬란했던 신라의 역사와 왕의 권력이 지금은 무덤과 탑과 터로만 남아 경주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한 시간을 꿈꾸며 경주의 풍경을 속을 걷는다. 




모든 것은 태어나 살다 죽고, 변화한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실을 마음에 새기면 인생사에 그리 목숨걸 필요가 없다는 것을 통감하게 된다. 한시대를 이끌었던 신라의 역사도 세월속에 사라지고, 자신을 부처라 여기며 이렇게 거대한 사찰을 만들었던 절대 권력의 왕도 사라져 터만 남았다. 세상사 그 무엇도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아웅다웅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덤덤하게 그러나 웃으며 살고 싶다.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으니 모든 순간이 자유롭다. 모든 것이 변화하니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지금 내 발 밑에 있는 이 너른 들판에 작은 풀 하나, 작은 바람 하나, 작은 햇살 한줄기가 모두 소중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를 걷고 싶다면 경주다. 경주를 걸으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모든 것은 변하고 만다는 진리를 온 몸으로 느낀다. 매 순간 하늘과 바람을 음미하며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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