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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Dec 27. 2022

유서를 쓰다 지쳐서 아직 못 죽었다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일단 첫째로 유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서라고 하면 너무 극단적인 표현지만

글의 속성 상 편지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마지막 인사를 담은 편지랄까.


적어도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떻고, 신경정신과에서 어떤 진단을 받았으며

나는 무엇이 슬펐고 기뻤는지 가감 없이 기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떠난 후 사람들이 그 연유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줄여주고 싶었다.


처음엔 문구점에 가서 편지지를 샀다.

편지지 안에는 6장 정도의 종이가 들어있다.

어릴 때 손 편지를 쓰던 기억에는 두 장 정도면 충분했는데

쓰다 보니 종이가 모자라다.


그래서 노트를 여러 개 샀다.

컴퓨터로 편하게 쓸 수도 있지만 왠지 유서는 자필로 써야 될 것 같았다.

종이가 여유 있으니 더 맘 놓고 편하게 썼다.

틈날 때마다 써도 하고 싶은 말이 줄지 않는다.

펜을 들고 머뭇거리지도 않고 술술 써 내려갔다.

그런데 쓰다 보니 팔이 좀 아프다. 잠깐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쓰다 보니 아이가 또 보챈다. 가서 잠깐 놀아주다가

아 이제 아기 밥먹일 시간이네. 이따 재우고 다시 써야지




이걸 세 달째하고 있는데 솔직히 지친다.

글 쓰는 사람이 글 없이 떠나면 안 될 것 같아서 쓰기 시작한 유서가

이대로 가면 책의 분량도 넘을 것 같다.


가족도 있지만 친구, 지인, 그리고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들

써야 될 대상도 참 많다.

준비된 죽음을 맞아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이고 그렇게 유서를 열심히 쓴다는 건 아직 죽을 생각이 없는 거네."

솔직히 맞는 말이다.

아무 설명 없이 증발해 버리는 건 원치 않는다.

나의 당위성 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내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아니면 '아. 저래서 그런 선택을 했구나.' 정도는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쓰다 보면 왠지

마음이 못내 후련해져서

격렬히 살고 싶어 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의 나를 버리고

새 나를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빠진 자리가 서서히 채워지고

나 없이도 세상이 잘 돌아가는 걸 꿈꾸지만

막상 그래 놓으면 속수무책으로 서운할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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