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오지라퍼가 많다.
지난번에 미국인이 신발을 신고 침대에 올라가는 이유를 썼다가 왜 한국을 왜 무시하고 비하하냐는 댓글을 많이 받았다. 참고로 저 글은 한국인과 미국인의 위생개념이 다르다 (틀리다가 아님)는 걸 쓴 개인적인 관찰일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느낀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 글 (positive statement)로 쓸 뿐이다. 이 문화가 낫네 저 문화가 낫네를 가치 판단하는 글 (normative statement)이 아니다.
지난 글에 불만이 있었던 사람들은, 아마 이 글을 보면 제대로 발작 버튼이 눌리지 않을까 싶다. 왜냐고? 지난 편에 쓴 위생개념을 보면 난 한국식, 미국식 위생개념 둘 중에 딱히 선호도가 없었다. 가치판단을 차치하더라도 나는 그 어느 쪽 위생 개념도 선호하지 않는다. 내게는 두 나라의 위생개념상 더럽다고 하는 건 둘 다 똑같이 더럽다. 하지만 이번에 쓰는 한국식 오지랖과 미국식 오지랖에는 내 선호가 분명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나라는 굳이?라고 생각할 오지랖은 부리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한 경우엔 오지랖을 잘 부리지 않는다. 미국은 굳이? 인 상황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둘 다 오지랖을 부린다. 내가 당해야 할 오지랖을 하나 정해야 한다면 난 미국식 오지랖을 더 선호한다.
다시금 누누이 얘기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선호하는 문화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선호가 곧 "그러므로 어느 문화가 더 더 대단하고 더 미개하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저 나와 더 잘 맞는 문화가 있고 아닌 문화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너무 노여워 말길.
오지랖에도 종류가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오지랖은 외모 혹은 행동 지적일 거다. 이런 오지랖은 미국인들이 어마어마어마하게 많이 부리는데, 우리나라의 오지랖과는 좀 양상이 다르다. 참고로 오지랖의 정의에는 "굳이"라는 의미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서 굳이 하는 말과 행동이 오지랖이다.
미국의 오지랖은 스몰 톡을 할 때 많이 나타난다. 스몰 톡이란 계산대에 줄 서 있거나 할 때 생판 모르는 앞 뒤 사람이 간단히 하는 대화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볼 일도 없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그저 지나가는 행인 1과 같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친구도 아닌데 고작 1-2분 남짓 되는 시간을 낯선 사람과 굳이 대화를 할 필요가 있나? 는 생각이 우리나라에서는 지배적이다. 미국은 좀 다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이더라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튼다. 이렇게 대화를 트는 데 자주 사용되는 미국의 오지랖은 바로 칭찬이다.
미국에서 내가 쪼오금만 꾸미고 나가면 사람들이 "어머~ 그 치마 어디서 샀어? 너무 이쁘다"라든가, "너 그 부츠 정말 잘 어울린다"라는 얘기를 서슴지 않게 한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생판 모르는 남의 외모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는 거니, 당연히 오지랖이다. 그런데 나는 이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런 말 들으면 기분이 좋잖아요?ㅋㅋ 또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무슨 발표를 하거나 소감을 얘기하면, 내 스피치를 좋아한 사람은 대체로 내게 와서 잘 들었다고 칭찬을 해주고 간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그리고 굳이 얘기해주지 않아도 될 말인데.
이런 오지랖은 공연을 볼 때도 자주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립박수라는 것이 지이이이이인짜로 너무나 훌륭한 공연을 봤을 때만 하는 것이라면, 미국에서는 그냥 별거 아닌 쇼 (정말 그냥 그런...)에서도 무조건 기립박수를 친다. 브로드웨이는 그렇다 쳐도 지금까지 미국에서 본 모든 연극, 발레, 오케스트라, 오페라, 뮤지컬 등등에서 단 한 번도 기립박수가 안 나온 적이 없다. 그러니까 공연의 질이 어땠든 "오구오구 수고했쪄"라는 의미로 기립박수를 쳐서 칭찬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한국 기사에서 00쇼가 미국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해서 딱히 성황리에 쇼를 했다는 뜻이 아님.
암튼 이런 오지랖에 익숙해지다 보니 한국에서도 내가 이런 오지랖을 한 번 부린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여자분의 스타일링이 너무 예쁘고 그분한테 잘 어울리는 거다. 특히 그분 치마가 완전 딱이었다! 그래서 그분한테 "치마 정말 잘 어울리세요"라고 오지랖을 부렸는데, 그분이 진심 0_0 이런 표정을 지으며 "뭐지? 왜 말을 걸지"라는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안 했다. 그 순간, 앗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오지랖이 흔하지가 않지 싶었다. 그 뒤로는 한국에서는 절대로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칭찬을 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한국에서의 외모 혹은 행동에 대한 오지랖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내가 한국에서 겪은 외모/행동에 관한 오지랖 중에서 긍정적이었던 오지랖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에서 버스정류장을 향해 가다가 내 앞에 한 여자분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내 뒤에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남자 둘이서 "저렇게 뚱뚱한데 치마를 왜 입냐"라며 창피하지도 않냐고 다 들리게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 모두 같은 버스를 탔는데, 버스에 타서도 그 두 남학생이 계속해서 "진짜 뚱뚱하다"는 무례한 코멘트를 계속해서 날렸다. 내가 다 화날 지경. 한 번은 지하철 2호선에서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한 한 남자애를 보고는, 한 할아버지가 약 2분 동안 내내 욕설에 욕설에 욕을 한 적을 봤다. 하도 할아버지가 염색했다고 쌍욕을 해서 그 남자애는 결국 지하철에서 내렸다. 베트남 친구들과 지하철을 탔는데, 나보고 왜 저런 애들이랑 몰려다니냐고 뭐라고 한 아주머니도 있었다. 참고로 그 베트남 친구들은 베트남 대표로 한국에 온 정말 잘 나가는 대학생들. 대학교 때는 왜 나보고 힐을 안 신고 화장 안 하냐는 오지랖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친척들과 모이면 늘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누구누구는 살이 너무 쪘네 (심지어 그냥 보통임) 살 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들이 싫어한다 이런 얘기였다.
물론 미국에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오지랖을 부리는 지역이 있는데, 소위 말하는 남부지방에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오지라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미국 남부, 수족관 앞에서 줄을 서 있는데 내 앞에 히스패닉 계열의 가족이 유모차를 가지고 서 있었다. 어떤 백인이 내가 그 가족의 엄마인 줄 알았는지, 굳이 나한테 와서 "저 애가 너한테서 나온 애야?"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그 백인은 동양애가 어떻게 히스패닉과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았냐? 는 무례한 질문을 한 거다. 그리고 내 친구 중에 백인 남자 + 흑인 여자 커플이 있었는데, 둘이 길을 걷다 보면 백인 남자에게 "도대체 왜 저런 여자 만나냐"라고 굳이 해코지하는 백인도 봤다. 또 내 친구 중에 아시안 남자 + 백인 여자 결혼한 커플이 있는데, 식당에서 웬 아주머니가 둘이 결혼한 사이냐고, 도대체 어떻게 결혼을 했냐고 물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아시안 남자가 백인 여자와 결혼했는지를 물은, 정말 굳이 묻지 않아도 될 오지랖을 부린 거다.
두 번째 종류의 오지랖은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누군가가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 돕는다는 의미에서 오지랖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어쩌면 "굳이"라기보다는 꼭 필요한 오지랖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선 이럴 때 굳이 오지랖을 부려서 남을 돕는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남을 돕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트럭에서 소주나 파인애플이 쏟아졌다거나, 길에서 누군가가 심정지가 왔다거나. 하지만 내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저어엉말 필요한 도움이 아니면 잘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
박사를 하던 중,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할로윈 데이였다. 학교 헬스장은 밤 11시에 닫았는데 그날 밤 평소처럼 운동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데, 자전거 반납 랙 (따릉이같은 자전거)으로 가려면 턱을 하나 넘어야 했다. 턱에 가까워와서 빗길이니까 속도를 줄였는데 너무 줄였나 보다. 자전거가 턱을 받자마자 그대로 옆으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땅에 박았다. 바보같이 헬멧을 안 썼죠. 머리가 띵-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딱 3초만 세고 다시 일어나자 마음먹었다. 일단 눈을 감고 3초를 세는데, 분명히 길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내게 괜찮냐고 묻는 거다. 눈을 떠 보니 아주머니가 저 멀리서 내가 넘어지는 걸 봤다고 했다. 분명히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행인 2명이 또 내 옆에 왔다. 한 명은 내 자전거를 대신 반납해주고 쏟아진 내 헬스가방에서 튀어나온 운동화와 옷가지, 그리고 책가방을 주워다 줬다. 다른 한 명은 근처 호텔에 들어가 비닐봉지에 얼음을 한가득 받아왔다. 아주머니와 행인 2명은 내 머리에 얼음을 얹어주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뇌진탕일 수 있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같이 있어주겠다고. 당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맷과 시모네에게 전화를 해서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 그들이 올 때까지 이 아주머니는 자기 아들이 미식축구를 했었어서 뇌진탕을 많이 봤다면서, 별거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되 밤에 혼자 자지 말고 계속 경과를 보다가 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보라고 나를 계속 안심시켰다. 마치 내가 넘어질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빨리 고민 없이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어찌 보면 앞으로 다시 만날 일도 없는 생판 남인데,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을 텐데, 굳이 나에게 도움을 준 오지랖에 여전히 감사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짐을 쉽게 잘 들어준다. 딱히 크지도 않은 짐인데, 지하철 계단 밑에 내가 짐을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는 꼭 나를 도와줬다. 넘나 쿨하게 그냥 내 손에 있는 내 캐리어를 들더니 처음에 훔쳐가는 줄 알고 기겁 아무 말도 없이 성큼성큼 계단 꼭대기에 짐을 갖다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던 길을 간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굳이 날 도아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굳이 오지랖을 부려서 도와준 것이 참 고맙다. 비행기에서도 선반이 너무 높아서 내 팔이 닿지 않으면 누군가가 꼭 나서서 도와줬다.
한국에선 좀 달랐다. 사람이 죽을 것 같은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굳이 남을 돕지 않는다. 뭐랄까 어설픈 배려보다는 충분히 거리를 두는 것이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대학교 때 순두부가 유명한 공학원에서 저녁을 먹고 막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공학원 입구에는 정말 잘 보이지 않는 턱이 하나 있었다. 바닥 타일 색깔이 비슷해서 아주 자세히 보지 않으면 턱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보기 어렵다. 이미 학교를 몇 년 이상 다녔으니 나는 이 턱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저 멀리 내 앞에 가던 한 여학생은 그 턱을 몰랐는지 거기서 발을 접질렸다. 보통 넘어지면 아픈 것보다도 쪽팔리니까 금방 일어나서 괜찮은 척 걸을 텐데, 이 여학생은 정말 심하게 접질렸는지 일어나지를 못하고 계속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 여학생 주변에는 약 두 세 무리의 학생들이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어? 하고 보더니 쭈뼛쭈뼛 이걸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해 보였다. 내가 그 여학생에게 가기까지 충분한 거리가 있었는데도 그동안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내가 그 여학생에게 일어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면서 너무 아프다고 울었다. 나는 그 여학생을 업듯이 부축을 해서 앉을만한 곳으로 옮겼다. 나동그라진 그 학생의 짐도 다 옮겨놓고. 참고로 나는 체구가 작아서 이 여학생을 부축해서 걷는 데 매우 힘들었고 누군가 한 명만 더 도와줬으면 싶었다. 저기 담배 피우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좀 도와주면 좋을 텐데. 정말 별거 아닌데. 암튼 그녀는 계속 울면서 내게 한 20초에 한번씩 너무 고맙다고 얘기했다. 아무튼 어디까지 가냐, 누구 부를 사람이 없냐고 했더니 마침 남자 친구가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다. 남자 친구가 곧 정문에 왔다고 정말 미안한테 정문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 애 짐과 책을 다 들고 부축을 해서 정문까지 나갔다. 그때도 그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정문 앞에 남자 친구 차를 가리키길래, 내가 조수석 문을 열고 이 여학생을 앉혔다. 근데 신기한 건 그러고 있는 동안 남자 친구도 안 도와주더라? 뒷좌석에 이 여학생 짐을 다 두고 남자 친구에게 심하게 접질렸으니 꼭 정형외과 가보라고 얘기했고, 그 여학생은 연신 감사하다고 울었다.
한국에서 만원 버스를 타면 간혹 제때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한 번은 초딩쯤 돼 보이는 남자애가 내리질 못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저씨 뒷 문 열어주세요"라고 외쳤다. 그 주변에 있던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 전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도와주는 거다. 남자애는 거의 울먹거리면서 아저씨 아저씨를 불렀고 내가 정말 큰 목소리로 "기사님 여기 못 내린 사람 있어요. 문 열어주세요"했다. 그렇게 말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아무도 이럴 때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다.
또 다른 만원 버스에서 한 남학생이 앞쪽에 있었다보다. 내릴 때가 됐는데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뒷문으로 가지 못하고 앞문으로 내리려고 했다. 기사님이 엄청 소리를 지르면서 앞문으로 내리지 말고 뒷문으로 내리라고 했다. 그 남학생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사람들을 뚫고 뒷문으로 가려고 했지만, 정말 아무도 오도 가도 못할 만큼 꽉 찬 만원 버스였다. 기사님은 그래 놓고 출발하려고 하고 기사님도 너무하지... 아무도 그 상황에서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다. 앞문에 있던 내가 "기사님 사람 너무 많아서 뒷문으로 못 내려요"라고 말하니 그제야 앞문을 다시 열었고 "원래 이러면 안 된다"며 남학생에게 또 한소리를 했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인데, 이럴 때는 왜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건지.
물론 나도 한국에서 친절하고 고마운 도움을 받은 적이 많다. 그들의 선한 오지랖에 아직도 매우 감사하다. 아직도 생각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훈훈해지는 일화가 많다. 어릴 때 아빠 친구네 아파트에 집들이를 가서 또래 애들과 놀이터에 갔다. 애들은 어디론가 가기로 했고 나는 다시 아빠 친구네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길을 못 찾겠는 거다. 심지어 우리 집도 아니니까 주소도 모르는데. 무서워서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었다. 그때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아주머니가 얘 왜 우니 하며 물었다. 낯선 사람이니 일단 경계하면서도 길 잃어버렸다고 서럽게 울면서 대답했다. 아주머니가 몇 동 몇 호냐고 물어봤지만 모르겠다고 또 울었다. 정말 고맙게 아주머니가 나를 경비실에 데려다주셨다. 경비실에서 아파트로 내 이름과 무슨 국민학교에 다닌다 (이때만 해도 국민학교였다)고 방송을 했다. 그런데도 내가 계속 우니까, 경비아저씨 한 분께서 방송했으니까 엄마 아빠가 곧 올 거라며 나를 안심시키면서 빵을 줬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삼립인가 샤니에서 나온 동그란 스폰지 빵을 줬다. 은방울 빵이었나? 이건 당시 우리 집에서는 절대 안 사주던 거였어서, 울면서도 나는 그 빵을 먹어야겠더라. 한 두 개를 집어먹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퍽퍽하고 맛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경비실로 전화가 왔고 경비아저씨가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몇 동으로 찾아갔다. 그 뒤에 타서도 나는 계속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