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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Mar 02. 2021

쿠크다스 멘탈 미국인들

미국인들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낮다.

버티세요! 하지 않는 미국인들


미국에서 폴댄스를 만 3년이 넘게 배웠다. 한창 열심히 할 때, 방학을 맞아 한국에 가면 한국 폴댄스 학원에서 강습을 받곤 했다. 폴댄스를 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또 한 번 느꼈다. 내가 미국에서 몇 년 동안 열심히 완성시키려고 했던 자세가 있었다. 다리를 완전히 찢어야 가능한 자세였는데, 유연성이 딱히 좋지 않은 나는 다리를 한 80% 정도만 찢을 수 있었다. 근데 한국에 가니까, 선생님이 완전 스파르타로 내 다리를 누르면서 스트레칭을 어마어마하게 시켰다. 악 악. 내가 아프다고 해도 참으라고 하면서ㅋㅋㅋ 그리고는 폴에 매달려서 자세를 잡았는데 한 95% 정도 완성이 됐다. 나는 "이쯤 하면 충분하지!"라고 생각하고 내려오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다리 쫙 안 찢었다고 더 찢으라고 소리쳤다. 끅끅 대면서 다리를 더 찢어 완벽한 자세를 만들고, 너무 아프니까 빨리 내려오려고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 왈 "버티세요!!!!!"


폴댄스 사진이 마땅한게 없어서 요가 사진으로 대체


미국에서 폴댄스를 배울 땐, 단 한 번도 "참으세요" 혹은 "버티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약간 아프면 "내려와서 쉬라"고 하지, 참고 버티라는 말을 안 한다. 어쩌면 억지로 하다가 내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고소를 당할까 봐 그런 걸까? 암튼,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그 누구도 나를 몰아붙이지 않기 때문에 진도는 좀 더뎠다. 3년이나 했으니 그래도 스킬을 이것저것 많이 배웠지만 만약 내가 한국에서 폴댄스를 배웠다면? 미국에서 3년간 배운 스킬들은 아마 6개월 정도 내에 다 배웠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파도 참고 버티며 수업을 받고 연습을 했을 테니까.





미국에서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저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행복하게 살지 못할 거 같은데. 돈도 더 못 받고 학교에서도 힘들어했을 텐데. 군대에서는 진짜 많이 깨졌을 텐데.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소위 정신력이 약하다. 정신력이 약하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는 끈기다. 뭔가 이를 악 물고,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나는 이게 관용적인 표현인 줄 알았는데, 공부를 진짜 집중해서 하다 보면 이를 너무 꽉 물어서 턱이 아프다 끈기 있게 해 내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위에 쓴 폴댄스의 예시처럼, 한국은 막 의지로 몰아붙이는 게 흔한 편이라면 미국에서는 악 물고 뭘 시키질 않는다. 스스로 악 물고 하는 경우도 드물고. 피티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피티를 받을 때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하면 트레이너가 "포기하지 마세요!"하고 푸시를 한다. 근데 미국에선 "힘들면 그만해~"하고 만다. 



물론 미국에도 악바리는 있기는 한데 정말 정말 극소수다. 박사를 하면서 남미, 아시아, 유럽, 북미, 아프리카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중에서 가장 work-life 발란스를 잘 맞추는 사람은 미국애들이었다. 저녁이 되면 집에 가고, 주말에는 쉬고. 물론 안 그런 친구들 있다. 예를 들면 맷. 도대체 저런 식으로 공부해서 어떻게 박사를 하겠다는 거지 싶은 사람들은 죄다 미국인이었다.


별로 이 글과 상관은 없지만, 정신력이 약하다는 말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지나치게 구김이 없다. 뭐랄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왕따를 당해봤다든지,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천진난만함. 이런 사람에겐 vulnerability (심리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마이웨이와는 좀 양상이 다르다. 마이웨이는 썅 내 갈길 갈 거야! 이런 느낌이라면, 이들은 뭔가 세상 풍파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심지어 간접경험도 안 해본 듯한) 온실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랄함 같은 게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낮다



미국인이 정신력이 약하다는 마지막 뜻은 정신건강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느냐에 달렸다. 우리가 보통 정신력이 약하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끈기 없고 위약하고 툭하면 상처 받을 거 같이 여리디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떠올린다. 즉,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낮을 때 정신력이 약하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다 보니 어쩌면 정신력이 약하다는 건 딱히 나쁜 게 아니다. 미국인들 더러 "약해 빠졌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던데, 어찌 보면 맞는 말이지만, 어찌 보면 오히려 좋은 걸 수도 있다. 정신건강을 중요시 생각하고 정신건강을 열심히 돌본다는 의미에서.




지금 내가 있는 학교 예를 들어보겠다. 경영대에서는 매년 학기 초에 1시간 반 정도 교육을 받는다. 내가 부임한 첫 해에는 무차별 총격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를 알려줬고, 그다음 해에는 성차별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다. 그다음 해에는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그러니까,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무차별 총격이나 성차별과 비슷한 정도로 중요시된다. 이 교육의 중점 메시지는 "학생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위태로워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유도하라"는 거였다. 혹시나 학생이 자살을 할까 봐. 


예를 들면, 한 학생이 지나치게 수업을 많이 빠진다거나, 누가 봐도 숙취상태로 자꾸 수업에 온다거나, 분명히 수업을 잘 못 따라오는 것 같은데 전혀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교수가 먼저 학생과 면담을 제시하라고 했다.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여차하면 정신과 핫라인에 전화도 하라고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이제 dead week이라는 말을 안 쓴다. Dead week라는 건 기말고사 1주일 전을 뜻하는데, 보통 커피에 찌들고 밤을 새우며 하얗게 불태우듯이 공부를 하기 때문에 dead week이라고 한다. 근데 아예 공문이 내려왔다. 더 이상 쓰지 말라고. 그 이유는 dead라는 단어가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힘들고 취약해져 있는 기간에, dead라는 단어를 써서 괜히 자살 생각을 하게 될까 봐.


사실 이 공문이 내려왔을 때, 우리 과에 있는 완전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주의자이자 소시오패스 같은 교수 E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학교 때 아무리 힘든 dead week이었어도 잘만 해 냈는데, 왜 요즘 애들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해? 너무 약해 빠진 거 아니야? Dead week라는 단어도 못 이겨낼 학생이면 우리 학교에 다닐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아 스트레스. 모두들 눈만 꿈뻑꿈뻑하면서 "저 미친놈한테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싶었다. 사실 이런 발언은 한국에선 여기저기 많이 듣긴 했었다. 왜 이것도 못 견뎌내냐, 이것도 못 하면 이런 학교 다니면 안 된다 등등. 이걸 미국에서 들을 줄이야! 암튼 다들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신경 쓰는 와중에 소시오패스 같은 교수 E는 요즘 학생들이 약해 빠졌다면서 자기는 계속해서 dead week라는 표현을 쓸 거라고 했다. 우리 과에 교수로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정신력이 E만큼은 강하기 때문에 교수로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이 우리만치 강하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소시오패스 같은 놈팽이 E는 본인의 경험에만 빗대어서 학생들을 이해하려들 지도 않는다.


또 하나,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봄방학이나 가을방학을 없앴다. 대신에 한 달에 하루는 아예 쉬는 날로 지정을 해 버렸다. 그리고는 또 공문이 내려왔다. 쉬는 날에는 숙제도 시키면 안 되고, 보충수업을 해서도 안되고, 보충수업 강의를 영상으로 올려서도 안된다고. 쉬는 날에는 무조건 쉴 수 있게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말라고. 사실 난 박사생들 수업은 하려고 했는데, 공문에 너무나 명백히 대학원생도 포함이라고 써 있어서 그냥 수업 취소했다. 룰루랄라~





나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내 장점을 얘기하라면 끈기 (persevere)한다는 걸 꼽았다.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건 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라는 거.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도 됐음에도 혼자 우울증을 이겨내 보겠다고 악을 썼다. 그리고 박사를 끝냄으로써 내가 행복해질지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없이, 그냥 이를 악 물고 박사를 끝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했다. 근데 막상 박사를 따고 교수가 됐지만 나는 딱히 행복하지 않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악바리로 할 거면 과연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은 좀 해보고 덤볐어야 하는데.


영화 위플래시를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할 때 저렇게 악에 받쳐 공부를 했고, 박사 때도 저렇게 공부를 했다. 사실 이 영화는 박사 친구들이랑 같이 봤는데, 다 보고 나서 모두가 한 첫마디가 "우리 같다"였다ㅋㅋㅋ 이렇게 몰아붙여서 공부해야 했던 박사생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하지 않으면 과연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걸까 싶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걸까. 내 행복과 내 정신 건강과 내 삶을 잠식하면서까지 저렇게 해야만 결과가 나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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