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선셋>의 촬영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가다.
내게 파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영화 <비포선셋>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100% 파리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인 제시와 셀린느는 파리 제5구에 있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평소에도 사람들로 북적대는 유서 깊은 헌책방에서 9년에만 재회를 한다.
제시와 셀린느는 헌책방을 나와 작은 길 '뤼 생 줄리앙 르 포브르'를 걷던 장면에 참 가슴 시렸다. 왜냐하면 9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을 실감하듯이 "하이"와 "헬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기 때문이다. 또 어느새 두 사람은 뤼 생 줄리앙 르 포브르를 걸어가면서 서로의 팔을 슬쩍 잡는 것으로 그동안의 묵은 그리움과 불끈 솟아나는 반가움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뤼 생 줄리앙 르 포브르는 벽돌이 촘촘히 박혀 있는 일방톨행 1차로 양옆에는 소박하고 아담한 식당들과 별 두 개짜리 작은 호텔이 들어서 있는 파리의 전형적인 뒷골목이다. 내가 영화 속 그 길을 걸었을 때 두 사람의 그리움이 전해지는 것 같아 순간 마음이 찡했다. 내가 너무 감정을 이입했나 싶었지만 여행은 그런 감수성을 자극해 주는 고마운 친구이니까 괜찮다.
누군가는 내게 비포선라이즈보다 비포선셋이 더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누구나 가슴에 간직하고 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우리는 수필문학의 대가인 피천득 님의 '인연'에 실린 이 글처럼,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그리워하면서 한 번 만나고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서로 아니 만나 살기도 한다."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셀린느는 제시에게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러준다.
"왈츠 한번 들어보세요.
그냥 슬쩍 떠오르는 노래.
하룻밤 사랑의 노래.
그대에게는 하룻밤의 추억이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소중했던 시간.
그날은 나의 전부랍니다.
그런 사랑은 처음이었지요."
이루지 못한 사랑은 안타깝지만, 그 안타까움이 만든 그리움은 영원한 것이다. 비록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잊혀진다 해도, 사랑하였기에 행복할 것이다.
내 인생 첫 배낭여행의 첫 방문지가 파리인 것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느냐에 따라 여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비포선셋의 촬영지를 걸으니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내가 왠지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