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는 데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엄마는 아이가 잉태할 때부터 태어나는 순간까지 아이를 몸 속에 품고 그 움직임을 느낀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 자동으로 엄마가 된다. 내 몸에서 아이를 위한 모유가 흘러나온다. 아이가 내 몸 속에 있을 때도 내 몸은 아이의 생명줄이었고,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뒤에도 엄마는 아이의 생명줄이다. 내 마음은 부모로서 준비가 좀 덜 되었을지라도, 아이를 보는 게 좀 서툴러도, 이미 내 몸은 완벽히 이 아이의 엄마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랑 다르게 조금 천천히 아빠가 되어가는 것 같다.
처음 아기가 태어났을 때, '소중이 아버님~' 하고 간호사가 부르는데 울컥! 했더란다. 자기가 진짜 아빠가 됐다는 게 확 실감이 나버려서... 그 생명체가 어찌나 신기한지... 만지면 으스러질것 같아 손도 못 대고, 신기해서 마냥 쳐다만 본다. 기저귀 가는 것도 배우고, 아기 트림 시키는 것도 배우고, 아기 안는 법도 배우지만 한참 동안 서툴렀다. 하루종일 아가랑 있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퇴근하고 잠깐 아기를 만나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몸조리 하는 아내를 위해 아기 목욕 정도는 자기가 시키겠노라 하지만... 물은 넘치고, 아기는 첨벙거리고, 미끄러워서 다칠까봐 노심초사, 눈에 물 들어갈까봐 노심초사...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서툴다.
내가 느끼기에 남편과 아이가 아빠와 아들로 연결되는 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 것 같다. 자기를 너무나 닮은 아기의 모습이 신기하고 예쁘지만... 처음에는 그저 아이가 돌봐야할 대상, 그저 '타인'으로 존재하는 느낌이랄까. 아이가 22개월이 된 지금은 확실히 아빠와 아들 같다. 아들도 항상 일어나자마자 '아빠~~'하면서 달려가 아빠를 찾고, 아침마다 달려오는 아들을 너무 사랑스러워하는 아빠의 모습. 퇴근하고 돌아오면 우리 아들 우리 아가 뭐 하고 있나 오늘은 뭐하고 놀았나 하루 근황도 물어보고 궁금해하고, 자기 전까지 한참을 놀아준다. 아이가 핸드폰 화면과 티비를 보면 떼가 느는 것을 느낀 뒤로는 웬만하면 아이 앞에서 핸드폰도 티비도 안 본다. 어차피 야근하고 퇴근해 돌아오면 아이가 자기 전까지 한 두시간 뿐인데.. 열정적으로 놀아주진 못해도 그래도 아이가 있는 곳에 늘 함께 있으려 하고 내가 집안일 하고 있을 땐 아이를 전담한다. 아기 목욕도 여전히 담당하고 있고.
아이가 태어나고 첫 1년... 너무 사랑하고 의지했던 내 남편이 한심해 보이고 미운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내가 엄마로 변하고 있듯이 당신도 아빠로 좀 자리 잡아주길 바랬는데, 여전히 그는 나에게 '돌봄'을 원하는 것 같았다. '나도 좀 돌봐줘'라고... 그러니 서로 지치고 서로 침묵으로 시위할 때가 많았다.
아이와 함께 외식을 하는데 아이가 유독 보채거나 하면 오히려 화를 내며 "다시는 은호 데리고 외식 안해!" 하던 아빠였는데... 요새는 밖에 나가 아이가 울거나 보채면 육체적으로 피곤해하기는 해도 짜증이나 화를 내지는 않는다. 이제 '아기는 원래 그런거구나', '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구나' 하는 걸 이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름 팀웍도 생겨서 밥을 먹을 때도 아이를 엄마아빠가 번갈아가며 전담마크한다. 아빠가 먼저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아이 밥을 먼저 먹이고, 아빠가 밥을 다 먹고 나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고 그 동안 엄마는 (좀 식은 밥일지라도) 좀 편하게 밥을 먹고 나온다.
어쩌면 둘째를 임신하게 되면서 더 아빠로서의 책임감이 무거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입덧하는 아내를 두고 한달 출장을 가야하고, 만삭 임산부인 아내는 하루종일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데 본인은 일이 많아 매일 야근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만성피로인 자신도 몸이 지칠지라도 곁에 있을 수 있을 때만큼은 이 모두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운가보다.
또 한편, 아이가 자라가면서 소통이 될수록 남편은 더 아이의 아빠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첫째가 이제 엄마 아빠 까꿍 까까 우유 빠빠이 뿌뿌(자동차) 뭐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쯤 되니 말귀도 제법 알아듣고 뭘 얘기하면 알겠다고 끄덕이기도 하고, 싫다고 뿌리치기도 하고, 삐져서 방에 들어가 엎드려 있기도 하고... 그러면서 점점 소통되는 부분이 많아지니 아빠는 아들에게 말이 많아졌다.
"아빠 좋아?" "아빠 보고싶었어?" "아빠 일찍 오니까 좋지?" 매일 아들에게 사랑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아빠다.
나의 아빠를 기억해보면... 아빠는 내가 본 33년동안 계속해서 변하고 성장하는 중인 것 같다. 물론 엄마의 헌신과 종교의 힘이 있었다고 보지만...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우리에게 안정을 주지 못했던 아빠였지만 그런 아빠가 성실한 사람으로,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인내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고, 아빠도 그 땐 어렸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이제 2주 정도 지나면 둘째 아들도 태어난다. 나의 남편은 두 아들의 아빠가 된다. 그토록 딸을 원했지만... 아마 우리 생애 딸은 없을 것 같다... (눈물) 아들 둘의 아빠로 나의 남편은 얼마나 더 자라갈까. 어떤 아빠가 될까. 기대 되기도 하고 한 편 걱정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두 사람 .. 서로밖에 없다. 절대적으로 서로 의지해야하고, 팀웍을 맞춰가야하는 상대이다.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기도 하지만 이 두 아들의 엄마아빠로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같이 손 잡고 달려야지 뭐. 좀 부족해도 서로 좀 봐주고 으쌰으쌰 해야지 뭐...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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