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표현이 안 되는 한국말
영어에 없는 것 중 하나는 의태어다. 영어에 의성어 (onomatopoeia)는 있는데 의태어가 없어서 환장... 몽글몽글, 바글바글, 하늘하늘, 둥실둥실, 팔딱팔딱, 여리여리, 덩실덩실, 비틀비틀, 살금살금, 살랑살랑, 찰랑찰랑, 흔들흔들, 짜릿짜릿, 엉금엉금 등등을 표현할 길이 없다. 이게 생각보다 영어로는 매우 전달하기 힘든 표현이다. 일단 의태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는 동작 혹은 느낌을 감탄사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를 못한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 박사까지 할 정도로 똑똑한 미국애들도 이해를 못했다). 딱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면 반짝반짝은 twinkling 정도?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탄소년단 지민이 나온 노래에 소복소복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걸 영어로 번역한 걸 봤는데, 소복소복이 도무지 번역이 안되니까 그냥 소복소복을 소리나는대로 쓰고 그 옆에 (falling falling)이라고 해놨다. 이걸 보니 뭔가 괜히 반갑다. 의태어가 있는 한국어. 그게 없는 영어. 그래서 느끼는 한국인의 답답함. 이 노래가 나오고 나서 소복소복이 번역이 안된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재미난 언어차이!
참고로 난 한국어를 못하는 남편에게 살금살금을 표현할 때 핑크 팬더 음악을 사용해서 조심히 살금살금 걷는 것을 흉내 낸다. 내가 입으로 빠밤빠밤 빠밤 빠밤빠밤빠밤빠밤빠바아아아암 이러면서 저 사진처럼 걷는다.
아참, 나는 핑크 팬더가 핑크 panda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남편한테 "내가 지금 핑크 panda 흉내 내는 거야" 했더니, 그게 뭐냐는 거다. 헐 이거 미국 거 아니었나? 알고 보니 팬더가 panda가 아니라 panther (표범)이었다ㅋㅋㅋ 사실 생각해보면 핑크 팬더 생김새가 전혀 팬더같지 않고 표범에 가깝긴 한데, 계속 팬더라고 불러와서 그런지 그냥 panda인 줄 알았다. 나만 몰랐나?
물론 우리나라의 의태어를 영어로 표현할 수는 있다. Sneak을 쓰면 되는 경우가 있다. Sneak은 뭔가 몰래 조심스럽게 잠입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다. 예를 들면 산타 할아버지가 몰래 와서 선물을 놓고 가는 걸 보고 Sneaky Santa라고 한다. 그치만 살금살금이 가지는 그 특유의 느낌이 전달이 안된다. 살랑살랑같은 다른 의태어도 마찬가지. 영어로 swing softly 아니면 blow softly로 표현이 가능은 한데, 그 특유의 살랑살랑하는 느낌이 전달이 안된다. 에이핑크의 미스터 츄 노래를 들으면 흔들흔들과 짜릿짜릿이 나오는데, 이런 의태어가 갖는 그 특유의 이미지를 과연 어떻게 영어로 바꿀 수 있을지.
암튼 결론을 내리자면 살금살금와 1:1로 대응될 수 있는 영어는 없다. 대충 의미 전달만 될 뿐.
한국어에는 있고 영어엔 없는 표현 중에 가장 답답한 것은 사실 답답함이다. 약 13년 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1년간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 영어를 너무 못해서 완전 쭈구리처럼 지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영어로 표현을 하지 못해서 하루에 열 번씩은 답답했던 것 같다. 그나마 수업에서 알게 된 한국인 2세와만 말을 좀 편하게 하게 됐다. 왜냐면 한국말을 대충 알아서 내가 무슨 표현을 해도 얼추 알아들어주니 너무 고맙지. 그래서 내가 말할 때 부담도 없고 위축도 덜 되고.
그 친구에게 답답하다는 건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냐 물어봤더니, frustrated인 것 같다고 했다. 헐. 고작 frustrated, 짜증이라는 단어로 답답하다는 말을 표현하다니. 이 단어는 답답하다는 한국말에 가장 가까운 표현일 수 있지만, 뭔가 그 꽉 막힌듯한 느낌, 가슴을 퍽퍽 치며 답답하고 말하는 그 느낌이 살지 않는다. 아이고 답답하다는 말이 없어서 답답해! 참고로 공기가 탁하다거나 숨쉬기가 힘들어서 답답한 경우는 공기가 stuffy 하다고 한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같은 로만 언어계열에 속하는 이탈리아어에도 영어로 번역이 어려운 표현들이 있다. 이건 시모네 (박사 할 때 친구인 이탈리아인)가 이런 표현을 영어로 번역해보려고 애를 많이 써서 나도 옆에서 하도 듣다 보니 알게 됐다. 첫 번째 단어는 "돛단배가 바다에서 이는 바람에 의해 천천히 항해를 시작하고 그 바람을 타게 되는 모양"을 뜻하는 단어이다. 아브리시오?였나 암튼 이탈리아어는 까먹었는데, 시모네가 미국애들한테 이걸 설명하면서 이런 표현 있냐고 자주 물어봤다. 이 단어는 당연히 옛날 돛단배로 항해하던 시절에 나왔겠지만, 요즘의 용법은 약간 다르다. 요즘에는 정체되어 있고 어색한 모임에서 대화의 물꼬를 터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장이 열리도록 하는 걸 지칭한다고 한다.
또 이탈리아어에는 있지만 영어에는 없는 단어 중에 무슨 수레바퀴의 지지대 중에서 모양은 어쩌구이고 재질은 또 저쩌구인 그런 지지대만 일컫는 단어가 있단다. 이 역시 옛날 단어라 의미 그대로 쓰이지는 않고, 현대에 와서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에서 이 사람이 빠지면 안 되는 경우, 그 사람을 이 단어로 표현한다고.
시모네가 "도대체 영어엔 왜 이런 표현이 없냐!"면서 하도 토로를 해서 우리가 시모네를 자주 놀렸다. 시모네는 약간 원숭이상이고 자기도 그걸 알아서 가끔 원숭이 흉내를 낸다. 그러면 맷이 "원숭이가 나무 아래서 머리를 긁다가 바나나가 먹고 싶어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바나나를 따 먹는"걸 표현하는 단어는 이탈리아에 없냐고.
고소하다는 표현 역시 영어에 딱 들어맞는 단어가 없다. 굳이 찾자면 nutty 하다는 표현인데, 이는 견과류 (nut)에서 나는 특유의 고소함을 뜻한다. 근데 우리가 고소하다는 표현을 쓰는 대상은 대체로 참기름, 들기름 등 씨앗 (seed)으로 만든 향긋한 기름 냄새다. 흠 뭔가 견과류 맛이나 냄새랑은 좀 다른데... 미국에서 양념장을 만들 때마다, 비빔밥 맨 마지막에 참기름을 얹을 때마다 "우와 너무 고소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다. 그냥 smells good 정도...? 크흡 그걸로 안된다고요! 그거보다 "아우 고소해!"이런 느낌이 살아야 하는데.
우리 고양이 노엘이가 밥 달라고 우는 소리가 그렇게 서러울 수 없다. 밥때가 되기 한 시간 전부터 엄청 불쌍한 척을 하면서 세상 서럽고 애간장을 녹이는 울음소리를 낸다. 근데 서럽다는 말도 딱히 어떻게 영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sad가 가장 비슷한 것 같은데, 영어 능력자분들 계시면 어떤 표현이 가장 맞을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애간장을 녹이는 소리 같은 표현도 어떻게 영어로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아이구 저 절절한 울음소리ㅠㅠ 이걸 영어로 뭐라고 표현해야 전달이 될까? 혹시 영어로 표현이 있을까 싶어서 검색을 해봤는데ㅋㅋㅋㅋㅋ 싸운드 오브 멜팅 레드 쏘이 쏘스. 빨간 간장 (빨간 간장이 뭐지?)이 녹는 소리란다ㅋㅋㅋㅋㅋ 너무 웃김.
이 외에도 한국엔 있고 미국엔 없는 게 참 많다. 더 자세한 건 여기.
https://brunch.co.kr/@ilovemypinktutu/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