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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로즈 Nov 10. 2023

사진의 속성, 기록성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옛 강릉역 마지막 기차 (2014. 9. 14) M6+Rigid with T-MAX100

 

 어릴 적부터 내 모습을 남겨 놓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지 알 순 없지만, 그런 성향이 20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여름 방학 때 부모님 댁을 방문해서 장롱 속에서 발견한 내 앨범을 펼쳐보면서 바뀌게 되었다.


 앨범을 발견하자 괜히 어릴 적 모습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 앨범은 텅 빈 앨범 그 자체였다. 그리 크지 않는 앨범인데도 반을 채우지 못한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그날 이후로 조금씩 내 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하며,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어렸던 지난날에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나에게도 시간이 지나고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특히 갑자기 철거된 건물 앞에 서게 되면 나도 몰래 죄책감에 사로잡혀 ‘온전한 건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나?’ 하고 기억 속을 더듬게 된다. 집에 돌아와 철거되기 전에 담아놓은 사진을 찾게 되면 안도감에 누구보다 ‘사진 하기 참 잘했다’라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부지런히 내 주변의 모습들에 관심을 갖고 사진을 하라고 가르친다.


 사진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가 “기록성”이다. 단순한 복사의 개념이 아닌, ‘모든 것은 사라진다’라는 것을 내 사진 인생의 화두로 삼고 언젠가 사라질지 모를 것들을 흑백필름 속에 담아둔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역사가 아니고, 기억되지 않은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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