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 트레일 - Day 18
출발: Thousand Island Lakes
도착: Lyell Forks
총 거리: 17.22 km
누적 거리: 319.93 km
이 전날 밤 묵었던 Thousand Island Lake를 떠나며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에 탁 트인 호수와 설산이 넘나 멋있어서 찍었다. 눈누난나~ 이 정도 속도라면 오늘 내로 요세미티에 입성하게 될 거다. 유후~
신나서 걷는 도중에 눈밭이 나와서 길을 잃었다. 눈밭에 나 있는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앞서 걷던 무리들도 길을 잃었던 거다. 뱅뱅 돌다가 결국 핸드폰에 GPS랑 지도를 켜 보니까 내가 트레일에서 한 100미터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다시 트레일로 돌아가는 도중에 사고가 났다.
오른발을 내디뎠는데 눈 밑으로 쑥 꺼지면서 개울에 발을 빠졌다. 그리고 돌에 발을 헛디딘 거다. 내가 걷고 있던 눈밭이 개울 위였는데 눈 때문에 밑이 개울 인지도 몰랐다. 거기에 발을 접질렸다. 진짜 너무 아파서 으악 소리 내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개울도 꽤 깊어서 엉덩이까지 물 다 젖었는데도 일어나질 못하겠더라. 일단 무거운 배낭을 벗어 놓고 개울에서 기어서 빠져나왔다.
문제는 접지른 발목 때문에 걷지를 못하겠더라. 이미 요세미티에 워낙 가까운 데다가 (요세미티까지 근 20킬로 정도 남은 상태) 식량도 워낙 많이 있어서 사실 무섭진 않았다. 게다가 날씨도 어제부터 따뜻해져서. 여차하면 그냥 거기서 텐트 치고 발목이 좀 나을 때까지 2-3일은 더 지내도 괜찮을만한 상태였다. 무서운 마음보다는 속상한 마음이 넘 컸다. 진짜 고지가 코앞인데. 다 왔는데. 왜 이런 사고를.
일단 비상약에 있는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통증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주변에 온통 눈밭이므로 눈에 발목을 얹어서 냉찜질을 하면서, 자 이제 내가 뭘 어케 해야 요세미티까지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넘어지고 나서 한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두 번째 트레일 엔젤을 만나게 된다. 코넬리우스라는 트레일 네임을 쓰는 애였는데 내가 널브러져서 발목 찜질하는 걸 보더니 발목 삐었냐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나름 응급처치를 할 줄 알아서 붕대로 내 발목을 감아줬다. 그리고 나한테 엄청나게 센 진통제를 줬다. 과장 안 하고 새끼손톱만큼을 떼어 줬다. 너무 아프면 먹으라고요. 그러면서 그 새끼손톱만 한 게 1회분이라고 했다. 내가 체구도 작고 그러니까 한 번에 다 먹지 말고 나눠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코넬리우스는 제 갈길을 갔다. 나는 경황이 없어서 연락처도 물어보지 못하고 그냥 고맙다는 말 밖에 못했다.
나는 이걸 먹을까 말까 진심 고민을 했다. 안 먹고 걸어보려고 신발을 겨우 낑겨신고 일어나는 순간. 배낭을 메지도 않았는데 걷지를 못하겠더라. 그래서 그때 결심했다. 그 약을 먹어봐야겠다고요. 혹시 모르니 4분의 1만 먹었다. 그 뒤에 어케 됐냐면요...
나는 인사불성이 되어 2시간 동안 진짜 세상 돌아가는 줄 모르고 트레일 한복판에서 대자로 뻗어서 낮잠을 자게 됐다. 약이 나한테 너무나 셌던 거다. 약간 밤을 이틀 꼬박 새우고 나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졸음 있잖아요? 그런 잠이 막 쏟아졌다. 자고 있는데 주변에 다른 PCT 하이커들이 지나가면서 "쟤 뭐야. 괜찮나?"이런 말을 하고 지나갔는데, 그런 소리가 귀에 들리기는 하는데 도저히 몸을 일으키거나 말대꾸할 기운도 없어서 그냥 무시하고 계속 잤다.
2시간을 꿀잠을 자고 나서 센 진통제 기운이 남아 있을 때 빨리 걸어야겠다 싶어서 일어났다. 발이 부어서 신발이 잘 안 들어갔다. 신발끈을 엄청 느슨하게 하고 나서 겨우 발을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진심 유치원생이 아장아장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걸었다. 오르막은 차라리 괜찮은데 내리막이 죽음이었다. 문제는 내가 오르막은 이미 거의 다 끝낸 상태였고 앞으로 남은 트레일은 죄다 내리막인 것.
존 뮤어 트레일의 마지막 고개인 도냐휴 패스 (Donahue Pass)다. 여기를 넘어가면 드디어 요세미티 공원이 나온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존 뮤어 트레일의 종착지인 요세미티에 입성하게 된다.
화살표로 내려가면 요세미티다. 이제부터 끝없는 내리막이 시작된다.
어케어케 도나휴 패스 밑에까지 도착했다. 텐트를 치고 신발을 말리려고 불을 피웠다. 요세미티 내부에서는 불을 피우면 안 되는데 아직 요세미티 경계를 넘지는 않아서 불을 피울 수 있었다. 불을 피우고 밥을 먹으며 생각해봤다.
요세미티 내부에는 롯지, 슈퍼 등등의 부대시설이 곳곳에 퍼져 있는데, 여기서 14.32km만 걸으면 첫 번째 시설에 도착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36km를 걸으면 존 뮤어 트레일 끝에 도착한다. 고민이 좀 됐다. 내일 첫 번째 시설까지만 가고 그냥 거기서 끝낼까, 아니면 끝까지 밀어붙여서 며칠이 더 걸리든 트레일 끝까지 갈까. 발목을 이렇게 접질렀는데 앞으로 내리막을 50킬로를 더 가려니까 이러다가는 제 발목이 회생 불가능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리고 이미 걸을 만큼 넘나 충분히 걸었고 제 산행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고, 빨리 샤워하고 따뜻한 데서 자고 싶은 마음도 컸다.
암튼 고민을 하면서 잠을 청하는데 발목이 너무 아파서 잠이 안 오더라. 그래서 아까 코넬리우스가 준 센 진통제를 쪼개서 조금 먹고 잤는데, 그래도 잠을 잘 못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