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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13. 2023

샤갈의 마을에 들다

     

                   

  흙냄새가 났다. 짭조름한 내음도 났다.


  어머니 손을 잡고 마을에 하나뿐인 화실로 처음 그림을 배우러 가는 어린 샤갈과 눈이 마주쳤다. 낯선 거리 풍경이 들어왔다. 세탁부와 굴뚝 청소부가 사는 집을 지나고, 아내가 파는 브랜디를 몰래 마시고 늘 말처럼 ‘히힝’거리는 마차 아저씨 집을 지나 샤갈의 집에 닿았다. 그의 아버지가 예언자 엘리야가 올 수 있도록 열어두라고 했다던 대문은 열려 있었다.

  문 안으로 한 걸음을 들여놓았다. 동생 다비드가 켜는 만돌린 소리 속으로 <할머니>(no. 4)의 나지막한 기도가 섞여들고, 이제 막 청어 상점에서 인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no. 1)가 청어의 비린내를 씻어내는 목욕물 소리가 들려왔다.

  화려한 빛의 색채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는 사라졌다. 채색화는 몇 점에 불과했고, 무채색의 삽화들이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걸려 있었다. 무명 커튼 뒤로 드리워진 음영이랄까. 채화(彩畵)와도 같이 화려했을 줄로 알았던 한 예술가의 내면이 잿빛 실루엣으로 일렁였다. 색깔을 입지 않고 선이나 면으로만 표현된 이미지들에서 진솔함이 묻어났다. 7월의 어느 뜨거운 아침, 나는 ‘예술의 전당’ 마당을 가로질러 눈이 내리는 샤갈의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무채색 삽화 사이에서 채색화 한 점이 눈에 띄었다. <비쳅스크 위에서>라는 이름을 단 그림 속에서 지팡이를 들고 자루를 멘 한 남자가 유대교 회당이 서 있는 마을 위를 떠 다녔다. 루프트멘슈(Luftmensch). 돈 없고 발붙일 땅이 없어 공중에서 공기만 먹고 사는 사람이란다. 조국을 잃고 방랑하는 유대인을 상징한다는 해설을 듣는 순간, 어쩌면 그가 샤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쳅스크’는 샤갈의 고향으로, 러시아 정부가 지정한 유대인 거주 지역이었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허가증이 필요했을 정도로 폐쇄적인 작은 마을이었다. 학교에서 겪어야 했던 반유대주의적 정서도 이향(離鄕)을 부추겼을 것이다. 샤갈은 더 살았다가는 몸에 곰팡이가 슬 것 같다며 고향을 떠났다. 그 후, 딱 두 번 비쳅스크를 방문하는데 다시 찾은 고향은 그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돌아온 탕아처럼, 그는 본디 그대로의 비쳅스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영원한 뮤즈이자 모델이었던 첫 번째 아내, 벨라(Bella Rosenfeld Chagall)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고향 다리 위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첫눈에 빠져들었다. 꿈과 재능을 오직 샤갈을 위해 바친 벨라는 그때 이미 샤갈의 눈을 읽었다.      

  “두 눈은 뚝뚝 떨어져 있어서 작은 보트처럼 제각각 항해를 하는 것 같았어요.”      

  벨라의 회상대로 세상을 사는 동안 샤갈의 두 눈은 늘 각각 다른 곳을 향했다. 자신이 두 발을 딛고 있는 공간과 고향 비쳅스크, 현실과 이상 사이의 항해였을 수도 있다. 

  <자화상>(no. 17) 앞에 멈췄다. 샤갈의 머리 위로 고향집이 있고, 가슴께에는 부모님과 아내와 딸이 있다. 36세 때 그린 그 그림은 평생의 예술세계를 예언하는 작품이 되었다. 정수리에 그려진 대로, 고향은 샤갈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샤갈의 생애에서 중요한 것들은 다 고향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과 아내 벨라, 사람과 동물을 사랑하는 하시디즘 역시 그랬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 독일과 프랑스, 미국을 거쳐 다시 프랑스로 망명하며 유랑민으로 사는 동안 비쳅스크를 뼛속 깊이 새겼고, 작품으로 담아냈다. 


  위안이었다. 떠나온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고향 섬길을 뛰어다니는 새벽꿈을 꾼다. 해넘이께면 ‘신섬’ 앞바다에 내리던 황혼이 떠오르곤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영혼은 고향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글을 쓸 때면 더욱더 그렇다. 나의 펜 끝은 무시로 고향에 닿는다. 그런 이유로 소재 빈곤과 유년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를 문학적 한계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샤갈을 만나고부터는 더는 신섬을 한계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영감의 뿌리가 되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무 살에 꿈을 위해 삼등칸 열차에 몸을 싣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던 샤갈처럼, 나는 일곱 살 때 도선을 타고 뭍으로 나왔다. 고등학교는 신섬에서 더 멀리 떨어진 진주로 갔다. 졸업식이 끝나고는 줄행랑치듯 서울행 야간열차를 타고 열세 시간을 달려 천 리 길로 유학을 와버렸다. 기울기 시작했던 아버지의 사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홉 남매의 맏이이면서도 집안의 짐을 아버지에게 다 맡기고 떠났던 샤갈처럼, 칠 남매의 맏자식으로서 져야 할 짐을 내팽개친 채 고향집을 떠나왔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 고향을 잊다시피 했다. 잊으려고 애를 썼다.

  언젠가부터 신섬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시의 삶에 지쳐가던 때였다. 가끔은 생명 대신 주검을 띄워 올리고 선한 사람들의 절규조차 삼키던 비정했던 고향 바다가, 그토록 큰 슬픔에도 바다로 향하던 고향 사람들의 모진 삶이 새록새록 그리워졌다. 원래의 나에게서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가고 싶었다. 세상에 내디딘 나의 첫발자국도 섬길 어딘가에 한 장의 삽화로 새겨져 있을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원형의 나를 무한정 복사할 수 있으리라.

  샤갈에게서처럼, 내게 소중한 것들은 고향에서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믿음도, 꿈도, 사랑도……. 첫 배움도 신섬 사람들이 믿었던 원시 신앙에서 받았다. 인간은 약하기에 돕고 살아야 하며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정령(精靈)이 있어 존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가난했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려던 마음도, 악다구니질로 죽일 듯 싸우다가도 태풍 앞에서는 함께 지붕을 얽어매고 배를 묶던 손길도, 풍어제를 하는 날이면 무릎을 맞대고 올리던 비손질도.

  고향을 되새김질하는 샤갈을 두고 피카소는 왜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느냐고 빈정댔다가 결별하고 만다. 샤갈은 비쳅스크로 가는 대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고, 그곳의 노인과 랍비, 떠돌이 같은 가난한 유대인들을 그리며 그들에 대한 사랑을 세상에 알렸다. 

  나도 떠나온 이상, 잘 살아야 했다. 신섬에 남아 신섬을 지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디서건 뿌리를 내리고 치열하게 살아야 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고향을 떠나온 뒤로 나는 늘 경계인이었다. 나의 언어는 경상도 토박이말에 서울말이 섞인 정체불명의 혼잣말이었고, 영혼은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이로 살았다. 숱한 버림을 받으면서도 고향은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다니며 제 속의 것을 무상으로 내어 주었다. 미안했다. 고향으로부터 받은 것은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았다. 적게나마 나누고 싶었다. 그것이 내 작은 문학의 시작이었다. 내게도 샤갈처럼 고향을 더 써야 하는 책무가 생겼다.

  샤갈을 만나며 삽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책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끼워 넣는 밑그림 정도로 여기던 것을, 온전한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무리 작은 삶도 다른 삶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최선이라는 깨우침이었다. 무채색의 시간은 화려하게 채색되기 전에 소박하게 존재하는 원형(原型)의 시간이며, 고향은 누구에게나 샤갈의 삽화처럼 무채색의 시간으로 실재한다는 발견도 새로운 눈뜸이었다. 고향에 뿌리를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오롯이 보듬는다는 뜻 아닐까. 

  “삶이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라면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했던 샤갈. 그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러시아혁명과 반유대주의의 광풍을 겪는 순간에도 고향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세상을 향한 보편적 사랑과 희망으로 승화시켜 열정적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그의 친구가 말한 대로,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닳아 없어지듯이 세상을 떠났다. 

  작별의 인사였을까. 고향을 향한 샤갈의 고백이 들려왔다. 

  “나의 고향 비쳅스크야. 비록 지금 나는 너를 떠나 있지만 내 작품에 너와의 기쁘고도 슬펐던 추억이 반영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다.”     

  자신의 생애에는 한 명의 스승도 없었다던 샤갈. 비쳅스크야말로 샤갈의 유일한 스승이 아니었을까. 내게 신섬이 그렇듯이. 전시장을 찾았을 때 느껴지던 짠 내음은 내 고향 신섬의 냄새였다.

                                                                                 (『인간·철학·수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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