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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Dec 22. 2020

한국엔 있고 미국엔 없는 것

체하다, 태몽, 가위눌림, 선풍기 사망설

체하다



지금껏 내가 만났던 미국인들은 체한다는 것이 뭔지를 모른다. 기껏해야 소화불량 (indigestion) 정도라고 생각한다. 근데 체한 건 소화불량과는 다르지 않나. 체하면 명치가 아프고 트림이 윗배를 꽉 막고 있는 느낌에 심하면 등까지 아프다. 난 체하면 손과 발이 엄청 차가워지고 심하면 저리기까지 한다. 한번 체하고 나면 당분간은 조금만 과식해도 또 체하고. 미국인들 중에 이 일련의 "체함"이라는 현상을 알고 있거나 이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뙇? 미국애들은 안 체하나?


시댁에서는 늘 기름진 고기나 치즈, 감자 등 먹고 나면 속이 매우 더부룩한 음식들을 많이 먹는다. 그리고 매 식사마다 디저트는 필수! 그래서 시댁에 오면 종종 체하곤 한다. 내가 체했다는 걸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봤지만 그냥 소화가 좀 안되는가 보군 싶어 하고 그만이다. 남편도 여전히 체했다는 게 얼마나 짜증 나고 아픈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맷을 보러 싱가폴에 갔다가 하루 체한 적이 있는데, 맷도 그걸 이해를 못하더라.


체했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모르니까, 체기를 내리기 위한 손 지압이나 물구나무서기, 등 쓸어내리기 등을 매우 이상하게 본다. 도대체 소화불량이라는데 왜 손바닥을 계속 마사지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체하면 물구나무를 서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효과가 있다. 뭔가 위와 장을 흔들어줘서 그런가?ㅋㅋ 암튼 내가 체했다고 한밤중에 자다 깨서 어둠 속에 혼자 물구나무 서고 있으면 남편이 0_0 이런 표정으로 뭐하냐고 묻는다. 도대체 배가 아픈데 왜 물구나무를 서...?


아직도 좀 궁금하다. 미국인들은 정말 체하지 않는 걸까? 체하는 인구가 워낙 적어서 웬만한 사람은 평생 체해 본 적이 없는 걸까? 소화력이 얼마나 좋길래 스테이크+치즈+버터 잔뜩 넣은 매시드 포테이토+치즈케익+아이스크림을 먹고도 체한 적이 없는 걸까?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체하거나 소화가 안되면 매실액을 마시지만, 미국에서는 콤부차를 마신다. 자세한 것은 여기서. 그리고 미국에서는 배가 아프다고 하면 보통 위산이 많이 나와서 위가 쓰린 걸 뜻한다. 체했다는 표현을 하려면 난 I feel like the food is sitting in my stomach라고 표현한다.






태몽



이건 최근에 알게 된 거다. 나와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두 명이 있는데, 한 친구 (M)가 다른 친구 (L)의 태몽을 두 번이나 꿨다. 정말 신기한 게 M이 태몽을 꾸고 나서 그 많고 많은 친구들 중에 왠지 L이 임신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카톡으로 혹시 너 임신했니 물었더니 L이 깜짝 놀라면서 아직 부모님한테도 말하지 않은 초기라고 했단다. L이 둘째를 임신했을 때에도 M이 또 태몽을 꿨다고 한다. 헐! 난 지금까지 태몽을 꿔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 얘기가 너무 신기했다. 일단 그 많고 많은 꿈 중에서 이 꿈이 도대체 태몽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그리고 그 태몽의 주인공이 누군지는 또 어떻게 아는 거지?


신기한 마음에 남편에게 미국인들도 태몽을 꾸냐고 물었더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건 있을 수가 없다며. 그래서 다른 미국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그런 게 어떻게 있을 수 있냐는 반응이었다. 근데 웃긴 건 성서에 나오는 동방박사도 일종의 태몽 아닌감? 


신기하다. 태몽을 꾸고 안 꾸고도 문화 차이일까? 아니면 미국인도 태몽을 꾸지만 그게 태몽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참고로 구글에 찾아보니까 다양한 미주 한국 커뮤니티에서 "미국인도 태몽을 꾸냐"는 글이 제법 올라왔더라. 다들 궁금했나 보다. 댓글은 대부분이 "다들 태몽이라는 걸 모르더라"였다. 위키피디아에서는 태몽을 conception dream이라고 하는데, 인도와 한국에만 있는 개념이라고 한다. 헐.


참고로 conception dream을 구글에 치면 자동완성으로 korea가 바로 뜬다.






가위눌림




우리나라에선 가위에 눌려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가위눌림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그런 단어가 뭔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미국애들은 가위눌린다는 게 뭔지 전혀 모른다. 뙇?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매일 밤 가위에 눌렸다. 아마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버스에서 잠깐 졸 때도,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잘 때도 늘 가위에 눌렸다. 하도 가위에 눌리다 보니 엄마가 장난으로 집에 있는 가위를 다 치워버린 적도 있다. 유체이탈 같은 것도 경험해봤다. 갑자기 방 안이 환해져서 벽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가위에서 깨어나고 불을 켜 보니 진짜 새벽 4시였다. 후덜덜. 나중엔 가위에서 깨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진이 빠져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 너는 눌러라 나는 잔다 하고 그냥 자기도 했다. 신기한 건 대학교에 가고 나서는 가위를 눌리는 횟수가 확 줄었다. 그러다가 박사 1학년 때는 또 가위에 엄청 눌렸다. 역시 스트레스였나 보다.


미국 주변 친구들에게 내가 가위를 정말 잘 눌린다고 얘기했는데, 다들 이해를 못한다. 꿈꾸는 거 아니냐고, 왜 못 움직이냐고. 베개에 코 박고 있어서 숨 잘 못 쉬어지는 거 아니냐고. 남편도, 미국인 구남친도, 맷도, 심지어 유럽 애들과 남미 애들도 가위눌림이 뭔지 모른다. 내가 열심히 설명을 했다. 분명히 자고 있다가 정신은 깨는데 몸이 안 움직여진다고. 그러면 애들이 늘 하는 말은 "꿈에서 깨려고 몸을 움직이면 되잖아"라고 한다. 아니 몸이 안 움직여진다니까! 암튼 그들은 가위가 얼마나 공포스럽고 얼마나 사람 진을 빠지게 하는지 모른다.


검색을 해보니 영어 표현이 있기는 있다. Night hag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건 가위눌림이라기 보다는 자다가 환영이나 귀신을 보는 걸 뜻한다. 다만 가위눌림과 종종 같이 일어난다고. 남편에게 night hag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것도 태몽같이 한국에만 있는 거야?라고 물었다ㅋㅋ 그나마 미국인들에게 이해시키기 쉬운 표현은 sleep paralysis다. 말 그대로 자는 도중에 몸이 마비가 됐다는 뜻이다. 그치만 정신은 말짱한.


책 중에서 Why we sleep이라는 책이 있는데, 남편이 이걸 읽더니 가위눌린다는 게 대충 어떤 것인지 알겠다고 한다. 여전히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책에서는 잠에 관한 의학적인 연구 결과들을 많이 알려주는데, 잠을 잘 때 몸이 마비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꿈에서 하는 행동을 실제에서도 하게 되기 때문에 몸이 마비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그게 잘 안 되는 게 몽유병이라고. 굳이 비교하자면 몽유병보다는 가위눌림이 좀 나은 것 같다. 몽유병을 엄청 심하게 앓았던 코메디언인 Mike Birbiglia가 있는데, 이 사람 스탠드업을 보면 진짜 너무 심각한데 너무 웃기다. 미국 넷플릭스에 이 사람 스탠드업이랑 영화가 있는데 한 번 보길 바란다.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



약 10년 전 박사 1학년 때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고 했더니 진심 내 동기들이 전부 빵 터지면서 진심이냐고 농담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내가 증명해 보이겠노라 열심히 구글을 뒤지고 네이버를 뒤졌지만 선풍기 때문에 누가 죽었다는 연구는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치만 나는 계속 이게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정말 사실인 줄 알았으니까 친구들은 한국엔 참 이상한 미신이 많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이건 미신으로 드러났다. 언론에서 사망 원인을 잘못 보도한 뒤에 그게 마치 사실인 양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거다. 저 링크를 보면 선풍기 사망설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나오는데, 이 질문들은 전부다 어떻게든 내가 이 미신을 믿어보기 위해서 이런 건 아닐까 저런 건 아닐까 했던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문 닫고 선풍기 틀어 놓는다고 해도 공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럼 잠 안 자고 있어도 죽게?) 저체온증에 걸릴 만큼 추워지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왜 그렇게 진실처럼 믿고 있었을까.


검색해보니 선풍기 사망설을 영어로는 Fan death라고 한단다. 아틀란틱에서는 사람의 믿음이라는 게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를 선풍기 사망설을 이용해서 설명한다. 분명히 오보였고, 오보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한번 뇌리에 박힌 믿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나는 박사까지 간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아주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 이런 걸 보면 오보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20년이 넘게 잘못된 사실이 아직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걸 보면. 이건 기자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다. 그러니까 기자님들 기레기 소리 듣고 싶지 않으면 뇌피셜이나 오보는 제발 자제해달라.






의태어



영어에는 의태어가 없다! 아이고 답답해. 근데 답답하다는 말도 없다! 자세한 건 여기서.

https://brunch.co.kr/@ilovemypinktutu/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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