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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Dec 11. 2022

가장 어려운 질문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니

책 출간 이후 다양한 인연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중 이색적이었던 만남은

의정부의 한 고등학생들인데 어떤 과묵 조별과제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저자와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이 논문이나 진로 고민으로 연락이 와서 만난 적은 있었지만

고등학생은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고등학생 때 비슷한 과제를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희망 직업의 현 종사자를 인터뷰하는 과제였다.


그때 나는 신문기자가 꿈이어서 국내 메이저 3사 중 한 언론사의 기자를 만났다.

그는 정치부 기자라고 했다. 

직업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까 해서 갔는데

그는 우선 우리를 자신의 단골 호프집으로 안내했다.

'우리 미성년자인데...?'

그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에 관한 짤막한 소개를 했다. 대학 졸업 후 기자로만 살아서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결혼도 못했고, 대학원은 회사에서 학비를 지원해줘서 다녔다.

그리고 정치부 기자는 뒷 돈을 많이 받아서 좋다.

주머니에 봉투가 알아서 팍팍 꽂힌다. 돈은 많이 버는데 쓸 시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너에게 빨간 립스틱을 사주고 싶다. 다음에 그걸 바르고 올래?


나는 인터뷰를 마치지 못하고 귀가해야 했다.




고등학생 네 명이 멀리서 서울까지 오는데 약속시간이 점심시간이라

내가 점심식사를 대접해주고 싶었다.

떡볶이집은 너무 성의 없어 보일까 봐 피자집으로 갔다.

학생들은 수줍게 미리 준비해 온 질문지를 꺼냈다.

평소에도 많이 받던 일반적인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4명 중 한 명이 표정이 유독 어두운 게 뭔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딱 봐도 사색을 즐기는 그러나 약간 비관적인 사색을 하는 친구라는 촉이 왔다.(그 시절의 나처럼)


그 학생이 질문지를 꺼냈다. 난 두려웠다.

"사람은 그럼 언젠간 다 죽잖아요. 그런데... 꼭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 올 것이 왔다. 내가 육아휴직 중이라 수입도 없는데, 이렇게 내가 피자까지 사주고 있는데

꼭 나에게 이래야만 하니라고 호소하고 싶었지만

나는 비참한 미소를 머금고 사이다를 계속 마셨다.


"아... 그렇죠. 누구나 죽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 태어났으니까요 하하. 자신이 하고 싶은걸

몰입해서 해봐야 나중에 후회로 남지 않을 것 같아요. 음... 그리고 인생이 유한하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한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아 너무 창피해서 더 생각이 안 난다. 나는 계속 식은땀을 흘렸고 그 학생의 구부정한 어깨는 더욱 굽어졌다.

'내가 원했던 답은 그게 아닌데... 아줌마가 힘들어 보이니까 그냥 접자...'라는 표정으로 그는 날 놓아줬다.


정말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고등학생들 앞에서 어버버 하는 모습에 자괴감도 느꼈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어떤 대답을 해주고 싶나요? 

(진짜 궁금해서요) 


나는 내 무능함을 만회하고 싶어서 학생들에게 더 먹고 싶은 게 없냐고 재차 물었지만

학생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했고, 한 달 뒤 과제 결과물을 나에게 선물로 보내주었다. 


나는 그 학생의 질문에 아직도 정확히 답 할 수 없을 것 같다.

꼰대같이 보이기 싫어서 "학생이니까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너도 대학 가고 싶잖아." 

이런 대답은 진짜 하기 싫었다.

이미 그 학생의 눈에는 고대 철학자 스무 명이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교육자가 아니지만 나의 느낌상 그 학생은 아마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알찬 하루를 보낼 것이다. 책도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회의적인 태도와는 상반된 열정적인 삶을 살 것이다.

그냥 나의 느낌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런 사색을 할 수 없으니까.




최근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는 책을 봤는데 

죽음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나온다.

그의 문체는 매우 강렬하고 공격적이며 담백하다. 사실 지나치게 공격적이어서 책을 읽다 보면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말로 너무 구타를 당해서 마우스피스가 필요할 정도다. 


그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동물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맨 마지막에는 정신을 스스로 고취할 수 있는 인간으로 떠나야 비로소 인생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내가 이 책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 멋있는 말을 학생에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부질없는 후회를 하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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