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4시 44분 기상. 약 1시간 30분 동안 모닝 드로잉.
오늘은 물건에 물감을 칠하고 찍어서 자국을 남기는 방법을 써봤다. 나뭇가지와 패브릭, 플라스틱 재질의 물건 등에 물감을 바르고 배경에 찍었다. 붓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표현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아주 얇은 펜으로 테두리를 스케치하고 내부의 옷이나 피부 표현 등을 찍어서 채우면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은 매일 아침 모닝 드로잉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초등학교 이후에는 그림 그리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마음 한 구석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고, 그리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림 그리는 것이 즐겁지 않았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림을 그리려면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도 아니고 그림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 생각 때문에 그림이 즐겁지 않아 졌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그림 그리는 것은 괴롭고 즐겁지 않은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러면서도 무의식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모순적인 욕망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그림 그리는 것이 즐겁지 않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다. 의식이 무의식을 속이기 위해 논리적인 말들로 무의식을 설득한 것이다.
"직업이 아닌데 그림 그려서 뭐하게."
"세상에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널렸어. 네 까짓게 그림 그려봤자지 뭐. 뭐 대단한 게 나오겠어?"
"그림 그린다고 뭐가 달라지니? 차라리 실용적인 목적이 있는 다른 일을 해"
"너는 예술가가 아니야. 타고난 재능도 없고. 그런데 무슨 그림이야."
"엄청난 그림을 그릴 것이 아니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
등등. 나의 의식은 매우 똑똑했기 때문에 그림을 안 그려도 되는 이유를 100가지도 넘게 더 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세상엔 다른 할 것들, 놀 것들, 재미있는 것들이 널려있었다. 매일 쏟아지는 TV와 넷플릭스의 드라마, 극장의 영화들, 유튜브의 영상들, 서점의 신간도서들, 공연과 전시들, 매일 새로 나오는 앨범과 음악들, 뉴스들... 그것들을 다 챙겨보기에도 시간은 모자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무의식에서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욕망이 계속 느껴졌다. 아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생산하며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누군가 만든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무언가를 생산하고 만들어 창조하고 싶다는 욕망. 그 욕망이 나를 그림이라는 세계로 이끌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디오에 음악을 재생시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림 그리기'로 바뀐 것이다. 생각만 하다가는 영영 시작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 시간을 그림 그리기로 쓰기로 한 것이다. 퇴근 후에 혹은 시간이 남으면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면 나는 영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또 무의식에만 꽁꽁 그 욕망을 숨겨두었을 것이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바로 저지르고 바로 지금 시작하기. 무언가 행동으로 옮겨보기. 내가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그림 그리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 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도 그 법칙은 요긴하게 쓰인다.
생각만 하지 말고 바로 뭐라도 지금 당장 행동해보기. 저질러보고 시작해보기. 그 작은 시작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예측할 수 없어서 흥분되고 기대된다. 하얀 도화지 위에 붓을 대기 전까지 그리고 붓을 내려놓기 전까지 어떤 그림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어서 그림 그리기가 재미있고 흥미롭다. 삶도 그렇다. 삶이라는 여행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하나도 알 수 없기에 재미있다. 나는 살아있기에 삶이라는 미지를 기대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림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