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 트레일을 하게 된 이유

이걸 왜 해?

by Noelles Adventure

때는 2016년 5월 초. 6월 1일에 박사 디펜스를 마치고 드디어 졸업을 하는데, 내 첫 직장은 7월 1일부터 시작이라 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휴가는 6월 딱 한 달이었다. 사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가고 싶었지만 비자 문제 때문에 미국 내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존 뮤어 트레일 (JMT). 가기로 정하고 나서 보니까 한 3주 남은 시점이었다.


원래 운동은 웨이트 1주일에 3번 정도 하는 정도였는데, 1주일에 달리기 3번을 추가했다. 한번 뛸 때 한 12킬로씩 뛰었다. 그치만 아무리 준비해봤자 직접 산 타는 것만큼 좋은 준비는 없더라. 산 타다 보면 다리가 적응이 돼서 오르막도 막 쑥쑥 올라가게 되는데 그걸 trail leg가 생겼다고 한다.




이걸 왜 해?


내가 존 뮤어 트레일 (JMT)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존 뮤어 트레일 가기 한 2년 전에 처음으로 투어 같은 거 말고 친구랑 둘이서 짐 죄다 짊어지고 5박 6일 등산을 한 적이 있었다. 최남단 파타고니아였는데 남극이랑 너어무 가까워서 진짜 날씨가 과장 안 하고 10분마다 변했다. 밤새 눈폭풍 맞고 안개가 껴서 앞도 안 보이고 바람은 오지게 불어서 걸을 때마다 뒤뚱거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곳이 아니라서 1년에 등산객이 200명이 채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예 등산로가 없어져있는 구간이 많았고 GPS도 없고 제대로 된 지도도 없어서 길을 수도 없이 잃었다. 참고로 여기 트레일 이름은 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한 Dientes de Navarino다. 칠레에 있다.


아름다운 Dientes de Navarino 트레일


그때 스스로 모든 걸 짊어지고 등산을 해냈다는 그 성취감이 너무나 커서, 그때 그 성취감에 발로한 내 자신감이 거의 1년 동안 지속됐다. 내가 이걸 해냈다니, 내가 여길 걸어서 종주했다니 이런 성취감과 자신감이 내가 정말 힘들었던 시절을 견뎌낼 수 있는 데에 아주 큰 힘이 됐다.


내게 큰 시련을 준 박사과정을 끝내고 드디어 취직이 되긴 했는데 막상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직장에 나갈 생각을 하니까 너무 두렵고 위축이 되더라. 그래서 내 자신감을 하늘 높이 올려놓기 위해서 뭔가 좀 챌린징 한 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주 챌린징 하지만 날 죽일 정도는 아니고 내가 여차저차 애쓰면 넘을 수 있을만한 그런 챌린지. 그래서 뭘 할까 하다가 이럴 바에야 정말 챌린징 한 하이킹을 가자!해서 결정한 게 존 뮤어 트레일이었다.



2.

모든 박사생들이 그렇듯 나는 박사 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심지어 박사 하는 도중 내 나이 26에 이혼도 했다. 힘든 몇 년을 견디면서 무기력증이 매우 심해졌고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말 그대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최소의 일을 빼놓고는 정말 옴짝달싹 하기가 싫었다. 유일하게 그나마 계속한 게 운동이었다. 물론 운동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고, 운동이라도 해야 그나마 내가 나를 좀 덜 미워할 수 있기 때문에 했다. 계속 집에서 집순이 하면서 빨래도, 청소도, 다 미뤄놓고 그냥 티비만 보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나는 그런 내 자신이 늘 싫었고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뭔가 이런 생활을 타개할 전환점이 필요했다.


솔직히 박사 하느라 고생했는데 그냥 하와이나 가서 딩가딩가 놀면서 매일 티비보고 영화 보고 만화책 보고 그러고 놀까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내 자신을 용납하면 더더욱 내 자신한테 실망할 것 같았다. 존 뮤어 트레일을 가려면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해야 하고 집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장비도 사느라 집 밖에 나가게 될 거고 resupply 택배 부치고 할게 많으니까 아무래도 부산하게 움직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이걸 준비하게 되면 적어도 내가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와서 뭐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계기로 트레일에 가기로 했다.




사족



근데 함정이 뭔지 아나? JMT 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울증에 시달린다. 4년이나 지난 마당에 왜 갑자기 이런 글을 올리고 싶어 할까 생각해봤는데 사실 약 2년 전 다음 카페에 여행기를 올린 적이 있지만..., 어쩌면 바닥에 떨어진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키고 싶어서 같다. 뭔가 내가 뭔가를 해냈고, 그러니까 나는 할 수 있다고 이런 자신감을 찾고 싶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요.


한편으로는 나는 지금 정말 나약하고 무기력증에 빠진 게으른 사람인데 뭔가 과거의 영광을 팔아먹음으로써 가짜로 자신감을 북돋는 것 같아서 과연 이게 건강한 건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JMT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입을 모아 대단하다고 하고 너는 뭘 해도 될 거라고 했다. 그치만 내가 뭘 해도 안 되는 건 우울증이었다. 결국 난 2년 전에 정신과를 찾았고 지금도 약을 먹으며 우울증을 치료하고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무기력하거나 우울하신 분들, 나처럼 대단한 사람도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혼자 낫지 못하는 병이 우울증이다. 그러니까 나보다 더 의지가 강하고 더 치열한 사람이 아니라면, 제발 정신과에 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다 해서 본인이 약한 것이 아니다. 그냥 우울증이라는 건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병일뿐이다. 마치 칼에 찔렸는데 혼자 스스로 이겨내 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