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elles Adventure Dec 13. 2020

맥시멀 리스트의 미국 주방 (2)

미국 주방에는 OOO가 있다.

신기한 미국 주방기구들 - 2편

1편은 요기에




누룽지를 만드는 팬



지난 편에도 썼지만 나는 집에서 파에야를 꽤 자주 해 먹는다. 우선 우리 동네 근방 200 km 넘게 빠에야 하는 집이 없다. 그래서 파에야를 사 먹으려면 도시로 놀러 갔을 때나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많이 사 먹어 봤는데, 내가 하는 게 제일 맛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해산물을 어마 무시하게 때려 넣기 때문이다.


빠에야 만드는 중


남편이랑 빠에야 쿠킹 클래스를 듣고 나서 시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빠에야 팬 (paella pan)이다. 빠에야 팬이 다른 팬과 다른 점은 (1) 크기가 크다 (2) 바닥이 얇고 열 전도율이 높다는 거다. 크기가 크니까 여기서 야채 볶고, 토마토 넣고, 쵸리죠 넣고, 쌀 넣고, 해산물 끼얹어도 자리가 충분하다. 물론 작은 사이즈도 있긴 한데 우리 집 거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5 화구짜리 가스렌지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바닥이 얇고 열 전도율이 높은 것도 중요한데, 이는 바닥에 누룽지 (영어로는 socarrat. 뉴욕에 이 이름을 가진 빠에야 식당도 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파에야 레시피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불을 최대로 세게 올려놓고 약 1-2분간 저 팬을 돌려가며 바닥에 누룽지를 만드는 거다.


시댁이 빠에야 팬을 사주기 전에는 그냥 집에 있는 후라이팬에 만들었었는데, 팬 크기가 다 고만고만하니까 팬을 두 개를 동시에 써야 했다. 그리고 누룽지는 단 한 번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팬을 쓰니까 세상에 진작에 이걸 쓸걸 싶었다.



꽃이 핀 것 같아 보이는 빠에야 완성작.


손님 초대용으로 빠에야는 정말 유용한 음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팬 하나로 조리하기 때문에 설거지도 많이 안 나온다. 그리고 식사도 한 그릇 음식이므로 역시 설거지가 적다. 또 비주얼이 좀 뭔가 파티 느낌이 난달까? 보통 한 번 하면 5명 정도가 아주아주 배불리 먹고, 양이 적은 사람들이라면 6-7명도 충분히 가능하다. 오른쪽 사진 우측 상단에 보이는 노란 것들은 지난 편에 썼었던 레몬 웻지 백이다.


참고로 빠에야는 해물 볶음밥과는 좀 다르다. 볶음밥은 밥을 따로 해서 나중에 볶는 식이지만, 빠에야는 팬에 이것저것 때려 넣고 난 뒤, 빠에야용 쌀 (paella rice)과 육수를 넣어서 밥을 하는 식이다. 사실 빠에야용 쌀이랑 리조또 쌀 (arborio rice)이랑 내 눈엔 구분이 안 간다. 가끔 빠에야 쌀이 떨어지면 리조또 쌀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차이를 모르겠다.








럭셔리의 디너의 럭셔리함을 더 해주는 것



크리스마스 테이블 세팅



울 시댁에서는 크리스마스 때만 쓰는 예쁜 식기류가 있다. 처음 이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을 때 이 크리스탈로 된 식기류 세트가 너무너무 이뻐 보였다. 한 가지 나를 매우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개인 소금, 후추통. 헐! 이런 것까지 있다니. 정말 미국에서 맥시멀 리스트가 되는 건 매우 쉽다. 난 이 개인 소금, 후추통이 너무 귀엽고 깜찍하고 신기해서 사진을 많이 찍어놨다. 나중에 사진첩을 보니 테이블 세팅 사진만 수십 개다.




크리스마스 디너 테이블 세팅 중


또 한 가지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잘 안 쓰는 것이 천으로 된 냅킨이다. 평소에는 그냥 이 냅킨을 접어 두기만 하는데, 크리스마스같이 특별한 날에는 냅킨 링 (napkin ring)을 쓴다. 정말 온갖 군데에 디테일이 들어간다. 어찌 보면 꼭 필요하지도 않은 건데, 있으니까 분위기가 살고 더 예뻐 보인다. 하긴 꼭 필요해서 쓰는 것보다, 없어도 잘 쓰는 것들 중에 예쁜 게 많다.






펜션 말고 집에서 바베큐



우리나라에서는 바베큐를 해 먹으려면 펜션에 놀러 가서 펜션 집주인에게 바베큐를 해달라고 해야 했다. 왜냐면 인구 대부분이 아파트에 사는데, 아파트에는 바베큐 그릴을 놓을 자리도 없을뿐더러 화재 위험이 있으니까 당연히 가정집에 없다.




나도 미국 아파트에 살 때는 그릴을 살 생각도 안 했지만, 단독 주택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바베큐 그릴을 샀다. 와 진짜 짱이다. 이게 짱인 이유가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뭘 하든 맛이 있어진다. 양갈비, 스테이크, 새우 등등을 통째로 구워 먹을 때, 오븐에서 무쇠팬에도 해 먹어 봤고 그릴에도 해 먹어 봤는데, 그릴에서 하면 맛이 압도적으로 좋다. 분명히 소금하고 후추만 쳐서 그릴에다가 구운 건데 무슨 특제 소스를 바른 것처럼 너무너무너무 맛있어진다. 오븐에 댈 게 못됨. 둘째, 집 안에 냄새가 안 밴다. 그릴은 밖에 놓고 쓰니까! 마지막으로 그릴 중에서 우리가 쓰는 그릴은 가스 그릴인데, 이게 너무 편하다. 내가 장작을 때워서 불을 붙이는 게 아니라, 프로판 가스로 불을 때는 거라서 불 세기 조절도 쉽고 관리가 용이하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사각 팬은 그릴 위에 올려놓는 구이용 팬(veggetable basket)이다. 이것도 시엄마가 사준 건데, 왠지 없어도 잘 살 것 같지만 있으면 너무 편한 주방기구 중 하나다. 그릴 해 먹을 때 야채를 찹찹 썰어서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 두르고 저렇게 그릴에 얹어 놓으면 끝!


오른쪽 사진에는 꼬치에 끼운 새우가 보이는데, 이 꼬치는 그릴용 조리 세트 (grill tool set)에 들어있었다.  이것 역시 없어도 집에 있는 것들로 대체해서 쓸 수 있지만, 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것들 중 하나다. 꼬치도 편하지만 그릴에 그을음을 제거하는 솔이 따로 있고 (엄청 억세다) 큰 스테이크를 뒤집을 수 있는 뒤집개 등등 다양한 조리도구가 있어서 편하다.



그릴용 도구 세트





평소에 안 쓸 때는 이렇게 그릴 커버를 씌워 둔다. 왼쪽 사진은 그릴을 찍으려고 찍은 게 아니고, 조롱이 (cardinal)가 저기 앉아 있길래 찍었다. 제일 많이 쓰고 비싼 브랜드는 Weber라는 브랜드인데, 너무 비싸서 (ㅠㅠ) 우리는 Napoleon이라는 브랜드에서 샀다. 그래도 꽤 비쌌지만 정말 돈 값을 한다.



뒤뜰에 홀로 서 있는 그릴








싱크대를 온전히 유지하기 위하여



남편은 집을 보수, 유지하는데 어마어마한 공을 들인다. 내가 의자를 조금이라도 끌면 "그러면 바닥이 긁힐 수 있다"고 뭐라 하고, 화강암으로 된 주방 아일랜드에 노트북을 그냥 놓으려고 하면 꼭 밑에 수건을 깔게 한다. 긁힌다고. 아니 주방 표면이 화강암으로 된 이유가 긁힘 없어서 쓰는 거 아니야? 설거지하고 나서 주방 수도꼭지 뒤에 물기가 좀 남아 있으면 또 그거 닦아야 한다고 잔소리에 잔소리를... 심지어 지금 집은 내 명의고 모기지도 다 내가 내서 완전 나의 소유인데, 나보다 훨씬 집을 잘 유지한다.



우리 집 아님



남편은 싱크대 위에 뜨거운 무쇠팬이라든가 뾰족한 칼을 그냥 두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싱크대 상한다고. 아니 그걸 다 고려해서 싱크대 재질을 알아서 골랐겠건만, 이런 것까지 조심해야 해? 어쨌든 싱크대를 보호하기 위해 남편이 주문한 것이 싱크대 그리드 랙(Kitchen sink grid strainer)이다. 남편이 이걸 사겠다고 했을 때 유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고 나서 내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물이 밑으로 쑥 빠지니까 대충 헹궈서 식기류를 그 뒤에 두기 편하고, 예전에는 잔소리 때문에 싱크대 위에 그냥 두지 못했던 것을 그냥 위에 둘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우리 집 싱크대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설거지가 너무 쌓여 있어서 차마 그런 사진은 못 올리겠어서 인터넷에서 찾은 걸 올린다.






완전 가내수공업...



지난 편에도 썼듯이, 남편은 본인은 쓰지도 않을 거면서 주방용품을 많이 사는데, 그 시작은 바로 키친에이드였다. 키친에이드와 아이스크림 메이커를 사 오더니, 곧 이것까지 사 왔다. 그나마 자기 돈으로 사 와서 다행



집에서 제면 중


두둥! 바로 파스타 메이커 (pasta attachment)다. 이것 역시 아이스크림 메이커처럼 키친 에이드에 부착해서 쓰는 건데, 꼭 이렇게 안 해도 독립적인 파스타 메이커도 물론 있다. 아무튼 이것 역시 남편은 딱 한번 썼고, 이게 그냥 놀고 있는 것이 아까워서 내가 쓰기 시작했다.



생면을 집에서 뽑아 먹으면 일단 그 희열이 장난 아니다. 면이 뽑아져 나올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ㅋㅋ 그리고 시중에서 파는 파스타보다 집에서 해 먹는 생면이 진짜 곱절은 맛있다. 게다가 거의 90초면 다 익어서 조리하기 편하다.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 얼렸다가 꺼내 먹어도 된다. 문제는 면을 뽑기 까지가 두세 시간은 거뜬히 걸린다는 것? 따흑. 내가 왜 이런 가내수공업을 하고 앉아있지.



왼: 페투치니, 칼국수 면 //  오른: 스파게티, 소면







이 파스타 메이커는 총 3가지 기구로 구성이 된다. 첫 번째 (맨 위)는 반죽을 얇게 펴주는 롤러, 두 번째는 페투치니나 칼국수처럼 약간 굵은 면을 잘라주는 기구, 마지막은 스파게티나 소면처럼 얇은 면을 잘라주는 기구다. 우선 반죽을 만들고 잠깐 휴지를 시켜준 다음에 조금씩 떼어서 저 롤러 사이에 넣어준다. 저 롤러에는 총 8 단계 조절이 가능한데, 1부터 시작해서 (가장 굵음) 8번 (가장 얇음)까지 한번씩 반죽을 굴려주면 판판~하고 얇은 반죽이 나온다. 이게 완성이 되면 두 번째나 세 번째를 이용해서 면을 자르면 된다. 참고로 이것들은 물로 씻으면 안 된다고 해서, 다 쓰고 나면 솔로 밀가루를 탈탈 털어내고 보관한다.




이건 왜 샀을까?



분명 우리 집엔 저렇게 좋은 파스타 메이커가 있는데, 남편이 어느 날 파스타 면 자르는 도구 (noodle roller)를 또 사 왔다. 도대체 왜???? 페투치니 (칼국수용)만 딱 한번 만들어 본 남편은, 스파게티나 소면처럼 가느다란 면을 만들어주는 것도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뙇 자기가 사놓고 뭘 샀는지도 모르는 거야? 이렇게 우리 집 주방은 더더욱 맥시멀 해진다. 오른쪽은 전 편에 소개한 라비올리 스탬프.






3편 이어보기

https://brunch.co.kr/@ilovemypinktutu/52




이전 01화 미국 주방에는 OOO가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