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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Mar 26. 2018

요즘 엄마의 이유있는 변명

엄살 부린다고 하지 말아요

 옛날 엄마들은 천기저귀를 쓰면서 혼자 힘으로 너끈히 아이 셋 넷도 키웠고, 몸 조리도 못하고 농사 지으며 아이도 키워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요즘 엄마들은 엄살이 심한 것처럼 느껴진다. 애 하나 혹은 둘 밖에 안 키우면서, 세상도 좋아져서 좋은 육아 용품도 이렇게 많고 기저귀도 안 빨아도 되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까. 이제 육아를 시작한지 고작 58일, 조금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면 남편도 시어머니도 약간은 내가 엄살 부리는 정도로 여긴다.

 “그럼 옛날 엄마들은 도대체 어떻게 애들을 몇명씩 낳아 거뜬히 키운거야?”

 “요즘 엄마들은 애 하나 키우는데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거니?”

 진짜 순수하게 질문하시니 나는 또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왜 요즘 엄마들은 육아가 힘들다고 난리인지.


1. 핵가족화, 개인주의

 우리(내 맘대로 요즘 젊은 엄마들의 대변인을 자처함) 시대는 형제가 많지 않다. 어린 형제가 아기때부터 자라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조부모님이나 친척들이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니다. 육아의 과정을 본 적도 배운 적도 없다.

 부모님이 가까이 살지 않는 한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한국 대부분의 기업은 남편들을 집에 일찍 보내주지 않는다. 남편도 부모님도 없는 엄마의 독박 육아는 몸보다 마음이 힘들다. 외로움과 두려움, 억울함 같은 감정들이 뒤섞인다.

 이웃과도 소통이 별로 없다. 옆집 앞집 담장의 구분 없이 이웃 사촌으로 가족 같이 지내던 때에는 허물 없이 친구가 되고,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함께 놀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요새는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이 각박해지기도 했고, 아이들 마저도 ‘있는 집’, ‘없는 집’을 구별하는 시대, 학원에서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시대, 형제나 친척도 별로 없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아이는 점점 더 엄마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친구도 엄마 뿐이고, 보호자도 엄마 뿐이다. 엄마가 놀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가르쳐주고... 엄마의 역할이 어마어마해졌다. 그런데 우리는 보고 배운 바가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


2. 남녀가 동등한 시대 

 옛날에는 여성들이 대학을 나오거나 직업을 갖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의 삶이 당연시 되던 시대에 여성들에게 있어서 ‘엄마’라는 역할은 너무나 익숙한 ‘숙명’이었다. 다른 선택을 할 생각조차 안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도 출산도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는 시대이다.

 우리는 남자들과 동등한 시대를 살아왔다. 똑같이 교육을 받고, 똑같이 자기 능력으로 자기 직업을 가지고 일하던 여성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도 늘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서 엄마가 다 해주는 그런 집에서 자라왔다. 요즘 엄마들 치고 살림 잘하고 요리 잘하는 엄마들이 드물다. 우리의 엄마들은 딸이 자기 능력을 마음껏 펼치기를 바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 엄마도 ‘이런건 시집 가면 평생 해야되니까 지금은 손도 대지 마’라며 걸레질이나 설거지도 못하게 했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출산은 여자의 몸으로만 할 수 있고, 모유도 엄마 몸에서만 나오고, 아이에게 엄마의 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엄마들은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밖에 나가서 일 하고 돈 벌 능력이 없어서 집에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 남편은 일하느라 늘 밖에 있고, 나만 집에 갇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왜 나만 다 포기해야하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뒤섞인다.


 

3. 넘쳐나는 정보, 휘는 허리

 요즘처럼  SNS나 인터넷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없었다. 육아에 대해 어른들께 묻는 일은 거의 없다. 인터넷을 뒤지고, 정보를 찾는다. 이 아이템이 좋다더라, 이건 꼭 해야 한다더라, 뒤쳐지지 않으려면 이건 꼭 있어야 한다, 아이들 두뇌 발달에 이게 좋다더라 등등... 좋은 아이템과 교육 도구들이 넘쳐나고 내 아이에게 다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 애 하나 혹은 둘이 전부인데 들어갈 돈은 옛날에 비해 훨씬 많이 든다. 그렇게 유난을 떨지 않더라도 기저귀 값에 분유 값만 해도 20~30년 전에 비할쏘냐.

 아직 아이가 어려 사교육비 까지는 안 들어간다고 해도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 따로 사고 새로 사야 한다. 온갖 세제 종류, 목욕 용품, 유기농 식품, 몸에 바르는 것, 소독 용품 등등... 아이를 위한 건 다 친환경적이어야 하고, 몸에 좋은 것이어야 하고...

 ‘옛날에는 이런거 없어도(이런거 안해도) 다 쑥쑥 잘만 크더라’고 얘기하실지 모르지만, 지금은 환경이 오염될대로 오염되서 물도 사먹고 심지어 공기도 돈 주고 사야할 판국이라 안심하고 먹을 것도 없고 숨도 맘껏 못 쉬는 세상이다.


4. 현실적인 어려움 

 현실이 이렇다보니 육아 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맞벌이를 안할 수가 없다. (또 한 편으로 엄마는 경력이 단절되는걸 원하지 않기도 하고...) 맞벌이를 하려면 아이를 봐줄 기관이나 학원, 베이비 시터 등이 필요하다. 그러면 또 돈이 들어간다. 엄마 월급이나 아이를 맡김으로써 들어가는 돈이나 거기서 거기다. 악순환이다.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는다. 전업주부나 직장맘이나 의지할 데라곤 남편 밖에 없는데 도대체가 정시 퇴근을 하는 법이 없다. 야근에 회식에 출장에... 아빠가 들어오기도 전에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아빠는 가족이라기보다 손님 같다. 그래서 어린 딸이 출근하는 아빠에게 ‘또 놀러와~’하는 그 광고는 많은 엄마아빠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대한민국에서 한 아이의 아빠로, 엄마로 살아가기란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요즘 엄마들에게 유난 떠는 것 같다고, 엄살이 심하다고 타박하지 마시길. 다 각자의 그릇이 있고, 그 안에서 다들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멋진 엄마들이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엄마들 어느 누구도 쉬운 인생이 없다.



커버사진 출처 Photo by Tanaphong Toochin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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