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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Oct 07. 2017

부드럽고 따뜻하게 전해지는 이야기

신영복 <처음처럼> 

언젠가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읽으려다가 차마 두꺼운 책을 읽을 엄두가 안 나 내려놓았었다. 우리 동네 지하철역에 있는 스마트 도서관 기계에는 새로운 책도 꽤 자주 업데이트 되는 편이라 지하철 타고 멀리 갈 일이 있는 날은 꼭 한 권은 빌리곤 하는데, 익숙한 이름과 샛노란 책 표지 색이 맘에 들어 골라 들었다. 


꽤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맨 처음 '여는 글'이 제일 길었고, 본문 안 각각의 챕터는 마치 시 같기도 하고, 명언집 같기도 했으며, 에피소드 모음 같기도 했다. 사이사이에 끼워져 있는 삽화나 서예 글씨체 같은 것들은 글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쏠쏠하게 해주었다. 


큰 제목은 4부로 나눠진다. 


1부 꿈보다 깸이 먼저입니다 

2부 생각하는 나무가 말했습니다 

3부 공부하지 않는 생명은 없습니다 

4부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그 안에 수많은 소제목들이 한 장 한 장 이어져있다. 자연의 어느 한 부분을 보면서 느낀 것, 자연의 현상을 우리 삶에 빗대어 표현한 것, 이미 유명한 글귀나 사자성어를 저자의 느낌대로 풀이해놓은 것, 저자가 감옥에 있으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들, 후배들.. 혹은 다음 세대들에게 주고 싶은 메세지, 현 사회 상황이나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많은 현상들을 비유를 섞어 풀이해놓은 것들... 그런 것들이 섞여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접근에 놀라기도 한다. 이 문장이 주는 깊은 뜻이 무엇인지 잠깐 멍하게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의 깨달음은 어렵지가 않다. 길게 풀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어떤 권유도 강요하는 법이 없다. 그의 어투는 부드럽다. 따뜻하다. 샛노란 책의 표지처럼, 차갑고 새하얀 눈 속에 피어난 봄 새싹 같은 문장들이다. 


책 속 문장을 옮겨 적어볼까 하다가... 저작권 문제도 있고 너무 많은 부분을 공개하기에는 스포일러를 제공하는 것 같아 꺼려지고, 그렇다고 한 두 문장만 옮겨 적기에는 책 전체의 느낌을 표현하기에 너무 부족해 아쉬우면서도 조심스럽다. 


서삼독(書三讀)이라는 챕터에서 저자가 말하기를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한다고 한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똑같은 글이라 해도 읽는 사람에 의해 재탄생되는 것이 독서의 본질이라는 의미인가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면서도 겸허하게 읽기 참 좋은 책을 만났다. 참 오랜만에. 

내게 뭔가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을 내게 주입하지도 않고, 나를 끌고 가려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이 어투가 난 좋다. 


그를 좀 더 이해하고 싶어졌다. "감옥으부터의 사색"이라는 그의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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