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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Feb 10. 2017

지독한 어둠을 뚫고 나온 빛

영화 [재심] 

 시사회라니!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 덕분에 초대된 시사회! 갓 상경한 새댁은 시사회라면 감독과 배우들이 다 나와서 인사하는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 강하늘을 볼 생각에 두근거리며 갔는데... 시사회라고 다 배우들이 와서 인사하는게 아니었구나... ㅠㅠ.. 어디 가서 얘기하기 창피하다. 촌스럽다고 놀림 당할 것 같아. 

 

 어쨌든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를 앞,뒤, 옆 빼곡히 앉은 브런치 작가님들 틈에서 그 어떤... 사명감 같은 것마저 느끼며 집중해서 보았다.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보니 그 사건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영화가 진행되었다. 흥행영화를 위한 몇가지 요소.. 로맨스라거나 자극적인 장면이라던가 빵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라던가 그런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루하지도 않았다. 내용의 흐름에 따라 그 주인공들의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며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는 특히 강하늘이라는 배우의 연기에 또 한 번 놀랐다. '미생', '쎄시봉', '동주', '달의 연인 보보경심'.. 그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봤었다. 그는 마치 도화지처럼 그림을 그리는 족족 새로운 색깔과 모양을 보여준다. 그토록 다양하고 다른 캐릭터를 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다. 

 사실 변호사의 친구로 나왔던 배우 이동휘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자꾸만 응팔 때의 코믹한 얼굴이 떠올라 아무리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여도 그걸 보는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 때의 이미지가 워낙에 강렬해서 그런가보다. 

 

 어쨌든, 강하늘이 연기한 피해자 역할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억울함, 세상을 향한 분노, 트라우마에 의한 공포, 복수심, 살고자 하는 희망, 고마움, 안타까움, 엄마에 대한 미안함, 계속 되는 절망 속에서의 좌절... 

 

 정말 법이란 것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맞냐는 질문. 그는 법의 피해자였다. 법을 아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포로 삼아 자신의 욕심을 채운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힘들게 수사하기가 귀찮아서... 그들의 눈에 현우(강하늘)는 양아치였고, 그 양아치의 삶은 자신의 삶에 비해 가치 없는 것이었을까. 내 눈에는 현우보다 그 시골 경찰들이 더 양아치 같아보였다. 영화 더 킹에서 '누가 양아치이고 누가 형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했던 말이 생각 났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현우처럼 약한 사람들을 협박해서 거짓 진술서를 만들고 계속해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고 있는 장면에 더 화가 났다. 죄악은 드러나지 않으면 이렇듯 끊임없이 반복되고 이어진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무관심했던 사이에 그들은 계속해서 똑같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게 내 가까운 사람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극 중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마다 이해관계나 감정이 확실히 드러난다. 극 중 이준영 변호사는 그야말로 현실적 변호사, 생계형 변호사였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친구는 그를 무시하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는데 그 친구는 결국 이준영이 했던 과거의 말 그대로 행동하게 되는 면이 흥미로웠다. 이준영 변호사는 재심 변호를 맡으면서 점점 성숙해져가고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데 친구는 그의 과거, 그의 뒤에 머물러서 괴물이 되어가는 것이... 

 피해자 엄마 또한 참 거칠면서도 자식을 생각하는 그 절절한 마음이 그 거친 면 위로 툭툭 보일 때마다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억울한 일을 당했고 웃음을 잃었고 강한 자들에게 짓밟히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엄마의 마음.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박준영 변호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고 관심 있게 지켜봤었다. 특히 말하는대로에 나왔을 때, 그는 자신이 그런 재심 변호를 맡게 된 이유에 대해서 참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거짓 없이 솔직한 점.

 


 내 코가 석자라고. 남의 사정보다 내 사정이 더 급하고, 남을 돌아보기 전에 내 가족과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적어도 남을 헤치지는 말아야 한다.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누군가를 희생해서는 안된다. 그 어느 누구도 나보다 하찮은 인생은 없고 내가 짓밟아도 괜찮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쟁 구도 사회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희생시키거나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참 슬픈 일이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동안 그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요새 참 유명한 말처럼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빛이 조금이라도 비취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있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일반 국민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을 수 있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세상에 억울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빛을 비춰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죄악은 결국 드러나고 드러나게 되면 일단 멈출 수 있다.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일, 아마도 그 억울한 일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끔찍하게도 싫어할 일이다. 아마 이 사건을 맡았던 경찰들과 검사는 이 영화를 죽도록 싫어하겠지. 아마 탄핵 정국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 또한 블랙리스트에 올라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데 피해자의 그 잃어버린 10년과 그 끔찍했던 트라우마는 누가 보상해주나.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그래도 빛이 어둠을 이기었고, 그가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살인자라는 누명을 벗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지독한 어둠을 뚫고 나온 빛이다. 

 

 실화를 다룬 영화들을 잘 못 보는 타입이다. 너무 감정이입을 과도하게 해서 보고 나면 너무 마음이 힘들 것 같아서 일부러 안 봤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영화를 보고 진실을 알아가고 또 알고자 좀 더 노력하게 되는 그 움직임이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이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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