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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Dec 13. 2020

미국 힙스터가 쓰는 간장

미국 주방에는 OOO가 있다 (3)

1편

2편


신기한 미국 주방기구들 - 3편






힙스터가 쓰는 간장?



나중에 쓰겠지만 나는 편두통을 예방하기 위해 식단 조절을 하고 있다. 이 식단 조절은 HYH (Heal Your Headache) 다이어트라 불리는데, 편두통을 불러일으킨다고 대체로 알려진 음식과 성분을 먹지 않는 다이어트다. 나는 지금 3개월 반 째 하고 있다. 이게 한국인에게 참 힘든 다이어트인데, 발효식품을 못 먹게 하기 때문이다. 발효식품에는 티라민 (tyramine)이라는 성분이 쌓이게 마련인데 이 성분이 편두통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연구 결과가 있는 건 아니고, 환자들의 경험과 진술을 통해 알게 된 거라 한다. 티라민은 열을 가해도 없어지지 않아서, 뭐든지 생생할 때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김치도 겉절이만 되고, 온갖 장류 (고추장, 된장, 간장, 쌈장, 청국장) 등등을 하나도 못 먹게 된다. 뙇...



코코넛 아미노



불행 중 다행히 간장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코코넛 아미노즈 (coconut aminos)다. 이건 코코넛 나무의 진액으로 만든 건데, 저어엉말 신기하게 간장 맛이 난다! 와우 코코넛 나무에서 간장 맛 나는 진액이 나온다니? 실제 간장보다는 소금기가 덜하고 단 맛이 좀 많이 난다. 그래서 이걸 쓰면 설탕을 확 줄여야 하고 소금을 조금 넣어야 한다. 이걸로 백종원 선생님의 불고기 해 먹었는데 진심 너무 맛있었다. 흐규흐규


나는 몰랐는데 힙스터들이 간장 대신 이걸 많이 쓴다고 한다. 왜냐면 미국에서 시중에 파는 간장은 많이 짜고 MSG가 다 들어 있기에 힙스터들이 좀 더 건강한 대용품으로 쓰더라. 그리고 되게 비싸다. 사진에 있는 코코넛 아미노즈는 크로거 (Kroger)라는 큰 미국 슈퍼마켓 브랜드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프라이빗 라벨 (private label) 제품이다. 프라이빗 라벨이라서 그나마 싸다. 그래도 비쌈. 저 조그만 게 한 5불? 근데 이거 말고 링크에 걸려 있는 (아마존이나 아이허브에서 판다) 것은 제일 유명한 브랜드인데 더 비싸다. 크로거에서 파는 걸 발견하기 전까지 아이허브에서 주문해서 먹었는데 양도 더 작으면서 $7-8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 브랜드는 힙스터스러운 슈퍼마켓에 가면 거의 100% 다 있더라.


사실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숙성이 된 거지만 간장보다는 덜 발효가 된 거고, MSG를 포함한 다른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서 HYH 다이어트를 할 때 먹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배가 아프면 매실 대신 이것!



한국에서는 소화가 안되거나 체했을 때 매실액을 마신다.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체했을 때마다 매실액이 나를 살렸다. 박사 오면서 무조건 가져왔던 것이 매실 원액이었다. 그렇게 약 5-6년간 한국에서 매실 원액을 조달해 먹었다. 미국에서 체하면 어쩌려구ㅠㅠ


사족인데 미국에서는 체한다는 표현이 없다. 보통 배가 아프다고 하면 위산이 많이 나와서 속이 쓰린 것을 뜻한다. 미국애들은 안 체하나? 너무 신기하다. 체한다는 말을 하려고 소화가 잘 안된다, 음식이 그냥 위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표현을 하는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그 명치가 꽈악 막힌 느낌, 심하면 등까지 아픈 그 체한 걸 표현할 길이 없다니ㅠㅠ 나중에 이런 표현에 대해서 또 자세히 써 보겠다.





각설하고, 미국인 남편은 소화가 잘 안되거나 속이 쓰리면 콤부차 (kombucha)를 마신다. 매실 신봉자인 나는 "아니 무슨 저런 듣도 보도 못한 걸 뭘 믿고 마셔?"라고 생각했다. 뭐랄까 콤부차의 효능은 사실 없는데 남편이 플라시보 효과를 보는 게 아닐까? 다 남편이 콤부차를 믿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 재작년부터 내가 이 콤부차의 신봉자가 됐다. 이상하게 배가 계속 싸~하게 아팠는데 매실액을 먹어도 딱히 나아지지가 않았다. 남편이 몇 번이나 콤부차를 권했지만, 콤부차의 효과를 플라시보 취급했던 나는 시도해 볼 생각도 안 했다. 그치만 배 아픈 것이 한 달이 지속되니 밑져야 본 전이라는 생각으로 콤부차를 한 잔 마셨는데!!!!!


세상에 한 10분 만에 배가 안 아픈 거다!? 이때부터 나는 believer가 됐다. 아 플라시보가 아니었구나 (적어도 나와 남편한테는). 그 뒤로 속이 쓰리든 체할 기가 보이든 뭔가 속이 불편하면 무조건 콤부차를 마신다. 시댁에서는 엄청 기름지고 치즈와 고기를 때려 넣는 음식을 많이 해서, 시댁 갈 때마다 체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데, 이제는 콤부차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콤부차도 힙스터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예전엔 힙스터 슈퍼마켓에서만 팔았지만 요즘은 좀 더 대중적이게 돼서 웬만한 슈퍼마켓에서는 다 판다. 콤부차 브랜드와 맛도 아주 다양하다. 생강, 레몬, 파인애플 등등 있는데 나는 생강+파인애플을 가장 좋아한다. 그치만 편두통 예방 다이어트를 하면서 콤부차도 바이바이. 콤부차는 집에서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 발효기 (1 편에 나옴)를 이용해서 콤부차를 만들어 마신다.






그릇 위에 그릇 위에 그릇






지금까지 돈 쓴 것 중에 정말 가치 있었던 것 중에 하나다. 사진에 보이는 흰색 선반은 그릇 정리 선반 (pantry organizer)이다. 아마 한국에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우와 이거 정말 혁명이다. 보통 집에 빌트인 돼 있는 선반은 높이가 꽤 되니까, 그릇을 쌓아 놓게 된다. 그러니까 선반 한 층에 큰 접시를 밑에 두고 그 위에 작은 접시를 또 얹어 놓게 된다. 큰 접시만 꺼낼 때 이게 꽤 불편하다. 맨 위에 있는 작은 접시를 일단 내려놔야, 그 밑에 큰 접시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불편해서 인터넷을 폭풍 검색한 결과, 우리 집 빌트인 선반에 딱 맞는 저런 선반을 찾았다! 정말 너무 편하다ㅠㅠ 저런 선반은 사진처럼 매달려 있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사려고 검색해보니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건 선반 고작 하나 사는데 $20이 넘고. 그리고 크기도 다 다르기 때문에 집에 있는 선반 크기를 정확히 재야 한다. 난 뒤지고 뒤져서 월마트에서 4개 세트로 파는 걸 샀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쿠킹 클래스에서 마늘을 까라면서 이렇게 생긴 실리콘 틀을 줬다. 읭? 이런 것도 있다니. 암튼 이름은 실리콘 마늘 필러 (silicone garlic peeler)다. 생전 처음 보는 거였는데 마늘이 정말 잘 까진다. 쿠킹 클래스가 끝날 때 즈음, 셰프와 보조들이 설거지를 하고 테이블을 세팅하는 동안 참가자들에게 쇼핑할 시간을 준다. 게다가 오늘 사면 15%인가 할인이래. 와우 이렇게 또 소비를 조장하나요? 암요 제가 거기 걸려들었죠. 저 마늘 필러가 마음에 들어서 하나 샀다.


근데 쓰다 보니까 잘 까지는 마늘이 있고, 어떤 마늘은 그냥 무슨 수를 써도 잘 안 까지더라. 그리고 마늘 껍질이 저 실리콘 안에 덕지덕지 붙어서 설거지 하기가 좀 귀찮다. 요즘은 드디어 우리 동네에서 깐 마늘을 발견해서! 깐 마늘만 쓰다 보니 이건 거의 안 쓴다.







왕 크니까 왕 귀여워



실리콘 원형 얼음 틀




우리 집은 우리 과 동료 교수 중 한 명과 한 4블록 떨어진 곳이다. 가까우니 서로 저녁 초대를 자주 했는데, 한 번 그의 집에서 완전 동그란 얼음을 넣은 음료를 줬다. 헐 내가 너무 신기해했더니 저 얼음 틀을 그냥 줬다ㅋㅋ 찾아보니 원형 얼음틀 (sphere ice mold)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한국에서도 이미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먹방 유튜브에서 저런 얼음을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아마 그래서 이건 딱히 한국분들이 처음 보는 건 아닐 것 같다.


저 하얀 컵에 물을 채우고 회색 뚜껑을 닫는다. 그럼 구의 반 정도만 물이 차 있게 된다. 나머지 반을 채워 구를 만들려면 회색 뚜껑 가운데 나 있는 구멍에 물을 계속 넣으면 된다. 신기한 게 물이 저 구멍으로 들어가기는 하는데, 뒤집어도 물이 빠져나오진 않는다. 싱기싱기.




얼음이 들어간 잔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린ㄷㅏ...



시댁에서 크리스마스는 정말 큰 파티를 하는 날이다. 나의 시이모 (남편의 이모)인 콜린이 몇 주 전부터 미리 음식 계획을 세워 놓고, 시간표 짜 놓고, 미리 만들 수 있는 건 만들어 놓고. 정말 온갖 요리를 다 한다. 처음에는 난 손님이니까!라는 마인드로 주방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했다. 뭐랄까 한국에서 기대되는 며느리상처럼 행동하기 싫어서 일부러 돕지 않았다. 미국에서 (적어도 내 시댁에서) 며느리에게 어차피 명절 상 차리고 하진 않으니까 굳이 내가 왜 나서서?라는 생각. 하극상이죠?ㅋㅋ


시엄마와 시이모가 부산스럽게 새벽부터 (시이모는 심지어 새벽 3시부터) 크리스마스 디너를 준비하는데, 나는 한 오전 10시쯤 일어나서 커피 내려 마시고 토스트 해 먹고 쇼파에 앉아서 티비를 봤다. 와 진짜 우리 엄마가 이걸 봤다면 등짝 스매싱을 날렸을 텐데 가정교육을 이따구로 시켰어? 라며. 나보다 나이 많은 두 분이 주방에서 부산스럽게 일하는 데, 나이도 어린 내가 떠억 하니 앉아서 놀고 있는 게 사실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엄마와 시이모와 인간대 인간으로 친해지면서,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돕고 싶어 졌다.





그리하여 몇 년 전 처음으로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사실 이때 태국 여행하고 돌아온 직후라 시차 적응이 안돼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새벽에 눈이 떠짐) 준비를 돕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처음 임무는 샬롯 (shallot, 양파 비스무리한 것인데 작음)을 써는 거였다. 샬롯이 근데 너무 매운 거다ㅠㅠ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샬롯을 써는데, 문제는 시이모가 짠 디너 식단에 샬롯이 수십 개가 들어가는 거다...? 몇 시간 동안 울면서 썰었다. 시이모가 너무 미안해하면서 이러면 내년부터 며느리 안 올 거 같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각설하고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시엄마와 시이모가 아마존에서 선물 하나를 보냈다. 바로 저 양파 고글 (onion goggle). 솔직히 처음에 이걸 받고 나서는 "아 나는 정말 미니멀 리스트는 될 수 없는 걸까"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정말 쓸모없어 보였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정 눈이 매우면 물안경을 쓰면 되지, 뭘 이런 걸 또 돈 주고 사?


그리고 완죠니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와 양파랑 샬롯 썰 때마다 저거를 쓰는데 (쓰면 정말 정말 정말 쭈구리처럼 보인다), 너어어어어어무 좋다. 진짜 별거 아닌데 눈이 하나도 안 매워서, 아무리 많은 양을 썰어야 해도 눈물 훔치지 않고 바바바박 썰 수 있다.






참고로 우리 시이모가 짜 온 2018년 크리스마스 디너 계획. 왼쪽은 당일 12시부터 뭘 해야 하는지 시간표가 써 있다. 오른쪽은 말 그대로 코스 내용. 이걸 다 먹고 나면 콤부차 필수다.




다음 편 이어보기

https://brunch.co.kr/@ilovemypinktutu/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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