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프로젝트화하기 당신은 지금 현재 남을 통해 질문을 해결하고 있나요, 나의 질문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있나요?
- <인문학 습관> 윤소정 지음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남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를 통해 둘 다 얻는다. 남을 통해 얻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이다. 책을 읽으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야나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얻는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두리뭉실하게 떠오르는 생각의 흐름을 눈에 보이는 글로 정리하면 생각이 형태를 갖추면서 나름의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요즘 나의 가장 큰 질문은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나 불교의 마음공부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나'라는 것이 실제로는 진짜 '나'가 아니라 에고, 가짜 나,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몸과 마음을 가진 나가 내가 아니라 한 발짝 신체에서 떨어져 나와, 마음에서도 분리되어 '나'를 바라보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무대 위에 서서 연기에 빠져 그것이 연극인지도 모르고 연극이 진짜라고 믿어버린 배우의 입장이었다. 지금은 무대에서 내려와 그것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입장이 되었다. 무언가 심각하거나 아등바등 매달리는 일이 적어졌다. 모든 것이 삶이라는 한바탕 연극에서 벌어지는 흐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모든 감정, 생각, 느낌들이 사실은 이 마음 하나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깨달음. 그 깨달음은 "진정한 나는 없다.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만들어낼 뿐이다."라는 잠정적인 답을 나에게 주었다. 사과를 먹는 나, 글을 쓰는 나, 일을 하는 나, 화를 내는 나, 행복해하는 나, 웃는 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과를 먹는 행위, 글을 쓰는 행위, 일을 하는 행위가 있을 뿐이다. 거기에 '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이 나라는 환상을 붙들고 지금까지 믿어왔을 뿐. 그 어떤 것도 사실은 '나'는 아니다.
불교의 참선, 명상, 수행방법에는 이런 것이 있다. 무언가를 할 때 일상을 살면서 지금 이 일을 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다. 사과를 먹고 있을 때는 사과를 먹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글을 쓸 때에는 글을 쓰는 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하지만 실제로 일상생활을 하며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알 수 없다. 모른다."라는 답만 되돌아온다.
'나'라는 것은 실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행위를 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계속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남는 것은 "모른다"이다. 아무것도 없다.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마음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하고 망연자실함을 느낀다. 그러나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다 보면 아무것도 없음, 텅 비어있음, 무의 상태가 엄청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주게 된다. 그 어떤 '나', 이름, 형태, 고정된 자아, 에고, 마음, 생각, 아무개라는 탈을 쓰지 않고 그냥 텅 빈 상태,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가 된다는 것. 그것은 삶에 엄청난 해방감과 가벼움, 시원함을 선사해준다. 더 이상 그런 껍데기들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과거를 곱씹거나 후회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완벽하게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축복이고 자유이며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