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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Dec 16. 2020

프라이버시? 그게 뭔가요? 먹는건가요?

미국의 이상한 프라이버시 개념

미국 공중 화장실은 이상하다.




미국 공항에 내리면 가장 놀라는 것은 (1) 입국 심사관이 매우 불친절하고 나를 잠재적 불법체류자 취급한다는 것과 (2) 공항 화장실이 너무 개방적이라는 거다. 보통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에 있는 화장실에 가게 마련인데, 미국 공항에서 화장실을 가면 처음에 깜짝 놀라게 된다. 왜냐면 문 틈 사이로 안이 다 보이고, 문 바닥도 훤~하게 뚫려 있어서 사람들의 다리가 다 보인다.




이 정도 간격이면 다 보이죠...

출처 Twitter


가정집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문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져 있고 문을 닫으면 당연히 안이 안 보인다. 이렇게 문 틈 사이가 넓고 문 밑이 뻥 뚫려 있는 건 공중 화장실만 그런다. 공항만 그런 게 아니라 몰, 헬스장, 레스토랑, 등등 화장실에 칸이 있으면 거의 100% 저렇게 틈이 넓고 바닥이 떠 있다. 진짜 누가 마음먹고 안을 보려고 하면 충분히 다 볼 수 있다. 자세를 조금만 굽히면 사람들 다리 (심하면 무릎까지) 다 보인다. 문 틈으로도 충분히 안을 볼 수 있다.



밑에 사진의 출처인 인사이더에서도 "외국인이 미국에 관광 와서 가장 놀라는 것들" 중에 이렇게 다~ 보여서 프라이버시가 보장이 안 되는 화장실이 나온다. 구글에 why american bathroom stall gap이라고 치면 미국판 지식인 같은 곳에 똑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출처 인사이더







예외는 간혹 작은 스타벅스나 파이브 가이즈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런 곳에서는 가끔 화장실에 칸이 따로 있지 않고, 문 열면 바로 화장실 자체인 경우다. 또 한 가지 예외는 아주아주 최고오오오오급 호텔, 스파, 레스토랑, 라운지 등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고급진 곳에서 예외가 덜 고급진 곳 보다 많다. 정말 좋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가면 화장실 칸이 여러 개더라도, 칸칸마다 한국처럼 문 틈이 별로 없고 문이 밑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왼: 스타벅스의 한 칸짜리 화장실, 오른: 고오오오급 화장실








지금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엔 너무 적응이 안됐다. 뭐야 미국인들은 프라이버시를 그렇게 중시한다면서 왜 공중 화장실에서는 이렇게 프라이버시 보장이 안 되는 거지? 여기저기 검색을 해 봤는데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다. 비용 절감에 좋고, 공중 화장실에서 마약 하는 것을 쉽게 적발하기 위함이고, 화장실 칸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가 밖에서 보이니까 노크를 안 해도 되고. 여러 이유를 찾았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왜 이런 문화가 있는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마약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비슷한 이유로 혈관을 못 찾게 하기 위해서 화장실 불빛을 파란 조명으로 해 놓는다고), 아마 미국 노숙자들이 마약을 할 때 화장실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이 있다면 집에서 마약을 했겠지만 굳이 걸리기 쉽게 공중 화장실에 와서 하는 이유는 집이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 얘기는 공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공립 도서관, 몰이나 백화점 같이 그 누구나 들어와서 쓸 수 있는 화장실에 딱 들어맞는다. 아니면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 근처 스타벅스, 맥도날드의 화장실 같은 경우도.


문제는 애초에 손님이어야만 쓸 수 있는 화장실도 개방적이라는 거다. 정말 마약 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의 장소, 그리고 근방에 노숙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부촌 중의 부촌 (일종의 버블)에 있는 레스토랑, 호텔, 헬스장, 스파 등에도 화장실이 개방적이다. 여긴 도대체 왜 이렇게 개방적인 건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최근에 본 브런치 글에서 혹시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사적인 공간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보장되지만, 공공 혹은 공중에 있는 장소에서는 프라이버시가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브런치 글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 논리 중에 오픈 필드 독트린 (Open Field Doctrine)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이는 영장이 없어도 오픈 필드 (완전 사적인 공간이 아닌 곳, 예를 들면 집 밖 마당이나 길거리, 레스토랑, 몰 등)에서의 수색과 압수, 증거물 수집이 가능하다는 주의다. 미국 대법원에 따르면 오픈 필드 독트린이 미국 수정 헌법 제 4조인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프라이버시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미국 문화에서, 어쩜 한국에서는 없는 오픈 필드 독트린 주의가 통한다는 게. 프라이버시가 그렇게 중요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저런 독트린이 통한다고?


오픈 필드 독트린이 왜 미국에서 통하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오픈 필드 독트린이 미국의 대중적인 문화라 치자. 실제로도 그렇다니. 자연스럽게 공중 화장실도 오픈 필드에 속할 것이고, 그러면 그 안에서의 사생활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일관성이 있긴 하다.






참고로 오마이뉴스에서 나온 기사도 매우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오픈 필드 독트린에 관해 한 해석을 내놓는다. 공중 화장실 안에서는 칸 안에 있든 칸 밖에 있든 둘 다 공격에 취약한 상태라는 거다. 화장실 칸 안에 있으면 밖이 안 보이고 밖에 있으면 안이 안보이니까, 누가 나를 총을 쏘려고 하는지 이상한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니까. 그러니 개인의 총기를 스스로의 목숨을 지켜야 했던 서부시대에는 공중 화장실이 큰 문제였을 거다. 이를 완화(?)시키고 화장실을 일종의 무장해제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서, 서로가 뭘 하는지 얼핏 보고 안심할 수 있도록 화장실을 개방적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고. 얘기를 듣고 좀 수긍이 가긴 했다.




여전히 미국을 이해하려면 난 갈 길이 멀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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