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 트레일 마지막 날 - Day 19
출발: Lyell Forks
도착: Tuolumne lodge junction
총 거리: 14.32 km
누적 거리: 334.25 km
어제 발목을 삔 것이 너무 속상했다. 발목만 제대로라면 오늘 트레일 완전 끝낼 수 있었는데. 어제 내리막이라서 30킬로 넘게 걸을 수 있었는데, 그럼 오늘 다 끝낼 수 있었는데. 아침부터 걷는 내내 계속 고민했다. 과연 오늘 요세미티 도착하면 끝낼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갈 것인가.
요세미티에 가까워진다. 으쌰으쌰 좀만 더 걸으면 문명을 만날 수 있다. 요세미티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나게 됐다. 대체로 당일 산행을 온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큰 배낭을 메고 절뚝거리면서 가는 걸 보니 굉장히 불쌍히 여겼고, 또 한편으로는 나한테 대단하고 용감하다고 박수도 쳐주고 그랬다. 걷는 내내 나는 PCT 하이커들 사이에서 고작 JMT만 하는 쭈구리였는데, 막상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훌륭하다고 해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요세미티가 시작되는 경계에 개울이 있는데 그 개울에 이런 귀여운 돌이 있었다. 요세미티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미 내 스스로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분히 얻었고
이미 내 스스로에게 나를 충분히 증명해 보였고
이미 충분히 걸었고
이미 내가 이 산행에서 얻어가고 싶었던 건 모두 다 얻었다.
(1) 첫째는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소모하지 않는 것,
(2) 둘째는 내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걸으면서 둘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소중히 여겨서 더 이상 아픈 발목을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난 소중하니깐여! 요세미티는 언제가 있을 거고 유명한 관광지이니까 아마 언젠간 분명히 다시 와서 남은 길을 걸을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다친 발목을 절둑거리면서까지 JMT를 끝까지 걸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물론 정말 얼마 안 남았고 아마 다치지 않았다면 아주 신나게 끝까지 걸었을 테지만 "JMT를 끝까지 갔다"는 일종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내 건강을 담보로 삼고 싶진 않았다. 그래 이번엔 여기까지. 애초에 50km 더 멀리 시작하기도 했으니까. 충분히 했다.
예전에 PCT 하이커들이 3-4달을 막 꼬박 다 걸어 놓고선, 한 한 달만 남겨 놓고 PCT를 끝까지 끝내지 않고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를 종종 봤다. 책이자 영화인 와일드에서 나온 셰릴 스트레이드도 마찬가지였다. 다 왔는데 끝까지 안 가다니. 그때는 그게 이해가 안 갔다. 거의 다 갔는데, 더 갈 수 있는데, 왜 끝까지 안 가지? 싶었는데, 지금 보니까 이해가 가더라. 당연히 충분히 더 갈 수 있는데 문제는 "더 가고 싶은가"였다. 과연 이게 내가 원하는 건가 이걸 끝내서 내가 행복할 건가 이걸 내가 하고 싶은 건가에 따라서 더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거였다.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면 되는 거다. 그게 트레일 중간에 그만두는 거라도.
그리고 한 2시쯤이었을까요? 나는 요세미티의 첫 번째 롯지 시설에 도착하게 됐다.
꺄아아아아아악! 드디어 끝났다. 꺄오꺄오꺄오꺄오! 버스정류장에서 하프돔 있는 곳을 지나 요세미티 밑에까지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 위세 버스 정류장 시간표를 봤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길래 롯지 내에 있는 슈퍼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로 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전래 자신감 충만하고 전래 행복한 한량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뙇! 그 전날 내 발목에 붕대를 감아주고 진통제까지 줬던 코넬리우스가 거기서 맥주 마시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코넬리우스가 저를 보고 달려와서 잘 걸어왔다고 안아줬다. 크흡 마음 따뜻한 녀석. 안 그래도 연락처로 모르고 사진도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요세미티 끝에서 끝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만 2시간이 걸렸다. 피곤했지만 내려가면서 단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창밖을 계속 쳐다봤다. 버스에 같이 탄 사람들은 한 4-5명 정도였는데 전부 다 PCT 하이커들이었다. 원래 PCT는 요세미티를 그냥 지나쳐(?) 가는 트레일인데 요세미티에 부대시설이 많으니까 보통 여기서 며칠 정도 쉬었다 간다. 몇몇 하이커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요세미티로 와서 같이 며칠을 보낼 거라고 했다. 버스에 같이 탔던 하이커들은 하프돔을 올라가 보겠다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아 내가 저길 걸어갔어야 하는데 싶은 아쉬운 마음 반, 그래도 거의 다 걸어서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 반이었다.
요세미티 맨 밑에까지 도착해서 또 버스를 타고 제일 가까운 도시인 Merced로 갔다. 이미 밤이 늦어서 렌터카 회사도 전부 문을 닫았고 해서 여기서 하룻밤을 묵어 가기로 했다. 싸구려 모텔에 들어가서 젤 먼저 샤워를 했다. 꺄 넘나 좋은 것! 문제는 샤워하고 나서 입을 깨끗한 옷이 없어서 더러운 옷을 다시 입어야 했다.
모텔에서 방을 너무 큰 걸 줘서 자리가 남아돌았다. 더러운 옷들을 방바닥에 죄다 전시해 놓고, 텐트랑 침낭을 전부 꺼내서 물기를 말렸다. 그동안 고생하느라 구멍이 숭숭 나버린 내 게이터. 배가 고파서 모텔 바로 옆에 있는 버거킹에 가서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치킨너겟 같은 것들을 몽땅 시켰다. 콜라 쪽쪽 빨면서 게눈 감추듯 죄다 해치웠다.
뭔가 이렇게 밤이 가는 게 아쉬워서, 정말 너무너무 피곤하고 졸렸지만 계속 보지도 않는 티비를 켜 놓고 어물쩡대다 잠들었다.
만 19일, 총 334.25 km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