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금아 Nov 13. 2023

조율사(調律師)

     

                

이른 봄을 마실 나온 햇살 한 조각이 하얀 건반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 있다. “띵. 띠이잉.” 여러 번의 두드림에도 침묵하고 있는 흰색 건반 '솔', 제소리의 높이를 기억할 수 없다. 옆지기 '파'와 '라'의 중간쯤이었으리라. 엄지와 중지의 지문이 기억하는 어렴풋한 자리를 더듬더듬 찾아간다.      

조율사가 왔다. 목발을 짚은 그를 따라 그의 아내도 함께 왔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한 손에 큰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남편을 부축하는 모습이 힘에 겨워 보였다. 

조율사는 건반을 눌러 현의 울림을 들었다. 청진기를 대듯 심장의 박동으로 혈류를 감지하고 숨소리로 심폐 기능을 진단했다. 쿨럭쿨럭. 시기를 놓친 폐렴처럼 쇳소리 같은 기침이 새어 나왔다. 공명판에 탈이 난 모양이었다. 피아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집안은 '수술 중' 사인이 켜진 수술실 같았다. 나는 가족의 수술대를 지키는 마음으로 조율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간간이 들려오는 나무망치 소리는 사뭇 경건하기까지 했다. 침묵에 소리가 있다면 그 소리였을 게다. 

부부는 조율의 과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안방과 거실로 떨어져 있는데도 서로의 눈빛을 읽고 있는 듯했다. 말이 없어도 제때 다가가 도움을 주는 곡진한 모습은 강약이 잘 짜인 악보의 한 소절 같았다. 독일 병정을 닮은 남편의 포르테와 산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깨금발을 옮기는 아내의 피아니시모가 이룬 완벽한 하모니였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가 생각났다. 원룸으로 초대한 그녀는 별거 중이라고 했다. 늦가을 낙엽같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멍해졌다. 가출까지 감행한 결혼이었다. 서울 부잣집 외동딸과 가난한 농가 장손의 만남은 캠퍼스에 순애보를 남겼다. 결혼 후, 그녀의 나날은 남편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변했다. 일 년 전, 남편이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서부터였다. 비서가 남편을 도우면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한층 패기 넘쳐 보이는 남편을 인정할수록 자신은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가, 남의 삶을 산 것 같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도 아내를 이해하기는커녕 결백만을 주장했단다. 최선을 다해 달렸을 뿐인 그로서는 황당했을 수도 있었겠다. 결국, 그는 아내의 완강한 별거 제의에 응하고 말았다.

방 한구석에 놓인 피아노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 친정어머니 초상을 치르고 결혼 전에 자신이 치던 피아노를 가져왔다며, 결혼과 함께 전공을 묻어버린 자신을 안타까워하던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피아노를 전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건반을 누르더니 그녀는 금세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너무 방치했었나 봐. 소리가 안 나.” 

동창들이 전업주부인 처지를 한탄했을 때도 굳건했던 그녀였다. 친구들이 오래전에 겪었던 상실(喪失)을 그녀는 지금 앓고 있었다. 친구를 혼자 두고 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피아노는 벌써 여섯 시간째 조율 중이다. 88개의 건반과 200개가 넘는 현을 가진 피아노는 조화로운 음역으로 '악기의 대명사'로 불린다. 사람의 몸도 수천 개의 기관이 만들어 내는 어울림으로 생존을 이어간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성인의 뼈는 206개이고 관절은 300개 이상, 근육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은 650개 이상이다. 혈관의 길이는 120,000여 킬로미터로 지구를 세 바퀴나 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인간의 몸은 수십억 인구 중에 똑같은 세포를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만큼 정교한 악기다. 부부로 만난다면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횟수의 조율이 필요한 걸까. 

조율사는 피아노의 외장(外裝)을 살폈다. 이음 나사가 떨어져 나간 악보대는 손을 내밀다 만 듯 엉거주춤하고, 의자는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지경으로 기우뚱거린다. 이십여 년을 옮겨 다녔으니 수난의 흔적이 역력하다. 힘든 수술을 끝내고 환자를 인도하는 심정이었으리라. 

“보물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리지요.”

“…….”

과분한 칭찬에 놀란 나는 겉면의 상처도 없앨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정도는 쉽게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들고 있던 면 수건으로 꽤 오래 상처를 어루만졌다. 

“흠집은 조심해서 고쳐야 합니다. 무리해서 없애다 보면 고유음을 잃고 말지요. 소리 속에는 상처의 크기와 무게까지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죠.” 

그들 부부의 삶이 궁금해졌다. 

“두 분 사이에 특별한 조율의 방법이 있나요?”

그들도 긴 조율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남편은 결혼 초, 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마음에도 큰 병이 왔다. 몇 년 동안 방바닥만 지켰다. 생계를 대신한 아내의 정성도 외면할 뿐이었다. 어느 날 귀갓길에 아내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오랜 치료에도 다리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연이어 찾아온 불행은 남편을 돌아오게 했다. 피아노 치기를 즐겼던 그에게 아내는 함께 피아노 조율을 배우기를 권했다.

그가 상기된 얼굴로 건반을 눌렀다. <종달새의 비상>*이었다. 붉어진 귓불 곁으로 종다리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아내의 단아한 눈빛이 남편의 눈길을 따라 새가 날아간 창문을 넘어갔다. 부부의 모습이 황혼 녘에 쟁기질을 끝내고 산비탈에 서 있는 겨리소처럼 정다웠다. 부부란 삶의 파고(波高)에서 생긴 흠집까지도 보듬어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소리를 만들어가는 조율사들이 아닐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연주에 앞서 늘 악기를 튜닝한다. 한시도 쉬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변주(變奏)시키는 소리의 성질 때문이다. 친구네 부부에게도 튜닝이 필요할 게다. 처음엔 불협화음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테지만 조율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변형되기 이전의 소리를 찾을 수 있을 거다. 어쩌면 그들은 벌써 튜닝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별거는 조율을 위한 잠깐의 해체일 뿐이니까. 

이 밤에도 친구는 잃어버린 음(音)을 찾아 건반을 더듬거리고 있을 테지.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전화를 걸었다.      

 “얘, 조율사를 보내줄게.”     


 * The Lark Ascending. 랄프 본 윌리엄스의 곡     

                                                      (『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작. 2015)

작가의 이전글 적자嫡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