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일기 D-66
집을 구해야 하는 문제로 예비 시댁에서 며칠 머물게 되었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몇 번 식사 한 이외에 이렇게 긴 시간 함께 한 적이 없었다.
원최 낯을 잘 안 가리는 성격이라 낯선 사람과도 쉽게 가까워지긴 하지만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나의 가족이 된다는 건 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우리 엄마 아빠와는 또 다르게 어머니 아버지가 생겼다. 어쩌면 이제껏 날 키워주신 부모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섬겨야할 부모님이 생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나의 부모님은 많이 서운하시겠지. 지금도, 앞으로도.
30년 가까이 키운 딸을 남에게 주는 기분이라고 아빠는 자꾸만 슬퍼하신다. 그것도 멀리 서울까지 가버린다니 더욱 서운하신가보다. 어른들끼리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거리도 멀어 이제껏 상견례 때 한 번 만난 것 외에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분들께 딸을 맡긴다는게 기분이 이상하신가보다. 내가 "어머님 아버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도 이상하게 싫다고 하신다.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은 그런가보다. 내 사람 하나 더 얻는 기분이 아니라, 내 귀한 딸 멀리 보내는 느낌.
계획에 없던 피서를 가게 되었다. 어머님, 아버님, 예비신랑, 나 이렇게 넷이서 떠난 무계획 피서 여행은 알차고 즐거웠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너무 좋은 자리를 잘 잡았고, 경치는 이제껏 본 적 없던 절경이었으며, 예약이 다 찼다던 래프팅도 절묘한 타이밍에 도착한 덕분에 경험해볼 수 있었다.
즐거웠던만큼 나는 또 엄마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몇달 전부터 노래를 불렀었다. 이번 여름 휴가때 사돈어른들이랑 같이 피서를 가자고. 그런데 나는 서로 불편하고 거리도 멀다며 극구 말렸었다. 좋은 걸 먹고 재미있는 걸 할 때마다 '우리 아빠가 이거 했으면 더 좋아하셨을텐데', '우리 엄마도 이거 좋아하는데', '우리 부모님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것이 시집간 딸의 마음인가보다 싶었다. 결혼하면 남편에게 가장 서운할 때가 시댁만큼 친정을 신경써주지 않을 때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주 자그마한 것에도 서운해진다고...
나는 자꾸만 엄마 아빠에게 죄인 된 기분이 든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어쩌면 성격 탓도 있다.
뭐든 당당하게 부모님께 요구하고, 부모님이 뭘 해주시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는 동생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었다. 두 딸을 너무나 잘 아는 엄마는 얘기해주셨다.
"너는 엄마 아빠에게 늘 미안해하고, OO이는 엄마 아빠에게 항상 고마워하지"
'미안함'과 '고마움'의 사이.
어느 것이 부정적이고 어느 것이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지만, 나는 그렇다. 미안하다. 늘.
"이제 정말 이 여름이 가면 우리 딸 시집 가는구나"
같이 걷다보면 엄마는 요새 자주 이렇게 한숨 내뱉듯이 이야기 하신다.
엄마는 너 결혼할 때 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
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아직은 마냥 행복한데, 자꾸만 서운해하고 민감한 부모님 때문에 나도 힘들고 엄마 아빠가 미울 때도 많다. 그냥 행복하게 잘 살도록 격려해주고 축복해주시면 되는데 왜 저렇게 서운해하시고 내 마음을 무겁게 하시는 걸까 하고 말이다.
주도적으로 먼저 떠나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은 언제나 떠난 이의 빈자리를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엄마 아빠에게 내가 그런 빈자리를 남기지 말아야 할텐데... 엄마아빠는 벌써부터 그 빈자리를 걱정하고 계신가보다.
우리 방 문을 열었는데 내가 없을 때의 그 아쉬움.
엄마아빠가 아닌 다른 이들을 부모로 섬겨야할 딸에 대한 측은함과 빼앗기는 기분.
내가 딸을 낳아 길러보고, 또 시집보낼 때 쯤 되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멀리 시집 가는 딸이 엄마 아빠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내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리고 부모님을 내가 잊지 않고 늘 사랑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것. (+금전적 효도)
남은 시간, 또 결혼한 후에도 엄마 아빠를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지만 가끔 나의 차가운 성품이 엄마 아빠에게 상처를 줄까봐 난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행복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시작하는 결혼 생활의 첫 걸음을 떼기 전,
이제껏 나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준 이들의 손을 놓아야 하는 예비 신부의 마음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