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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Dec 12. 2022

필멸이 필연이어도 그렇지

내일이 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 중 좋아하는 말이 있다.

"너 외동이었어? 오. 외동딸 같지 않네. 왠지 남동생 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

외동딸이 주는 특유의 새초롬한 이미지가 나에겐 없었나 보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대가족 집안에서 자라

남자 사촌동생들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하프 외동 정도 된다.


첫째 동생은 차분하고 독서를 즐기며 목표의식이 있는 아이고,

둘째 동생은 왈가닥 개구쟁이 그 자체이다.

형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성격이 참 달랐다.


둘째 녀석은 외숙모와 삼촌과 친 형보다 나를 더 따랐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는데, 집안에서 내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울었다.

깔깔대며 장난만 치던 녀석이, 하루는 내 앞에 서더니

"누나 이뻐. 누나는 이뻐."

"내가? 진짜?"


나는 누가 보더라도 그 시기에 실제로 이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아이가 누나가 좋아할 만한 말을 선정했다고 생각한다.




하루는 둘째가 놀이터에 같이 놀러 가자고 내 다리에 매달렸다.

나는 그날 왠지 귀찮았다. 집에서 그냥 쉬고 싶었다.

징징대고 매달리고 조르니까 더 가기 싫었던 것도 있다.

오늘은 집에서 쉬고, 내일 가자고 설득시켰지만 한동안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학원을 가느라 놀이터에 못 갔지만, 둘째는 형과 함께 놀이터에 갔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의 몰골이 거의 혼이 나가 있었다.


"어디 병원이요? 아 네... 중환자실이요? 그 앞으로 가면 되나요? 하... 진짜 갑자기 뭐예요 이게"


둘째가 놀이터에서 회전 놀이기구를 타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근처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뇌출혈이라고 했다.

평소 지병도 없었고 너무 건강해서 날아다니던 아인데.

10세의 나이. 응급 수술을 위해 개두술을 했지만 혈관이 너무 얇아 수술이 불가하여

다시 덮었다고 했다.


중환자실 앞에는 만삭인 외숙모와 삼촌이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모든 친지분들이 울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게 믿기지가 않았다. 실감 나지 않았다.

하루 만에? 아니... 몇 시간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매우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어린 아이라 중환자실 면회가 안 돼서 엄마만 들어갔다.

내 앞에선 냉정하고 차가웠던 엄마가 울었다.

수술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몸이 쪼그라들었다고 했다.

의식이 없다고 했지만 고모가 인사하자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작은 빈소에는 조촐한 영정사진과

동생이 평소에 먹고 싶다고 했는데 몸에 안 좋다는 이유로 사주지 않았던

과자 세 봉지가 올려졌다.




나는 정말 집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다.

하지만 내 아기가 걷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하루도, 정말 단 하루도

산책을 안 한 적이 없다.

동네 놀이터, 공원, 키즈카페 순방, 비나 눈이 오면 백화점이나 마트로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도 나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낮이 되면 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아이가 뛰어 놀만큼 집이 넓지도 않거니와

아기도 바깥바람 쐬고 싶을 거라고 나 혼자 추측한다.


낮이나 저녁이나 하도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니

하루만 쉬어도 동네 상인들이 애기는 어디 있냐고 물어온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내가 농담으로

"얘. 나 만약에 지금 죽으면 유모차 미는 귀신 될 것 같아."

하니까 자지러지게 웃는다.


 들은 당연히 산책을 좋아한다. 아니 집 밖에만 나서도 좋아한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엄마와 함께 일 때 좋아한다.

그런데 매일 나가게 될 줄은 나 조차도 몰랐다.

내 마음속에 책무가 있었다.

그날 동생과 놀이터를 함께 가지 못한 책무. 죄책감. 후회.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에도 아이의 옷을 입히고 외출 준비를 했다.

남편이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물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나가게? 앞도 안 보이는데? 오늘은 집에 있고 내일 나가."


남편으로서 할 수 있을 법한 말인데도 나는 울컥했다.


"내일? 왜? 지금 산책 시간이야. 잠깐 다녀오는 건데. 밖에는 안 가고 아파트 안에만 돌 거야.

어차피 나 혼자 가는데 왜 뭐."


내일이 나에게, 아기에게 당연하게 올 것이라고 누가 장담해.

나도 동생한테 놀이터는 내일 가자고 했는데, 영영 같이 못 갔어.

오늘 가야 해.

오늘 아기와 웃어야 하고, 오늘 즐거워야 해. 오늘. 지금.


그렇게 즐겁게 놀다가 밤에 푹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눈 뜨면

아이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 다가가서

오늘도 나와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야 해.


내일이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라고.

아이는 지금 나가고 싶고, 놀고 싶은데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좀.

귀찮아서 내일로 미루고 싶겠지만, 그 내일을 빼앗겨버리면

평생을 후회 속에 산다고.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제발.


내 마음속의 결핍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내 일상 육아가 고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렇게 지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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