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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로즈 Nov 13. 2023

사진놀이터 묵호항

어판장 콘크리트 건물이 철거되었다.

철거되는 묵호항 어판장 2010



 지난 시간 동안 내 놀이터 같았던 묵호항 어판장이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틀 서울에 다녀왔더니 철거를 시작했다는 소리에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얼른 묵호항으로 향했다. 이미 반쯤은 사라진 상태였는데, 살점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아픔을 맛봤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모습이지만, 내 기억 속에서조차 잊혀질까봐 두렵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편치 않아 먼 길을 무작정 걸어왔다.



 2010년 9월 12일, 마음만큼 흐린 가을에 묵호항 옛 콘크리트 건물이 철거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빨갛고 파란 고무 대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어판장의 모습도 이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형선고와 같은 뜻이었다.


 새벽바다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한 활어를 어판장에서 바로바로 경매를 통해서 낙찰을 받아, 어판장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횟감으로 팔아오던 모습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먼동이 뜨기 전 새벽바다에서 집어등을 밝혀 깊은 바닷속에 사는 고기들을 유인한다. 철마다 많은 고기들을 내어주는 자연의 넓은 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싱싱함 그 자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던 어판장의 모습이었다.



철거되는 묵호항 어판장 2010

 2010년 9월 18일, 반쯤 떨어져 나간 건물 위에 마지막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올라와 아래를 바라보면 좁은 고무대야들이 촘촘히 놓여있는 모습들과 그 안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는 활어들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 고무대야들을 사이에 두고 상인과 손님들 간에 흥정이 실시간으로 이뤄졌다.


 이제는 더 이상 올라갈 곳도, 그래서 다시는 내려다볼 곳도 없어져서 슬퍼졌다. 왜냐하면 그곳에 올라 어판장 아래에서 진행되는 모습들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왠지 모르게 내가 전지전능한 이의 모습이 된 것처럼 신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의 존재를 모른 채 오직 활어에만 집중하기에 나는 그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옛 콘크리트 건물이 철거가 되면서 그때는 조금 특별했던 묵호항이 이제는 평범한 모습이 될 것이 뻔해 보여서 슬펐다. 마치 나이가 들면 세상일에 조금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연륜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늘 존재했기에 그 가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사라져야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난 항상 내 놀이터였던 묵호항이 있어서 행복했다. 오래된 아름다움을 간직했던 그곳에서 느꼈던 충만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은 묵호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쉼 없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가장 숭고한 삶의 가치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그날 묵호항에서 돌아오면서 쓴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언젠가 존재했던 옛 콘크리트 건물은 이제는 내 사진 속에만 남아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물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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