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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Nov 30. 2022

산 자의 죽으려는 목소리를 듣는 일

죽지 말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근무를 하던 어느 날이다.

머리가 꽤 짧고 안경을 쓴 아가씨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이는 얼핏 보기에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그녀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흔들렸다.

할 말이 있는데 누구에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데스크 직원은 당연히 누군가 사무실에 오셨으니 친절하게 응대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제가... 그... 아니, 장례비가 얼마쯤 들어요?"

"아 네. 혹시 부모님이나 가족분이 위독하십니까?"

"아뇨. 제가 죽으려고 하는데, 장례비가 얼마나 나올지 미리 좀 알아보려고요. 

가족들이 저 때문에 부담될까 봐요. 그래서 미리 좀..."


당시 사무실 안에 직원들이 대략 4명 정도 있었는데

모두가 그 고객의 말을 듣긴 들었다. 

하지만 일시에 시선을 옮기면 고객이 당황할 수 있으니

최대한 태연하게 일에 더욱 집중하는 척을 했다. 


그 상황에서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린 친군데 뭔가 장난을 해보려는 건가.'

'정신적으로 좀 불안해 보이는데, 진심인 거 같기도 하고... 진짜면 어쩌지?

'고객이 질문을 했기 때문에 안내를 해 드려야 하는데, 이걸 안내를 해? 말어?'


일단 첫 응대를 했던 직원이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말했다.

"음. 네 장례비라는 게 기본적으로 고인분에게 필요한 수의라던지 기타 용품 가격은 정해져 있지만, 

조문객 수와 빈소의 크기에 따라서도 비용이 달라지고 또... 마지막 가시는 장지 비용에 따라서도..."

"아 그러니까. 음. 뭐 전부 다 해서 대충 얼마 정도... 들어요?"

"상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000만 원 내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네? 천만 원 이요? 아..."


아가씨는 조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실 아가씨라기 보단 고등학생 정도의 외모여서 제발 미성년자는 아니길 바랬기 때문에 아가씨라고 기억했다.


일단 사무실은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위해 드나드는 곳이라서

아가씨는 자신이 더 질문을 하면 직원들에게 민폐라고 생각했는지

서둘러서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직원 중 장성한 자녀 둘이 있는 60대 여성 선임이 말했다.

"아무래도 쟤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한번 얘기를 해 볼게."


그녀는 입구를 빠져나가는 아가씨를 모시고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40분 정도가 지나고 아가씨는 선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 이후 문의 고객이 많아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아가씨는 아직 다시 찾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제발 다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누구나 인터넷 검색만 해도 장례비에 관한 정보는 대략 얻을 수 있다.


그녀가 문상객도 아닌데 홀로 장례식장이라는 낯선 공간에 와서 

본인이 곧 죽을 것이고, 그 이후의 장례비에 대한 질문을 육성으로 하기까지

어떤 경험과 과정과 생각이 동반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알기도 두렵다.

가슴 아프기가 이젠 두렵다.


나는 그녀에게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도, 죽지 말라고 회유할 수도 없다.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나 싶다.


나는 여전히 모든 죽음 앞에서

모든 슬픔 앞에서 무기력하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죽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위로인지 고민하게 된다.


죽는 건 내일 죽어도 되니까 오늘 나랑 술 한잔 하자고 말하고도 싶고,

그래도 너의 인생에 눈부신 날들이 없었니라고 허망한 질문도 해보고 싶고,

그래도 죽기 전에 떡볶이는 먹어야 되지 않겠냐고 농담도 해보고 싶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매일 죽는 상상을 하는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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