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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s Adventure Jan 04. 2021

배우자 잘 두면 교수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선 낙하산 인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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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면 채용 오케이!


미국은 어떨 때 보면 룰과 원칙을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지키는데 (예를 들면 누가 봐도 백발 호호 할아버지가 술을 사려고 할 때도 신분증을 확인), 또 어떨 때 보면 원칙이란 게 있나 싶은 경우도 있다. 이게 학교에서 교수 뽑을 때도 드러나는데, 고용을 하는 데 있어서도 특채(라 쓰고 낙하산이라 읽는)가 생각보다 많다. 공채보다야 적지만 그래도 꽤 있다. 적어도 내가 속한 전공과 내가 속했던 두 학교에서는. 이런 특채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바로 배우자 고용 (spousal hire)이다. 다른 데서 교수하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웬만큼 이름 있는 연구 중심 학교에서는 이런 것 같다.


내가 박사 했었던 곳에서도 진짜 잘 나가는 교수 A가 있었는데 그분 아내 B도 같은 연구를 했다. B는 연구 실적만으로는 절대 그 학교 교수가 될 수 없었는데, B에게 일자리를 안 주면 완전 잘 나가는 A가 다른 데로 가 버릴 수 있기 때문에 B에게도 일자리를 어떻게든 만들어서 준다. 헐! 이거 완전 공식적인 낙하산 아니야? 이게 학교 내에서 자리를 못 찾아주면, 될 수 있는 한 찾아준다. 내가 박사한 곳도 주립대였는데 우리 과와 긴밀하게 서로 연구 같이 하는 외부 기관이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자 자리를 만들기가 영 곤란하면 그 기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준 경우도 종종 봤다. 단, 그 배우자도 그 기관에서 하는 일을 하긴 해야 하고 박사가 있어야 하긴 한다. 생판 전공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면 학교에서도 별도리가 없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도, 한 교수를 데려오기 위해 그 배우자에게 다른 과 전임강사 (전임강사에 대한 소개는 지지난편) 자리를 줬다. 대체로 전임강사는 박사 출신을 뽑는데, 이 배우자는 석사만 있음에도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들과 저녁을 먹는데 전임강사가 된 그 배우자가 자기 동료에 대해서 좀 한탄을 했다. 듣자 하니 동료인 다른 전임강사가 자기를 굉장히 아니꼽게 본다는 거였다. 이 동료는 머리털 뽑아가며 박사 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누구는 남편/아내 잘 둬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쟁취한 자리를 똑같이 차지하다니. 이런 심정으로 싫어한다고. 난 사실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는 잠 못 자면서 우울증까지 얻으면서 박사하고 직장 잡으려고 원서를 370군데나 썼는데, 갑자기 누구의 배우자라는 이유로 심지어 박사도 아닌데 나와 동급으로 채용이 된다면, 나도 속으론 뭔가 박탈감이 들 것 같다.


이게 꼭 나쁜 일만 있는 건 또 아니다. 갑자기 누가 그만두거나 해서 사람을 급하게 구해야 할 때, 배우자 고용 (spousal hire)는 처리가 신속하기 때문에 굉장히 편리한 채용이다. 우리 과에서 누가 다른 학교로 가면, 그 사람이 가르치던 걸 다른 누군가가 가르쳐야 한다. 근데 한 사람이 가르칠 수 있는 총량에 한계가 있어서, 무조건 사람을 새로 뽑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우리 과는 매번 누가 나가면 꼭 누군가를 뽑아야 했다. 나가는 사람이 일찍 일찍 말해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ㅋㅋ 그러니 당장 다음 학기 수업이 열려야 하는데 급하게 공석이 생기고, 그 공석을 급하게 채우려 할 때 교수의 배우자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배우자가 박사 정도는 있고 (과에 따라서 석사도 가능한 경우도 있음) 자격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우리 과에서 이런 일이 두 번이 있었다. 한 번은 아예 다른 과에서 어떤 교수를 데려오고 싶어 했는데, 그 배우자 되는 분이 우리 과에서 박사 전공을 받고 이미 다른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과에서 우리 과에게 너희 전임강사 (지지난 편 참조) 자리 없니? 물어보고 우리도 마침 누군가를 급히 구해야 했던 터라 바로 오케이 했다. 또 한 번은 갑자기 전임 강사 두 명이 그만두게 되는 바람에 정말 불똥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 과 교수 중 한 명의 배우자가 좀 떨어진 다른 학교에서 같은 전공으로 이미 전임강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과는 당장 그 배우자에게 여기 올 생각 없냐 해서 그 배우자를 고용했다.


그럼 만약에 배우자가 교수나 전임강사를 할 자격이 안 된다면? 예를 들어 석사가 없다거나 도저히 연구나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는 배우자라면? 이럴 경우에는 교직원 자리를 알아봐 준다. 이런 경우는 딱 한 번 봤는데 아마 계약직으로 줬었던 것 같다.





그럼 배우자 임금은?



나도 늘 궁금했던 점이 "그럼 그 배우자에게 줘야 할 임금은 어디서 충당되는 거지?"였다. 예를 들어 컴공과에서 A 교수를 임용하면서 그 배우자인 B를 위해 인류학과에 자리를 마련한다 치자. 그럼 인류학과에 취직된 배우자 B의 임금은 인류학과가 책임을 져야 하나?


우리 학교 기준이라 다른 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우연히 동료들과 이 얘기가 나와서 알게 됐다. 우리 학교의 경우, 컴공과에서 가장 많이 임금을 부담하고, 그다음이 학교 자체에서, 그리고 가장 적은 금액을 인류학과에서 부담한다고 한다. 헐 정말 신기했다. 하긴 인류학과는 갑자기 사람 뽑을 생각도 없었는데 자리를 하나 마련하는 것도 모자라서 돈도 줘야 하면 억울하겠죠. 그래서 A 교수를 뽑고 싶어 하는 과가 결국 배우자 B의 임금도 제일 많이 챙겨주게 되어 있고, 갑자기 B를 고용하게 된 학과는 임금 부담이 가장 적다. 이게 처음 몇 년만 이런 건지 아니면 기한 없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혈연이 그렇게 중요해?



이건 교수직과는 전혀 관련은 없는데, 박사 지원할 때 가끔 "이 학교를 나왔거나, 다니거나, 일하고 있는 가족이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때는 이걸 왜 묻는지도 몰랐고 도대체 알아서 뭐하게라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족 중 누군가가 이 학교와 연관이 있다면 더 수이 뽑아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한 명이 박사를 이미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배우자 (심지어 배우자가 아니라 남자/여자 친구여도)가 박사 지원을 해서 같은 학교로 오게 되는 경우를 매우매우매우 많이 봤다. 나 박사 할 때 아예 커플로 들어온 애들이 있었고, 한쪽이 박사를 오고 한 2-3년 뒤에 남자/여자 친구도 지원을 해서 같은 곳으로 오게 된 커플도 두 커플이나 있었다.


이런 걸 보면 미국은 딱히 공정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결국 가족이 있으면 자격 조건이 된다는 가정 하에 어쨌든 편의를 봐주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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