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걷기 수업> 알베르트 키츨러
당신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나는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을 때 가장 행복하다.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순간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두 손에는 아무것도 없이, 어깨에도 아무것도 매지 않고 하염없이 길을 걸을 때이다. 그 순간 나의 온몸의 세포는 마치 어린아이의 어리디 어린 갓 태어난 세포들처럼 팡팡팡 터지고, 혈액은 힘차게 순환하며,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가 아이의 얼굴이 된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나는 분명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알베르트 키츨러의 책 <철학자의 걷기 수업>은 그런 걷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걷기의 즐거움이란 목적 없음을 향유하는 것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걷기란, 특히 숲, 해변, 산 등의 자연을 걸어 여행하거나 긴 산책을 하는 일 혹은 순례길을 걷거나 여러 날에 걸쳐 트레킹을 하는 일을 뜻한다. 나는 간혹 ‘도보 여행’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모든 걷기의 공통점은 자연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살피게 되며, 걷기가 선사하는 리듬을 고스란히 느끼고,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을 흐르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형태의 걷기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이렇게 걷는 동안 우리는 어떤 목표도 추구하지 않는다.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 열자는 “어딘가를 걷는 일의 즐거움은 바로 목적 없음을 향유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 <철학자의 걷기 수업> 알베르트 키츨러
20대의 한창나이에 해외에 배낭여행을 다닐 때, 나는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줄 착각했다. 그러나 수많은 나라들로 떠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한결같이 느꼈던 것은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 여행을 하고 반추한 후에 나는 그 당연한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걸을 때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연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줄지어 가는 개미떼들을 물끄러미 보기도 하고, 바람에 사락거리는 나무들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나의 호흡 소리를 따라가 보기도 한다. 그 안에는 걷기가 선사하는 행복한 리듬이 있다.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은 한 군데 멈춰있지 않고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바다가 되어 내 안을 가득 적신다. 방안의 책상에 앉아하는 생각들은 흐르지 못하고 벽에 부딪쳐 계속 같은 곳을 맴돈다. 그러나 걸으며 떠오른 생각들은 끊임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 나가 내 세계를 더욱 넓혀준다. 그래서 요즘에는 펜과 노트를 들고 숲을 걷는 것이 좋다. 흘러넘치는 생각들을 하나 둘 주워 담아 그것들을 글로 쓰다 보면 나의 생각을 눈에 볼 수 있는 재밌는 놀이에 빠질 수 있다. 흘러넘치는 생각들을 그물로 하나 둘 주워 담아 글로 쓰다 보면 내 안의 막혀있던 것들이 줄줄줄 막힘없이 흘러나온다. 그 쾌감이 행복하다.
정말 이런 형태의 걷기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내가 하는 행동들 중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행동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항상 무언가 결과를 위해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걷고,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행동한다. 그러나 걷기는 그런 모든 목적 지향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몇 안 되는 행위 중 하나이다. 먹을 때조차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유튜브나 영상을 보고, 일을 하는 것도 돈을 벌기 위해 하고,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도 다음에 일어나 출근하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걷기는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된다. 걷는 동안 나는 어떤 목표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냥 걷기 위해 걷는다. 걷기가 좋아 걷는다. 걸으면 반드시 행복해진다. 무언가를 하는 동안 어떤 목표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경험이 나에게는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 새삼 깨달았다.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고, 목표를 추구하는 나에게 걷기는 목표에 대한 추구 없이 그저 그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이 못 견디게 좋다. 언젠가는 나의 모든 행동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목적 없음을 향유하는 삶. 걷기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하는 나에게 아주 좋은 훈련이자 배움터이다. 걷기를 통해 나는 목적 없음을 향유하는 삶을 수련하고 있다.
언젠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좋아 일어나고, 저녁에 잠드는 것은 잠드는 것이 좋아 잠들고, 모든 행동이 그 자체로 좋아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삶. 목적 없이 무언가를 그 자체로 향유하는 삶. 걷기를 통해 나는 그런 삶을 자세를 수련한다.
먹을 때는 먹는 것에만 집중하기 위해 유튜브나 영상을 보지 않는다. 오로지 먹는 행위에만 집중한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완전히 마음을 열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상대에게 오로지 집중한다.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대신 그의 전 존재를 받아들이며 듣는다.
일을 할 때는 내가 일이 되어 온전히 그 일에 온정신을 집중한다.
글을 쓸 때는 겉에 떠다니는 부유물이 아닌 나의 밑바닥까지 손을 뻗어 그 안에 있는 것을 건져내 표현하는 것에 몰입한다.
무언가를 할 때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 몰입한다. 그러면 목적이 없어지고 목적 없음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걷기는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는 소중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