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아이디 짓는 법도 다르다.
우리 고양이 노엘이가 우리 집에 온 지 4년이 됐다. 작년 건강검진 때 노엘이 이빨을 스케일링받을 때가 왔다고 했다. 올해 큰 맘을 먹고 50-100만 원 정도 한다는 노엘이 스케일링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동물병원에서 일단 견적서를 보내준다고 이메일 주소를 달라고 했고, 내 이메일 주소를 불렀다. 그랬더니 수화기 너머 직원이 빵! 터지면서 이메일 정말 독특하다며 계속 웃었다. 기억하기 쉽다고 너무 재밌다고. 이 얘기를 듣고 나니 이메일 주소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내 이메일 주소는 어릴 때 읽었던 영어 동화책 제목이다. 아주아주 girly 한 동화책 제목이라 완전 핑크빛인 데다 발레 하는 내용도 들어간다. 예를 들자면 실제 내 이메일 주소 아님 밑에 사진에 보이는 동화책 제목은 Little Pink Ballerina인데, 이걸 이메일 주소로 가져다 쓴 것이다. littlepinkballerina@gmail.com 이렇게.
한국에선 대학교 때부터 이런 이메일을 줄곧 써왔고, 한국에서 내 친구들 이메일 주소도 다들 독특했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의미는 이름과 관련 없는 이메일 주소를 썼다는 뜻이다. 별명이 곰이었던 친구는 kuma어쩌구저쩌구@가 이메일 주소였고, 의태어를 이용한 이메일 주소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salgumsalgum@이메일 주소.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 이메일 주소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성이 김씨셨고 사과를 좋아해서 k-사과@가 이메일 주소였다. 내가 함부로 남의 이메일 주소를 공개할 순 없으니 k-사과라고 썼는데, 실제로는 "사과"는 제2외국어로 써 있다. 이렇게 워낙 다들 이메일 주소가 특이하다 보니 그 누구도 내 이메일 주소를 보고 감상평을 해준 적이 없다. 감상평을 기대한 적도 없고.
그러고 보니 정말 재미난 이메일 주소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다들 알겠지만 KBS 기자의 이메일들이 아주 창의적인데 가장 유명한 건 아마 박대기 기자 이메일이 아닐까 싶다. 이름이 대기니까 waiting이라고 이메일 주소를 붙였다. 그 옆은 이효용 기자인데 이메일 주소가 utility다ㅋㅋ 효용을 번역하면 utility니까. 아 너무 웃기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최선중 기자인데 이메일이 best-ing다.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는 뜻이겠죠? 아 정말 사람들 똑똑하고 재밌다.
또 재미난 이메일 주소가 있을까 싶어 검색을 해봤다. 보아하니 어떤 사장님 이메일 아이디가 anda (안다)인데, 그 회사 직원 중에서 아이디가 morunda (모른다)인 사람이 있단다. 너무 재밌지 않나요? 나는 유머감각이 없어서 이런 걸 생각해내지 못하는데 부럽.
근데 한국에서 쓰던 이메일 주소를 미국에서도 쓰게 되면 사람들이 엄청 특이하게 본다. 그 이유는 미국애들은 이메일 주소를 이름 베이스로 짓기 때문이다. 직장용이든 개인용이든.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그 어떤 미국인들도, 이름을 기반하지 않은 이메일을 쓰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직장에서 쓰는 이메일은 뭐 당연하고 개인적으로 쓰는 지메일이나 야후 메일 같은 것들도 전부다 이름 기반이다. 참 재미없죠?
우선 직장이나 프로페셔널하게 쓰는 이메일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름 베이스다. 내가 미국으로 박사를 왔을 때 학교 이메일 주소에 선택권도 없었다. 그냥 내 성을 기준으로 자기네가 알아서 이메일 아이디를 만들어줬다. 예를 들어 내 성이 박씨라면 park127@학교이름.edu 이런 식으로 아이디가 내 이름 베이스로 자동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있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수라서 그런지 아님 이 학교가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이 학교에선 선택권을 한 두세 개 주긴 했다. 예를 들어 내 이름이 박지선이라면 jpark 혹은 jspark 혹은 jipark 같은 선택지를 줬고 내가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그래 봐야 어쨌든 내 이름 베이스다.
직장이나 커리어에서 쓰는 이메일을 이름 베이스로 하는 건 한국에도 있긴 한데 국가기관이나 웬만한 기업 한정인 듯하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한국인 명함은 다 학교 아니면 국가기관 소속이라서 그랬는지 전부 이름 베이스였다. 근데 개인적인 사업, 예를 들면 쇼핑몰에서 뭘 문의할 때, 미용실 예약할 때, 피티 선생님이랑 일정 조율할 때 쓰는 이메일을 보면 꼭 이름 기반이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히 자기 직장 (쇼핑몰, 미용실, 체육관) 용으로 쓰는 이메일일 텐데 이름을 기반한 이메일을 쓰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개인적인 이메일도 본인 이름 베이스로 쓴다. 위 사진을 보면 왼쪽은 무슨 대학 교재 출판사에서 스팸처럼 오는 이메일인데, 스팸이 메일이더라도 보낸 이의 이메일이 본인 이름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내가 개인적으로 팔로우하는 블로거의 이메일 주소인데, 개인 블로거의 이메일도 본인 이름이다. 또 내 시댁 식구들의 이메일은 100% 이름 기반이다. 참고로 시댁의 친가 쪽은 12남맨가 그래서 다 모이면 100명이 훌쩍 넘는다. 그래서 이메일 리스트가 아예 따로 있는데, 그중 내 이메일만 이름 기반이 아니다. 나만 외국인이거든여. 외가 쪽은 사람이 적지만 역시 모두 이름 기반 이메일 아이디를 쓴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미국에서는 이메일 아이디 = 이름이 공식인 듯하다. 이것에 벗어나 보려고 생각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느끼냐면, 아까 동물병원과의 통화에서도 말했듯이, 이름 베이스가 아닌 내 이메일 주소를 말하면 10중 9는 "꺄 이렇게 창의적인 이메일 주소라니! 너무 재밌다~ 하긴 이메일을 꼭 이름으로 지을 필요는 없네?"라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이메일 주소는 딱히 창의적이지도 않음. 처음엔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나 싶었는데, 이제 내 한국식 이메일 아이디가 얼마나 특이한 건지를 알게 되고 나니, 누가 내 이메일 주소를 물으면 아예 내가 첨언을 한다. 이메일 주소를 부르고 나서 상대가 웃을 기미가 보이면 "I know it's weird"라거나 "I made it when I was little"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는 상담원에게 굳이 내 이메일 아이디를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라, 이름 베이스가 아닌 이메일이니까 상담원이 "이거 이메일 맞냐?"고 재차 확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볼 땐 너무나 특이한 이메일이니까 본인이 제대로 받아 적었는지 여러 번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첨언을 해서 "응 니가 들은 거 그게 내 이메일 주소 맞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난 내 개인 이메일 주소를 바꿀 생각이 없다. 이미 오랫동안 써왔을뿐더러, 미국인들 사이에선 매우 특이하니까 사람들이 정말 기억을 잘한다. 내 이름은 기억도 잘 못하면서. 그리고 어차피 직장용 이메일은 이름 기반이기 때문에 프로페셔널해야 할 땐 직장 이메일을 쓴다. 개인 이메일은 말 그대로 동물병원, 은행, 온라인 쇼핑 등에 쓰기 때문에 남들이 웃건 말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가끔 내 이메일이 스팸함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고 한다ㅠ-ㅠ 이름 기반이 아니라서 그런지 어떤 이메일 알고리즘에서는 내 이메일 주소가 스팸으로 분류되는 단점이 있다.
암튼 미국에서 직장용 혹은 프로페셔널한 이유로 이메일을 써야 한다면 무조건 이름 기반으로 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