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미쳐야 살 수 있는가
조금씩 미쳐가는 중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의외로 작가와 가까운 수업에서 좌절됐다.
나의 전공은 경영학과였지만, 원래 지망하고 싶은 학과는 문창과였기에
그쪽 수업을 자주 들었다.
역시나 녹록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업을 듣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시절만 해도 서점의 신간 코너에는 '000상 수상작'의 타이틀이 많았다.
관련 학과를 졸업해서 정식으로 등단한 작가들이었다. 심지어 큰 규모의 대회에서
큰 상을 탄 작품. 그런 사람들이나 책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의는 첩첩산중이었다. 그래도 글 좀 쓰고 싶어서 모인 학생들인데
시니컬한 강사님께서 너무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다.
어차피 일정 이상 학벌의 국문과 출신, 그리고 연줄, 로비 등 문학계에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다 커넥션이 있다. 그러니까 뭐...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건 자유지만 쉽진 않을 거야 훗. 정도의 내용이었다.
문창과 강의를 들으면서 역으로 문학도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하나 고민했다.
나는 그런 큰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탈 자신도 없었고
쟁쟁한 실력자들 앞에서 내 글을 뽐낼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다 한 시인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 교수님은 항상 웃고 계셨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웃고 계신 건지 아니면 어느 시점부터 웃게 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계속 웃어서 그 웃음 근육 그대로 굳어버린 느낌이랄까.
인생이 굴곡이 없어 너무도 편안하고 행복해서 저렇게 웃는 걸까.
행복해서 웃는 걸까, 웃기 위해 행복한 걸까 늘 헷갈렸다.
시는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글자로 소꿉장난도 했다가, 텀블링도 했다가, 마법의 경지로까지 가는
글 좀 쓴다는 사람들도 시를 잘 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경지라 생각했다.
웃는 상이다 보니 말투 역시 웃음과 비슷했다.
느릿느릿 하지만 가슴을 저미는 말투
그의 시 [금남여객]에 등장하는 오래된 버스 같은 말투였다.
"허허. 여러분. 제가 웃는 얼굴이라고 생각하지요? 허허허
네 그래요. 저는 세상이 아름다워서 웃어요. 그렇게 웃음이 나요.
하루는 친구하고 짜장면집에 갔어요. 걔도 시인이야.
짜장면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배고파서 단무지를 한 입 베어 먹었죠.
그런데 그 단무지가 그렇게 맛있는 거라! 그래서 또 허허허 웃었어요.
그런데 앞에 앉은 친구는 또 우는 친구예요. 걔는 시종일관 울어.
왜 우냐고 물었더니 단무지가 맛있어서 운대. 허허허.
짜장면집에서 한 놈은 웃고 한 놈은 울고 허허허."
나는 그때 아... 이 정도는 돼야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놀랍기도 했지만 자괴감도 느꼈다.
이 정도로 미쳐야지 시를 쓸 수 있다면
그냥 좀 덜 미치고 시를 안 쓰는 게 나은가 라는 건방진 생각도 했다.
단무지 하나로 울고 웃고 할 정도의 레벨이면
이미 일반인의 범주가 아닌데, 내가 이걸 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날 교수님은 해맑은 미소로 학생들의 사기를 꺾어놓으셨다.
하지만 한편으론 도전의식도 불어넣어 주셨다.
'그래 어쨌든 뭐 약간이라도 미치면 쓸 수는 있지 않을까?'
요즘 들어 인생 또한 미치지 않고선 살기 어렵단 생각이 든다.
'마흔에는 잘 될 거예요'라는 책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잘 되긴 개뿔! 지난 40년 역사상 제일 꼬이고 털리고 있구먼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짓고 있다가도
아기가 작은 엉덩이로 부루루뤀 방귀를 뀌면
웃음이 터진다.
저 작은 배에서 어찌 그런 고소한 냄새가 나오는지
얼마나 더 미쳐야 글을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기쁨에, 슬픔에, 외로움에 미쳐서
그 질감과 공기를 사무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무섭다.
무섭도록 잘 쓴 작품의 작가들은
수많은 감정들의 어느 경계선까지 지나온 것일까
공원에서 내 아기가 꽃을 들고 걸으니
친정엄마가 한마디 한다.
"야. 그거 니 어미 머리에 꽃아 줘라. 그것만 꽃으면 딱 완성이다."
글일랑 나중에 생각하고
그래도 조금 미치니 세상이 가끔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