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을 떠나 다시 산속으로.

존 뮤어 트레일 - Day 17

by Noelles Adventure

2016년 6월 19일 Day 17.



출발: Reds Meadow

도착: Thousand Island Lake

총 거리: 26.55 km

누적 거리: 302.71 km








산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문명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프렌치토스트를 알차게 사 먹고 커피까지 딱 마시고 출발했다. 레즈 메도우를 떠나는 길에 표지판이 있었는데, 벌써 2주 전에 올라갔었던 휘트니 산 방향 표지판이 있길래 찍어봤다.





2016-06-19 09.41.21.jpg 휘트니는 이미 저 멀리




내가 이 전날 묵었던 레즈 메도우에 숙박시설과 슈퍼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주상절리 같은 건데 이게 뭐 미국 자연유산이라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별로 안 크고 그닥 신기하진 않다. 오히려 멀리서 보면 허허벌판에 저거 하나만 불쑥 솟아 있어서 멀리서 봤을 때 더 멋져 보일 정도였다. 암튼 이 관광지의 이름은 Devil's postpile이다. 이걸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한 20명 정도를 지나친 것 같다. 존 뮤어 트레일 (JMT)에서 가장 많은 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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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방 내려놓고 한 장 찍어 봤다. 내가 큰 배낭 짊어지고 가니까 관광객들이 도대체 어디 가냐고 물어봤다. 존 뮤어 트레일 한다고 했더니 미국애들도 잘 모르더라. 그게 뭐야? 먹는 거야? 저기 밑에서 저기 위에까지 걸어간다고 했더니 관광객들이 막 박수쳐줬다. 나름 뿌듯했다... 숨겨왔던 나~의~ 꿈틀거리는 관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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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아름다운 호수를 4-5개를 만났다. 정말이지 날씨만 따뜻했더라면 저 물에 뛰어 들어서 수영했을 거다. 모래도 아주 곱고 넘나 수영하기 최적화된 호수였다. 물 색깔 좀 보세요! 우리나라에서는 호수에 비치가 있다는 게 상상이 안 갔는데, 유럽이나 북미는 호수에서도 저런 모래가 있다면 비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수영도 많이 하고 피크닉도 오고. 내가 박사를 했던 곳은 호수가 정말 많은 주였는데, 짧은 여름이 오면 될 수 있는 대로 호수에 자주 갔다. 그래 봤자 박사생이 뭔 시간이 있겠어요. 1년에 한 3번 가면 많이 간 것이었다. 어쨌든 박사 하던 곳에서나 보던 맑고 예쁘고 모래가 고운 호숫가 비치를 보니, 그렇게 벗어나고 싶고 탈출하고 싶었던 박사 생활을 난 곧 그리워하겠구나 싶더라. 실제로도 그랬고. 아직 준비가 안됐음에도 무리해서 잡 마켓에 나갈 정도로 박사 생활은 정말 진절머리 나게 괴로웠다. 난 여길 떠나면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라고 했지만, 저 호수를 보는 순간 박사를 했던 대학교, 도시, 호수, 친구들이 떠올랐다. 트레이스 애드킨스의 You're gonna miss this가 생각나네.






99B1993F5C4A7133096590 호수가 예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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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었다. 햇살이 아주 따따~~~앗 하니 좋았다. 지퍼백에는 간식으로 가져간 쿠키가 들어있다. 쿠키 포장지에 써 있는 열량을 토대로, 내 간식 한 봉지당 몇 kcal가 들어있는지를 적었다. 난 평상시엔 하루에 약 1300 kcal 정도를 먹는데, 이 트레일에서는 2500 kcal를 먹을 것 같아서 (PCT 하이커들 중에 심박수를 기록해서 본인이 대충 몇 kcal가 필요했던 것 같다는 블로그 글을 토대로) 그에 맞춰서 음식들을 가져갔는데 웬 걸. 많이 가져와도 너무 많이 가져왔다. 배는 항상 고팠던 것 같다. 근데 맨날 똑같은 육포, 트레일 바, 트레일 믹스, 맥 앤 치즈, 전투식량을 먹다 보면 질려서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배는 고파도 그만 먹는 이상한 사태가 일어난다. 살을 빼고 싶은 분은 존 뮤어 트레일 하세요. 살이 안 빠질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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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들 쪽으로 가는 게 오늘의 일정이다. 저 봉우리 바로 밑에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가 아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갈수록 사진 찍는 빈도수가 적어져서, 사진상으로는 급 저 호수까지 왔다. 이 날은 정말 햇살이 어찌나 좋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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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 아름답다! 이제 저 멀리 있던 봉우리가 거의 정면에 있다. 호수가 너무 이쁘고 물 깨끗하고 윤슬 반짝이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보기엔 매우 고요해 보이지만 사실 바람이 어마어마어마하게 많이 불었다. 이 호수부터 이날 텐트 친 다른 호수까지 바람이 계속 불어댔다.




이 호수에서는 3박 4일 정도로 캠핑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요세미티 끝자락에서 시작하면 한 3-4일 정도면 여기까지 올 수 있다. 이때 만난 캠퍼들은 내년에 존 뮤어 트레일을 하려고 예행연습 중이라고 했다. 그들의 목표는 하루에 16킬로미터가 채 안된다고 했다. 사람이 참 웃긴 게 내 올챙이 적은 생각 못하고 "헐 그거밖에 안 걸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99F003455C4A7158146D18 햇살이 나면 기분이 조크등여



이 호수를 끼고 또 한참을 걸어서 급 텐트칠 곳에 도착했다. 이날 텐트를 친 곳은 Thousand Island Lake이다. 이곳을 지나면 곧 요세미티에 입성하게 된다.




99F05D455C4A716014979E Thousand Island Lake 초입



땅을 보니 눈이 막 오늘 다 녹은 듯한 느낌이었다. 웬만한 땅은 다 축축하게 젖어있어서 호수를 따라서 점점 깊이 들어가서 텐트 쳤다. 문제는 바람이 계속 너무 많이 불어서 텐트 말뚝을 깊이 박아야 했는데, 호수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이 죄다 돌바닥이었다. 그래서 텐트 치는데 오래 걸렸다. 주변에 무거운 돌덩이란 돌덩이는 죄다 모아다가 아주 돌무덤처럼 텐트를 쳤다. 근데 누군가가 용변을 봐 놓고 그걸 큰 돌덩이로 눌러 놓은 경우가 많아서 (그러면 안되는데ㅠㅠ) 잘못하다가 더럽고 냄새 가득한 돌덩이를 집으면 기분이 참...



파타고니아와 존 뮤어 트레일에서 체득한 게 있다면 산에서 용변을 어떻게 보는가이다. 참고로 산에서 용변을 볼 때는 물가에서는 적어도 10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땅을 파고 거기다 싸고 다시 흙으로 잘 덮어줘야 한다. 휴지는 bio-degrable을 쓰거나 아니면 지퍼백에 싸가지고 다니면서, 밤에 불 피울 수 있을 때 태워야 한다. 산에서 용변하는 팁을 몇 개 더 풀자면

(1) 바람의 방향을 잘 봐야 한다. 당연한 소린데 바람을 등져야 소변이 나한테 안 튄다. 근데 이 당연한 걸 처음에 생각을 못한다.

(2) 경사를 잘 봐야 한다. 역시 당연한 소린데 내리막을 바라보며 소변을 봐야 소변이 내 부츠에 안 닿는다. 역시 이 당연한 걸 처음에는 잘 모른다.

(3) 풀숲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 보통 풀숲에서 용변을 보면 잘 가려질 거라 생각해서 그리들 간다. 근데 잔풀들이 엉덩이에 닿아서 매우 찜찜하다. 그리고 벌레가 그런 풀을 타고 올라올 수도 있고.

(4) 바위도 좋지 않다. 왜냐면 오줌이 나한테 도로 튀거든요... 차라리 맨 땅이 훨씬 낫다. 트레일에 배낭을 놓고 한 10-15미터 깊숙이 들어가, 큰 나무 뒤에 숨어서 쌌다.

(5) 휴지를 바지 주머니에 두면 안 되고 윗도리 주머니에 둬야 한다. 일단 바지에 넣으면 땀 때문에 젖는다. 그리고 쭈그려 앉은 상태에서 휴지를 꺼내기 매우 힘들다. 그래서 레인재킷 주머니에 넣는 것이 최고다.

(6) 손 세정제는 늘 가까이! 내 배낭 벨트에 주머니가 있었는데, 거기에 손 세정제를 넣어놨다. 용변 보자마자 배낭의 다른 부분을 만지기 전에 손 세정제로 싹싹 닦고 다른 것들을 만지면 한결 맘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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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다 말고 트레일 믹스 사진을 찍어봤다. 계산해보니 3일만 지나면 벌써 트레일이 끝나게 되기 때문에 뭐라도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급 시원 섭섭해졌다. 빨리 끝내고 따뜻한 집에서 샤워하고 따뜻한 밥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내내 하면서 걸었지만, 막상 며칠 지나면 끝난다니 아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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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텐트 친 호수에 해가 지기 시작한다. 내가 텐트 친 곳에서 한 3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누가 다른 텐트를 쳐놨는데, 요세미티 쪽에서 올라온 캠퍼들이었다. 그들은 곰통을 안 가져왔는데 (그러면 안됨. 곰통 필수임.) 대신에 먹을 것을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을 수 있는 주머니를 가져왔다. 근데 곰이 그런 식량은 전부 다 털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존 뮤어 트레일에서는 (특히 요세미티 근처) 곰통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무게 줄인다고 저런 주머니 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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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이 아직도 생각난다.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었지만 하루 종일 따뜻한 햇볕을 받아서 그런지, 처음으로 춥지가 않았다. 물론 내복+플리스+다운패딩+레인자켓+모자+반다나를 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춥지 않았다는 말이다. 해가 넘어가자마자 달이 떠 올랐다. 알고 보니 이날이 보름달이었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달이 밝더라니. 달이 어느 정도로 밝았냐면, 밤에 볼일 보러 나가는데도 바깥이 훤하게 다 보일 정도여서 헤드라이트를 안 썼던 밤이다. 이런 보름달을 만난 건 두 번이 더 있는데, 한 번은 박사 하던 곳에서 캠핑을 갔을 때 블루 문이 떴던 걸 본 것이다. 두 번째는 존 뮤어 트레일을 한 뒤 1년 뒤에 브라질에서 렌쏘이스 마라냔세스를 횡단했는데, 여기서 새벽 3시부터 달빛을 받으며 호수와 강을 걸어서 건너고 모래언덕을 넘었던 기억이 난다. 이때도 역시 헤드라이트를 안 써도 땅이 다 보여서 신기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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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안에 들어가서 달을 다시 한번 찍어봤다. 꼭 해 같지 않나요? 아까 말했듯 이날 밤은 참 기억이 많이 난다. 뭔가 처음으로 "아 트레일이 정말 이제 끝나간다"라고 느꼈다. 그리고 트레일 중에서 정말 최초로 안 춥게 잔 날이다. 자러 들어갔는데 세상에 하나도 안 추웠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왜 다 끝나가려니까 날씨가 따뜻해지는 거야 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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