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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Nov 27. 2019

독박육아가 힘든 진짜 이유

억울함과 외로움 

 나는 친정 부모님도 멀리(차로 6시간 거리) 사시고, 시부모님도 약간 멀리(차로 1시간 거리)에 사신다. 남편은 거의 매일 야근이고 출장도 자주 다닌다. 같이 살던 여동생도 직장을 다니니 7-8시는 되야 퇴근. 남편 하나 보고 서울에 시집 왔으니 아는 친구도 별로 없다. 아주 빼박 독박육아 당첨! 


 우리 첫째 아가는 순한 편이라 많이 보채지도 않았고, 원래 아기를 좋아하는 나는 아기가 마냥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눈동자 초점도 없던 아가의 눈에 초점이 생기고 고개를 돌려 원하는 걸 보기 시작했을 때도 신기했고, 엎드린 상태로 고개를 들어올리던 날도 너무 신기했고, 자기 손으로 딸랑이를 돌리는 게 그렇게 신기했다.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게 너무 행복하고 신기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일단 육체적인 힘듦이었다. 둘이 살 땐 소꿉놀이 같았던 집안일이었는데, 전투 육아에 돌입하면서 집안일이 2배 3배가 된다. 젖병 씻어 삶고, 매일 토하는 아가의 내복과 손수건 삶고, 매일 빨래하고, 아기는 민감하니까 먼지 한톨 없이 청소하고, 나는 나대로 밥 챙겨먹고 치워야 하는데 아가 모유수유도 해줘야 하고 분유도 타다 줘야하고 매번 트림 시켜야 하고, 남편 밥도 챙겨줘야하고...

 

 아기가 100일 지나고 나서부터는 일부러 밖으로 자꾸 나갔다. 집에 있으면 쌓여있는 집안일들이 눈에 계속 보이는데 우리 껌딱지 옆에서 떨어지기 어려우니 어차피 못할 집안일들... 스트레스만 쌓이니 밖에 나가는게 속이 편했다. 마트도 가고, 백화점도 가고... 지하철 타고 하도 돌아다녀서 '프로외출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내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래도 밖에 나가면 시간도 빨리 가고, 아가가 순하게 유모차에 잘 타주고 있어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면서 답답함을 해소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누구나 안다. 도와주는 이 없는 육아는 당연히 어렵다. 특히나 살림이라고는 눈꼽만큼도 할 줄 모르던 철 없는 아가씨가 결혼을 하고 이제 막 요리도 해보고 집안일도 하려는 찰나, 아기가 덜컥 생겨 갑자기 엄마가 되어버렸으니... 서툰 것 투성이다. 출산과 육아, 집안일이 여성의 숙명이고 평생의 직업이던 시대가 아니니까... 우리는 어쩌면 준비가 덜 된 걸지도 모르겠다. 

 육아를 힘들다고 느끼는 정도나 강도는 또 사람마다 다 다르다. 상황마다 다르고, 아이나 엄마의 성향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다. 나는 그래도 육아를 즐기면서 했던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이 아가의 오늘 이 모습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박육아가 힘든 진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왜 나만?' 이라는 억울함과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육아를 시작도 하기 전, 임신을 했을 때도 그랬다. 변해가는 내 몸을 보며 그렇게 서럽던 날이 있었다. 남편한테 울면서 얘기했다. 내 몸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고 뚱뚱해지고 변해지는데 당신은 변하는게 뭐가 있냐고. 그냥 다니던 직장 다니고, 꾸미던대로 꾸미고 다니고, 커리어도 계속 쌓아올라가고... 너무 억울하다고. 난 일도 그만 둬야하고, 몸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냐고... 억울함에 몸부림 쳤었다. 


 육아가 시작되면서.. 나는 다같이 저녁 식사한 날... 설거지 할 때 제일 힘들었다. 남편에게는 '집안일은 내가 다 할테니 집에 오면 아기를 전담해서 돌보고 최선을 다해 놀아주라'라고 했다. 일단 일을 안하고 있는 전업주부로서 집안일은 내가 책임지더라도 육아는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그래봤자 한 두 시간 놀아줄 시간밖에 없다. 그 다음날 출근해야 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새벽 수유를 맡겨본 적도 한 번 없다. 

 그런데 그런 나를 가장 뿔딱지 나게 만드는 것은... 나는 힘들게 밥 차리고 설거지 하고 있는데... 핸드폰 슬슬 보면서 대~충 애를 보고 있는 ?? 거의 놀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다. 남편도 집에 오면 쉬고 싶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 와서 내가 무슨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 남의 아들도 아니고 자기 아들인데!!! 내가 힘들게 일하고 있는거 뻔히 보면서!!! 저렇게 꾀를 부리며 놀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정말... 화가 속에서 불같이 일어났다... 매번 그걸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내 스트레스가 남편에게 고스란히 흘러갔겠지... 

 (몇개월 뒤 결국 남편은 식기세척기를 사줌..ㅋㅋㅋ 한동안 평화가 찾아옴)


 사실 그 순간의 분노는... "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쉬고 싶다고 쉬고, 자고 싶다고 자고, 하고 싶은거 다하냐?!!" 하는 억울함 그 자체였다. 


 남편도 분명 노력하고 있는 것이었겠지만, 남편은 밤에 한번도 아이를 데리고 자본 적이 없고.. 새벽에 깨서 두시간 넘게 안 자고 보채는 애를 달래본 적도 없다. 그 와중에 건강을 위해 가끔 운동도 갔다.(하도 체력이 안 좋아서 내가 보내준거지만) 나는 너무 달라진 삶을 살고 있는데, 남편은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사는 것 같아보였다. 그래서 너무 억울했다.


 말도 못하는 아기랑 하루종일 있다보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외로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든 만나서 얘기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유모차 끌고 카페 나와서 얘기 나누는 엄마들... 위로해줘야 한다. 큰 맘 먹고 나온 것이다. 언제 보챌지 모르는 아기를 데리고 꾸역꾸역 나오는건...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있어야 또 집에 가서 힘을 내서 아기를 사랑해주고 돌봐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세워가고 있는 엄마들에게 '맘충'이니 '무개념 맘'이니.. 너무 야박하게 그러지들 맙시다. (갑자기 이야기가 딴 데로 샘...)


 그런데 그보다도 절망적인것은 남편이 육아에 1도 도움을 안 줄 때이다. 요즘 남편들은 육아휴직도 쓰고 나름 좋은 아빠로 살려고 많이 노력하는 추세이지만...!! 현실적으로 회사나 나라에서 도움을 안 준다. 퇴근을 안시킴. 아주 한 사람을 걸레 짜듯 쥐어짜서 일을 시킴... 너 한 번 죽어봐라 하면서 일 시키는 것 같음... 내가 이 정도로 월급을 주면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쥐어짜내야지... 하면서 일 시키는 사장님들... 출산예정일까지 출장을 보내는 몰인정함... 그래.. 그래도 일단 우리 가족 먹고 살아야하니 회사에 붙어있어야지. 힘들어도 참아야지. 하면서 남편들도 꾸역꾸역 일 다니고 아내들도 꾸역꾸역 참아본다. 

 그런데 남편의 성향이나 마음 자체가 가정적이지 못해서 밖으로만 나돌고 집안일이나 육아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집도 간간히 있다. 예전 가부장제 시절...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그랬다. 돈만 벌어다 주면 아버지 역할 다한 걸로 생각했던 그 시절 그 고리타분한 생각을 지금도 하는 남편이 있다면.. 부디 반성하고 집으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남편이 나와 함께 육아하고 있다는 느낌은 물리적으로 육아 시간의 양이 많다고 해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말 한마디로, 행동 하나로 다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남편이 나를 배려해주고 있구나.. 나를 생각해주고 있구나... 내가 힘들다는 걸 이해해주는구나.. 하는 그 따뜻한 마음이 주는 힘이 엄청나다. 


 남편이 밖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아내들도 안다. 하지만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된 초보 엄마들은 유독 더 우울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근데 거기다 대고 '너만 힘드냐', '옛날 엄마들은 이보다 더한 일도 다 해냈다', '나도 힘들어 죽겠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 이런.... 막말은 거두어주소서 남편들이여.


 남편들이여, 지나고보면 잠깐인 이 시간... 엄마들이 가장 예민하고 힘들 이 시간... 조금만 함께해주고 보듬어주면 평생이 행복할 것이오!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왜 나만?'이라는 억울함과 '혼자'라는 외로움이 초반 육아를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가 어리고 가장 예쁜 이 순간은 생각보다 짧다고들 한다. 지나고 보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고들 한다. (그 순간을 지나온 선배들의 말이...) 

 이 사회가, 남편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함께 해주면...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엄마들 손에 있다. 행복한 엄마에게서 행복한 아이가 길러지고, 따뜻한 엄마에게서 따뜻한 아이가 길러진다. 대한민국이 좀 더 행복하고 따뜻해지기를...!! 

 응원합니다.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 




Photo by kevin li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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