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힘들면 어쩌자는 거야!

존 뮤어 트레일 종주기 - Day 1

by Noelles Adventure

2016년 6월 3일 Day 1



출발: Cottonwood Pass

도착: Chicken spring lake와 Rock creek 사이 어딘가 (PCT 735.25 mile 지점)

총 거리: 11.67 km

누적 거리: 11.67 km





미국 캘리포니아의 시골 중의 깡 시골이라 불리는 론 파인(Lone Pine)이 있다. 론 파인이 어느 정도로 깡 시골이냐면 미국 보험회사인 State Farm의 라디오 광고 중에서 론 파인이 나오는데 그 맥락이 소비자 왈 "내가 론 파인에서 덩그러니 있는 나무 하나를 차로 박았는데, 이래도 긴급출동을 부를 수 있나요?". 그랬더니 보험 상담사 왈 "물론이죠! 지금 보낼게요."라고 대답하며 "State Farm에서는 그 어떤 곳에 있어도 견인과 긴급 출동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광고한다. 그러니 론 파인은 미국 내 가장 외진 곳 중에 하나라는 걸 함의한다. 근데 론 파인에 나무가 한그루 있는 건 아니고 그것 보단 많더라.


하루 전날 도착해서 호스텔에서 묵으며 짐을 좀 정비하고 거하게 저녁을 먹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맛있는 걸 근 3주간 먹지 못할 테니까 배가 불러오는 데도 꾸역꾸역 다 먹었다. 하이킹을 하면 사람들이 건강해질 거라 생각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운동이 되니까 건강해지기는 하는데, 먹는 것이 매우 불량해진다. 일단 수분이 들어있는 모든 음식은 무겁기 때문에 냉동해서 바싹 말린 것들 (아마 MSG가 듬뿍 들어갔겠지?)을 가져가고, 스낵으로 초콜렛, 에너지바, 말린 과일, 크래커, 피넛버터 등을 먹는다. 그래서 난 산에 가면 싱싱한 야채가 그렇게 땡기더라. 또 땡기는 건 아이스크림과 콜라. 어쨌든 깡시골에 있는 레스토랑 치고는 맛이 있었다.


트레일 가기 전 마지막 만찬



너무 많이 먹은 결과 좀 걸어야겠다 싶어서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다. 한 3 블럭 정도 걸어가면 아무것도 없어진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호스텔, 레스토랑 몇 개, 기념품 샵, 구멍가게 정도? 구멍가게에서는 하이커들을 위한 물건을 판다. 반창고, 라이터, 가스 (버너에 끼워 쓰는 것), 일회용 샴푸 등을 판다.


걸어 다니다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광경을 마주했는데, 어디서 봤긴 인터넷에서 봤지! 존 뮤어 트레일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에서 휘트니 산 사진을 많이 보게 됐는데, 그게 내 눈 앞에 딱 있었다. 아 사진가들이 여기서 사진을 찍었구나. 나는 아이폰 줌으로 찍느라 화질이 매우 구리다. 내가 3일 뒤에 저 꼭대기에 가야 한다니 마음이 두근두근한다. 걱정 90% 기대 10%의 이유로 두근두근했다. 나는 조그만 일에도 무서워하고 최악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가서 조난당하면 어쩌나, 가서 동상 걸려서 죽으면 어쩌나 등등 매우 불안했다.




출발 전 날, 론 파인에서 바라본 휘트니 산 꼭대기 (폰으로 찍어서 화질 구림...)




드디어 Day 1. Trail head인 Cottonwood Pass trail head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PCT 하이커 몇 명이 론 파인으로 내려가려고 히치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며칠 뒤 또 만나게 된다. 그들은 론 파인에 내려가서 아마 식량을 충당하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가족에게 전화를 하고,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히치 하이킹을 통해 이곳으로 돌아왔을 거다. 나는 등산 초반이었기 때문에 한없이 느렸고 PCT 하이커들은 정말 부럽게도 빨랐다.



여기는 사실 존 뮤어 트레일 (JMT)의 시작점은 아니고, 시작점인 휘트니 산보다 약 50km 남쪽에 있다. 여기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CT)의 한 부분이긴 하다. 휘트니에서 JMT 퍼밋을 받는 건 상당히 힘들어서 그나마 수월하다는 여기에 가서 퍼밋을 받고 거기서부터 트레일을 시작했다. 난 오히려 여기서부터 걷기 시작한 게 도움이 많이 됐는데, 시작부터 휘트니 산 꼭대기인 4421미터를 올라가면 고산병에 시달릴 게 뻔했으나, Cottonwood Pass는 약 3000미터기 때문에 그나마 서서히 고도에 적응을 할 수 있다. 초반이니까 살살 가려고 이 50km를 3일에 나눠서 걷기로 계획했다.




출발합니다!


나는 남쪽에서 시작해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North Bound (NOBO) 방향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정표에서 PCT North를 따라가면 된다 (JMT는 PCT의 한 섹션이다). 위 사진은 트레일 헤드에서 출발하자마자 찍은 사진. 첫날이고 아직 고도 적응도 안됐고 trail leg (등산하다 보면 다리가 튼튼해져서 걷는 속도가 빨라진다)도 발달이 안됐으므로, 이 날은 8키로미터만 걸어서 Chicken Spring Lake까지 가는 게 계획이었다.



출발하자마자 한 20분도 지나지 않아서 눈밭을 보게 된다. 6월은 눈이 워낙 많이 쌓여있기 때문에 이 산맥 (Sierra Nevada)에서는 6월은 겨울로 분류된다. 게다가 고도도 높아서 밤이면 영하로 기온이 뚝뚝 떨어진다. 심지어 그나마 고도가 낮아서 따뜻한 북쪽 끝 지점인 요세미티 역시 눈 때문에 6월 1일까지도 개방이 되지 않았었다. 눈이 워낙 쌓여 있어서 차가 요세미티까지 들어가질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2016년에 엘니뇨가 오면서 평년에 비해 눈이 더 많이 쌓였고 겨울이 길었다. 그래서 등산로 거의 대부분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산비탈은 거의 100% 눈으로 커버돼 있었다. 눈 밭을 걷는 건 처음엔 재밌었는데 며칠 뒤 그런 생각은 쏙 사라지게 된다.



출발하자마자 눈밭




눈밭을 지나자마자 끝도 없는 오르막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숨차고 가방 무겁고 너무 힘들었다. 뙇! 여기서부터 힘들면 어쩌자는거야!!!!!하고 망했다망했다 하면서 딱 30걸음만 가고 10초 쉬고 또 30걸음 가고 10초 쉬자 이런 식으로 걸어갔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어 30걸음에 다다르면 이미 숨이 턱까지 차 있더라.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라 살려고 쉬는 거였다. 첫날 종착지로 계획했던 Chicken Spring Lake는 8키로미터 거리인데 약 500미터가량의 고도 차이가 난다. 고작 500미터 고도 차이인데도 왜 이리 힘들던지.


가방 무게를 재 볼까도 했지만 이삿짐에 체중계를 실어버려서 잴 수가 없었다. 내 예상으로는 물을 제외하고 한 14kg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중 곰통이 1kg, 카메라 무게가 거의 2kg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는 DSLR 니콘 D90에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광각렌즈뿐이어서 너무 무거웠다. 출발 직전까지 가져갈까 말까 진심 고민을 많이 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팬티에 달린 태그까지 떼어내고 초코바 봉지를 다 뜯어서 가져가는 마당에 (초코바를 감싸고 있는 봉지 무게를 줄이기 위해) 2kg이나 되는 카메라를 들고 가는 건 좀 오버 아닌가요? 그리고 물을 얼마나 가지고 다니느냐에 따라 무게가 더 늘어나는데 나는 2리터짜리 bladder와 1리터짜리 스마트워터 물병을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물을 꽉 채우면 3kg이 늘어나기에 아마 최대 무게는 17kg 정도 됐을 거 같다.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다 보면 키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고 어깨가 빠질 것 같이 아프다. 나름 겨울용 텐트와 침낭 등을 다 짊어지고 4-5박 이상의 산행한 적이 꽤 있었지만 (예를 들면 Torres del Paine와 Dientes de Navarino) 이번에는 곰통 무게에다 1주일치 식량 (+ 혹시 몰라 하루치 식량을 더 가져감) 무게까지 더하니까 정말 무겁더라. 가기 전에 나름 꾸준히 운동을 해 왔지만 박사 디펜스 준비하랴 이사 준비하랴 바빠서 당일 산행 같은 예행연습을 못했는데, 연습했다면 좀 나았을까?






사람이 힘들면 사진이고 뭐고 걷다 쉬다 걷다 쉬다하는 데 바쁘기 때문에 정말 절경을 보지 않는 이상은 사진을 잘 안 찍게 된다. 그래서 산행 중간에 찍었던 사진의 시간 스탬프를 보면, 한 장소에서 30장 찍고 거의 4-5시간 동안 아무 사진이 없다가 또 갑자기 막 찍고 이런 식이다. 신기한 것은 사진을 찍어둔 곳이라든가 일기장에 써 놓은 장소들 아직도 기억이 잘 나는데 그렇지 않은 곳은 사실 기억이 안 난다. 킁 역시 4년 전 트레일을 끝나자마자 기록해뒀어야 했다.



그리하여 급 이 날 계획했던 종착지인 Chicken Spring Lake에 도착했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 한 4시 정도 됐으려나? 원래는 6시까지 도착이 목표였는데. 분명히 힘들게 많이 쉬면서 올라왔는데 읭 왜 이렇게 빨리 왔지? 일단 좀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왠지 조금 더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PCT 하이커가 한 명 지나가면서 자기 사진 찍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카메라 받았더니 갑자기 윗통벗고 물에 뛰어들었다. 지이이인짜 추웠을 텐데...




Chicken Spring Lake에 예정보다 빨리 도착해서 당황.



사진에 보이는 것들 중에 잠깐 장비들을 좀 소개하자면, 맨 오른쪽 밑에 주황색 기계는 위성통신장치로 사고가 났을 때 SOS를 칠 수 있고, 그 기계 밑에 달린 은색 동그란 것은 곰 방울이다. 걸으면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서 곰에게 "사람이 지나간다"고 알려 서로 맞닥뜨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엄청 시끄럽다. 배낭 밑에 깔려있는 뾰족한 녹색은 아이스 액스다. 왼쪽 바위에 있는 건 bladder, 물 필터, 하이킹 폴.




Chicken Spring Lake는 생각보단 덜 예뻤다.




결국 좀 더 걷기로 했고 앞으로 물줄기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물을 가득가득 채워서 출발했다. 그렇게 2시간가량을 더 걸었을까? 이제 지치기도 하고 딱 산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길을 지나게 됐는데, 여기라면 밤 새 바람을 잘 막아줄 것 같아 텐트를 치기로 했다.




첫날 텐트 친 곳




저녁 먹고 나서 이 닦기 전에 찍어봤다.


오늘 하루 비가 오지 않았음을 감사하며 밥을 먹었다 (나중에 더 적겠지만 캠핑할 때 비가 오는 걸 난 진절머리 나게 싫어한다. 왜 옛날에 사람들이 태양을 신으로 받들고 숭배했는지 너무너무 이해가 감). 저녁에는 추우니깐 주로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 전투식량 같은 freeze-dried food를 싸 갔고, 라면 부신 것 (부피를 줄이기 위해), 매시드 포테이토 (가루인데 뜨거운 물 부으면 진짜 맛있는 매시드 포테이토가 된다), 맥 앤 치즈 (맛을 종류별로 가져갔는데 마카로니가 생각보다 잘 안 익어서 속상) 등을 가져갔다.


사진에 있는 물통 같은 것은 버너와 코펠이 합쳐진 것으로 매우 가볍고 부피도 작아서 하이커들이 많이 사용한다. 앞에 화살표 된 흰색 작은 통은 가루 치약이다. 액체로 된 치약은 무거우니까 가루로 된 것을 소분해서 담아 갔다. 참나 별의별 거 무게를 다 줄이다 보니 이런 무게도 줄인다. 그 옆에 주황색은 여행용 칫솔이고 초록색은 종이비누다. 분명히 초등학교 1-2학년 때 동네 문방구에서 장미향기 나는 종이비누를 1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았던 것 같은데, 미국에서 종이비누를 사려니 REI에서 밖에 안 팔고 가격도 비쌌다.








첫날밤은... 거의 못 잤다 하하하 (지나니까 웃을 수 있지 당시엔 매우매우 무서웠음). 와일드에서 주인공인 쉐리가 첫날밤에 무서워서 잠을 못 자는데 나도 그랬다. 진짜 피곤해 죽겠는데 아직 슬리핑 패드에 적응이 안돼서 그런지 계속 뒤척였다.


게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서 이걸 갈까 말까 참을까 말까 고민됐다. 등산할 때 물을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마셔야 머리가 안 아프다는 걸 Dientes de Navarino 등산을 하면서 알게 돼서 나는 물을 정말 많이 마셨는데, 텐트 치기 시작하면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을 안 마시려고 한다. 왜냐면 밤에 화장실을 가야 하니까. 내 생에 가장 짜증 나는 일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캠핑 중에 밤에 화장실 가야 하는 거다. 밤에 화장실 가는 게 왜 뭐가 어때서? 일단 따뜻한 침낭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곤욕이다. 진짜 밤에 오지게 춥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더더더욱 침낭 밖으로 나오는 게 싫었다. 깜깜한 와중에 더듬더듬 헤드라이트 찾아가지고 머리에 쓰고, 주섬주섬 텐트에 걸어 놓은 내 소변용 손수건 (소변은 휴지 대신 손수건으로 해결)을 찾아, 차갑고 젖어 있는 부츠에 내 소중한 양말이 젖으면 안 되니까 양말을 고이 벗어 놓고, 부츠를 구겨 신고 텐트 밖으로 나가야 하는 어마어마하게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하지만 화장실 가고 싶어서 깼을 때는 그때 그냥 휙 갔다 와서 편하게 자는 게 가장 현명하다. 내가 Torres del Paine에서 첫날밤에 화장실 가고 싶어 죽겠는데 너무 나가기 싫어서 계속 선잠을 자며 참았다. 체감상 한 6시간을 선잠 자며 참은 것 같았는데 손목시계를 보니 세상에 고작 새벽 1시였다. 심지어 그때는 비도 내리고 있었다. 결국 주섬주섬 소변을 보러 밖에 나갔다 왔다. 진작에 나갔으면 차라리 편히 잘 잤을 텐데 괜히 참는다고 잠을 설친 게 스스로 짜증이 나더라. 그래서 이제는 화장실 신호가 오면 아무리 나가기 싫어도 일단 싸고 온다. 근데 웃긴 건 낮에 물을 워낙 많이 마셔서 그런지 밤에 평균 3번은 소변보려고 텐트를 들락거린다. 심지어 인터넷에 다른 사람들은 캠핑 중에 밤에 소변 마려우면 어떻게 하는지 검색도 해 보았다. 몇 명은 일종의 요강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냥 그 안에다 싼단다. 그치만 요강으로 쓸 병의 무게를 견디느니 그냥 밤에 소변보러 나갔다 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PCT 하이커들 중에서는 슬리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텐트에서 본 풍경



암튼 화장실을 갔다 와서 와 이제 맘 편하게 자야지!하는데 뭐가 자꾸 텐트를 툭. 툭. 치는 거다. 근데 진짜 그 툭 툭 치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설마... 곰이...?????? 진짜 너무 무서운데 그렇다고 불키고 일어나자니 곰을 도발할 거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런 상태로 거의 날을 샜다. 이것 역시 와일드에서 쉐리가 겪었던 일인데 나도 똑같이 겪으니 웃기긴 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marmot (옷 브랜드 이름이기도 하지만 설치류인 동물 이름)이었다. 이것들이 내 텐트를 자꾸 툭 툭 치면서 막 가장자리 물어뜯어 놨다. 내 텐트 울트라 라이트로 장만한 텐튼데 ㅠㅠㅠ 앞으로도 marmot들은 내 텐트와 버너 등을 계속 공격하게 된다. 툭 툭 치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컸던 이유는 텐트가 방음이 전혀 안되기 때문이다. 텐트 안에 들어가면 바깥에 나는 소리가 오히려 증폭돼서 들리는 기분?



처음엔 귀엽다고 사진까지 찍었던 Marmot



그렇게 Day 1이 지났다.








내 시작과 끝 지점



동그라미 친 부분이 내가 시작한 부분과 끝 지점이다. 빨간 핀이 꽂힌 곳은 실제 JMT가 시작되는 지점인 Crabtree Meadow로 나는 여기까지 약 3일 동안 걸어가기로 계획했다. 북쪽 끝부분은 요세미티 (파란색 체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