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꿈도 사치스러운 시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 건 도대체 언제부터일까.
농경사회를 살아가던 시대, 그 누구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먹어야 하고 살아야 하고 자식들과 가족들이 입에 풀칠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밭을 매고 일을 했다.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일했다. 전쟁이 있을 때는 다 짓밟히기도 했고, 권력층에게 세금을 갖다 바치느라 등골이 빠지기도 했고, 신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죽도록 일만 하고 살았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 쯤 세상에 직업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생겨났다. 돈을 벌면 먹고 살 수 있었다. 밭에서 땅에서 먹을 것을 얻지 않아도 돈이 있으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돈을 벌 수 있는 많은 직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는 혁명들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돈을 벌러 세상으로 나갔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극빈층이 많이 존재하지만 50~60년 전만 해도 온 나라가 굶어죽던 것에 비하면 호화로워졌다. 그러자, 우리는 삶의 질을 찾기 시작한다. 한번뿐인 인생, 행복하게 살아야지.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며 살기에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지 않은가.
우리는 어쩌면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호화로운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과 재능이 확고한 사람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들지만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다. 물론 돈이 안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성취감이 있다. 특별한 재능이나 꿈이 없어도 자신이 오랜 세월 공부했던 내용을 가지고 세상에 나와서 직업을 가지고 직장이나 사업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자신이 부양하는 가족들과 자신의 밥벌이 정도는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할 수 있고, 배우고 싶으면 배울 수 있고, 먹고 사는 문제보다 한 차원 높은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청년 취업이 정말 너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로서 기성세대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쥐꼬리만한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회사들의 상황을 보며 절망스럽기도 하다. 나 하나 먹여살려줄 회사 하나 없나 싶어 좌절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 청년 세대는 이제껏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온 세대다. 일제 침략기는 책에서나 보았고, 전쟁은 영화에서 보았으며, 보릿고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야기고, 독재시대에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셨다던 분들은 국가 유공자라고 한다고 들었고, IMF 때문에 힘들어했던 아버지 덕분에 같이 경제적으로 힘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나간 이야기다. 의식주나 자유의 문제에서는 어려움 없이 정말 공부 공부 공부 ... 공부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죽도록 공부만 했는데, 이제 취업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놈의 취업이 문제다. 우리 세대가 처음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아, 공부한다고 다 되는건 아니구나'
'아, 내가 이제까지 공부한 이유가 뭐지?'
'아, 이제껏 공부한게 얼만데 내가 이런 회사에서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니'
공부한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안정된 삶이 보장될 줄 알았더니.. 꿈도 포기하고, 하고 싶은 거 다 못하고, 공부만 하고 살아왔는데 말이다. 억울하게스리...
모두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직장에서 안정된 보수를 받고 있지만 다람지 챗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돈이 안되니 치열하게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고, 취업 문이 좁아지고 초봉도 낮아질대로 낮아졌으니 공부한 세월과 돈과 노력이 있어도 눈을 얼마나 더 낮춰야 하는지 자존심 상하고,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좌절감을 느끼며 자꾸만 쪼그라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도 어려움이 다 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뭔가 이루었다면 또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 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경쟁해야한다.
중국에 있을 때 소수민족들을 만났었다. 아주 깊고 깊은 산 속에 살면서 빗물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세상과 접촉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그들은 적어도 순수했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들도 돈을 알게 되고, 넓은 세상을 알게 될수록 욕심이 생기고 그 세계는 오염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너무 크고 방대해서 우리는 더 많은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겠고, 돈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고, 내 시간도 갖고 싶고, 그러면서 내 일에서 성취감도 맛보고 싶고,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정도 이루고 싶고, 내 자식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고... 소소한 희망 같으면서도 어쩌면 우리의 욕심인지도 모르는 그런 것들...
내가 보고 알고 있는 세계는 여전히 크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 많은 사람들과 때로는 비교하고 경쟁하며 그러면서도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평균'은 되야한다는 내 나름의 기준이 나를 옥죄이기도 한다. 많은 걸 갖고 싶으니 많이 벌어야겠고, 그러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다. 돌고 도는 슬픈 순환이다. 내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어쩌면.. 삶은...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걸지도 모른다.
나는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걸 감사한다. 팔려가듯이 시집 가서 죽도록 노동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게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 호화로운 시대에 태어나서, 엄청난 독립운동가나 역사 책에 쓰일만한 인물은 못되더라도...
내 인생 뒤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만큼, 내 인생 뒤돌아보았을 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싶을만큼...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일,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