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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Jan 06. 2021

취직하기 위해 370곳 원서를 썼다.

박사들의 취준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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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박사를 졸업하면서 겪게 되는 구직시장에 대해 쓴다. 박사들의 취준 시장은 전공마다 매우매우매우매우 다르다. 그러니 이 글은 내 전공 한정이다.




나도 내 수준을 몰라요.



박사를 하다 보면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지고 자괴감은 한없이 는다. 내가 제일 못난 것 같고, 공부하고 논문을 열심히 읽어도 모르는 건 점점 더 많아지고, 내 논문은 오늘도 여전히 진전이 없겠지, 내 논문에 있는 구멍은 갈수록 많아지고 커지고. 이러다가 박사 졸업 못하는 건 아닌가, 그러면 실패한 사람이 될 텐데. 왜 나는 쟤처럼 이렇게 논문을 못 쓰는 거지, 왜 이렇게 아이디어가 없는 거지, 왜 열심히 해도 해도 모자란 거지. 혹시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이 뭔지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박사를 하십시오.


난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고, 그나마 좀 안다 싶은 건 이미 십 년 전에 성했던 거고 요즘에 더 발전된 건 또 잘 모르고. 배울수록 내가 모르는 게 뭔지를 더 많이 알게 되니까, 졸업을 앞두고 직장을 잡을 때가 되면 도대체 누가 날 채용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내가 속한 전공에서는 내가 도대체 취준 시장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왜냐면 저널에 논문을 실는 것이 최최최최소 3년은 걸리는 매우 느린 작업이기 때문에, 박사를 하는 동안에 저널에 논문을 내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저널에 논문을 내면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라도 갈 텐데. 저널에 아무것도 내지 못하고 박사 끝무렵 취준 시장에 나갈 때면, 대체 내 연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얼마나 사람들이 좋아해 줄지 알 겨를이 없다.


그러니까 일단 뽑는다고 공지가 올라온 곳은 지원서를 전부 다 쓴다. 참고로 저 370군데는 교수직만 370군데를 쓴 거고, 일반 사기업에도 따로 40군데 정도를 썼다. 교수직도 한국과 미주, 영국, 호주만 쓴 게 아니고, 영어를 안 쓰는 스페인, 터키, 칠레, 멕시코, 대만, 중국, 홍콩, 아랍 에미리트, 카타르, 인도 등 정말이지 구직광고를 낸 데는 다 썼다. 도대체 내 수준이 어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중국 시골 학교에 갈 만한 수준인지, 아니면 미주 탑 30위 정도 되는 학교에 갈 정도인지 가늠이 안 가니까. 다 쓰고 본다.






지원서 쓰는 게 제일 쉬웠어요.



370군데나 쓸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지원서 내는 게 엄청나게 쉽기 때문이다. 논문을 준비하고, 발표 준비하고, 인터뷰 준비하고, 티칭 자소서 쓰고, 리서치 자소서 쓰고, 교수님이랑 매일 만나서 논문 진행시키고 등등, 취직을 위해 필요한 일련의 과정 중에서 지원서 내는 것이 제일 쉽다. 나 같은 경우는 논문 주제를 좀 늦게 찾아서 박사를 1년 더 하고 나가는 게 좀 더 유리했을 수 있으나, 빨리 여기를 벗어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무리를 해서 일찍 졸업하기로 했다. 논문 주제가 늦게 잡혔으니, 당연히 논문을 진전시킬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만 3달 동안 매일 새벽 1시까지 연구실에 있다가 집에 가서 새벽 6시 해가 뜰 때까지 일을 하고, 3시간 잠을 자고 9시에 일어나서 샤워만 하고 다시 연구실에 나갔다. 이 3개월 동안은 내가 밥을 사 본 적도 없다. 내 친구들은 다 박사를 1년 더 하기로 했어서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다. 그들이 점심 먹으러 갈 때, 나는 내 카드를 주고 내 밥도 사다 달라고 했다. 저녁도 마찬가지. 하루에 바깥공기를 쐬는 적은 딱 두 번, 아침에 연구실 갈 때 그리고 밤에 집에 갈 때. 난 박사 1년 차부터 일주일에 3-4번씩 꼬박꼬박 운동을 했는데, 이 때는 3개월 동안 꼬박 단 한 번도 운동을 한 적이 없다. 진짜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도록 일 했다.


이런 거에 비하면 지원서 쓰는 건 껌이었다. 3개월이 끝나가고 지원할 때가 되니 그나마 좀 숨 돌릴 수 있었다. 이때는 그래도 운동도 가고 미드를 틀어놓고 멍 때리며 지원서를 냈다. 다행인 건, 자소서를 하나 써 놓으면 여기저기 돌려막기가 가능하다. 티칭 자소서를 제외하고 리서치 자소서는 3가지 버전을 준비했다. 하나는 연구중심 학교 교수직 용, 하나는 리서치 기관 용 (씽크탱크나 정부 기관 등), 그리고 하나는 사기업 용. 이렇게 써 놓고 그냥 돌려막았다. 그러니 지원도 쉬울 수밖에.


간혹 (특히 UC 학교들) 다양성에 관한 자소서를 내라는 곳이 있었다. 내가 여기 뽑히면 이 학교의 다양성에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써 내라는 거다. 솔직히 이때 너무 지쳐서 그냥 다양성 자소서는 아예 안 썼고, 다양성 자소서를 업로드하는 란에 그냥 내 리서치 자소서를 똑같이 올렸다. 근데 그럼에도 인터뷰를 하나 받기는 했다. 아마 다양성 자소서는 우리 전공에선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일까?







비서도 밤을 새운다.



370군데를 쓰면 추천서를 370군데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헐! 내가 선택한 세부분야는 당시 우리 학교에서 인기가 없었던 분야라서 그나마 교수 한 명당 학생 수가 적었다. 내가 졸업할 때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 취직 시장에 같이 나갔다. 그 말인즉슨, 교수님들이 내 추천서 370 군데뿐만 아니라 나머지 2명의 몇 백 군데에도 내야 한다. 아니 안 그래도 바쁜 교수님들이 이런 거 할 시간이 있나? 없죠. 그래서 추천서 내는 것을 전담하는 비서가 있다.


이 비서가 평소에 뭐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다가 졸업을 앞두고 취준생이 됐을 때야 비로소 이 비서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알게 된다. 지원을 할 때 추천서를 써줄 사람의 이메일을 쓰라고 한다. 그럼 그 이메일로 추천서를 업로드하라고 링크가 간다. 이때, 우리 학교에서는 내게 추천서 써줄 교수님 이메일을 쓰지 않고 그 비서 이메일을 쓰도록 한다. 그러면 그 해 취준생 약 20명의 추천서 링크가 다 이 비서에게 간다. 1명이 300군데 쓴다 치면, 이 비서는 6000개의 이메일을 받는다. 교수님들은 추천서를 학생 당 한 장만 써서 이 비서에게 보낸다. 그러면 이 비서가 6000개의 이메일 중, 이 학생이 지원한 학교의 이메일을 골라서 추천서를 교수 대신 업로드한다.


이때 비서도 거의 밤을 새운다. 새벽 1시에 이메일을 보내든 새벽 6시에 보내는 늘 깨어 있었다. 훠우~ 비서도 뭔 고생...






370군데를 써도 딱 두 군데 됐다.



이렇게 지원서를 마구마구 뿌려봤자 인터뷰를 받을 확률은 매우 낮다. 우리 전공 기준, 지원서를 내면 각 학교에서 약 20-30명 정도 인터뷰할 사람들을 추린다. 그리고 30분씩 인터뷰를 하고 나서 약 5명 정도 fly-out (직접 학교로 불러서 하루 종일 교수들이랑 인터뷰하고 논문 발표하고 밥도 같이 먹고) 줄 사람을 추린다. 내가 취준 시장에 나갈 때 우리 학교에서 딱히 잘 나갈만한 학생이 없어서, 어쩌다 보니 내가 학교에서 좀 밀어주는 스타가 됐다. 스타라는 단어는 내가 지어낸 게 아니고 그냥 학교에서 올해 좀 잘 될 것 같은 학생을 추려서 암암리에 스타라고 부르고 밀어준다. 암튼 얼떨결에 내가 스타가 됐는데, 370군데 중에서 인터뷰는 약 25군데 정도 받았다. 그리고 사기업에서 한 5군데 인터뷰를 받았다. 그니까 나는 약 400 군데 지원서를 써서 30개 인터뷰를 받았는데 (10%도 안 되는 전환율), 이 정도면 지이인 짜 잘한 거다. 학교에서 밀어주지 않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인터뷰를 정말 많이 받아야 한 6개 정도 받는다. 인터뷰 1-2개 받는 경우도 매우 많다. 부익부 빈익빈이 여기서도... 


인터뷰를 보고 나서의 전환율은 더 낮아진다. 정말 운이 좋게 나는 fly-out을 9개 정도 받았는데, 이는 인터뷰 -> fly-out 전환율이 약 30% 정도인 거다. 내가 취준 시장에 나갔을 때 우리 학교에서 내가 전환율이 가장 높은 경우였다. 비서 말에 의하면 평균을 내면 인터뷰 6개당 fly-out을 하나 받는 정도라고 한다.


Fly-out에서 드디어 채용으로 이어지는 전환율은 더 낮다. 왜냐면 각 학교에서 5명 정도 fly-out을 주고 결국 뽑은 건 1명이니까, 나머지 4명에게는 오퍼가 안 간다. 정말 운이 좋게 나는 fly-out을 7개 정도 했을 때 오퍼를 몇 개 받아서 그 뒤에 있는 fly-out은 상도덕 상 취소했다. 그중에서 연구중심 학교에 교수직은 두 군데, 사기업 두 군데였다. 사기업은 내 세부분야를 좋아하므로 어느 정도 잘 될 줄은 알았다. 근데 학교에서 밀어주는 스타였음에도 내가 아주 약하디 약한 스타였으니 결국 370개 교수직 중에서 2군데에서 오퍼를 받은 거다.


이렇게 나 같은 스타도 지원서 -> 인터뷰 -> flyout -> 실제 오퍼로 이어지는 전환율이 0.005밖에 안된다. 그러니 다다익선이라고 일단 지원서는 여기저기 왕창 다 쓸 수밖에.


이 글과는 상관이 없지만, 우리 전공의 취준 시장은 매우 독특하다. 나중에 더 자세히 쓰겠다.






취준 시장에서의 운


내가 아무리 뛰어나도 난 심지어 뛰어나지도 않음 좋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학교에서 사람을 뽑아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을 뽑을 때도 전문분야를 정해 놓고 뽑은 경우가 있어서, 같은 전공이어도 세부분야가 같아야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제법 큰 학과나 학교더라도 매년 모든 분야/전공에 공석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내가 교수가 됐을 때 우리 과에서는 내 세부분야를 뽑으려 했다. 이렇게 뽑으려는 분야가 확실하면 아예 잡 포스팅에도 이런 분야 뽑는다고 써 놓는다. 그치만 어떻게든 아무 직장이라도 가고 싶은 절박한 박사생은 분야가 달라도 일단 다 지원하고 본다.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어도 다른 세부분야라면 아예 지원서를 보지도 않는다. 내 다음 해에는 다른 분야 사람을 뽑기로 했다. 만약 내가 1년만 늦게 졸업했다면 난 이 학교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운이 상당히 많이 작용한다. 뭐 운이 안 작용하는 경우가 어딨겠냐만은.  


또 난 하와이 대학에 가면 넘나 좋겠다 노래를 불렀었는데, 내가 졸업하던 해와 그 다음 해에도 아예 교수를 뽑지 않아서 지원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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