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는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카카오뱅크와 페이, 그리고 토스가 금융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기존 금융그룹들을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금융플랫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아니 금융이라는 산업에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적절할까요? 대답은 “Yes and No”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특징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야 합니다.
먼저 플랫폼은 양면시장으로 이뤄집니다. 공급자와 수요자, 판매자와 구매자가 존재하고 플랫폼 사업자는 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모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가치 창출이 이뤄지지 않는 곳에는 플랫폼 비즈 모델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를 우린 다른 말로 시장에 Pain Point가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양면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무언가 아픈 곳이 있다는 뜻이고 플랫폼이 잘 들어 맞는 곳은 “정보의 비대칭” 혹은 “참여방식의 부재”와 같은 페인 포인트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지식이라는 영역에서의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한 플랫폼이 구글의 검색이고 미디어 영역에서 “참여방식의 부재”를 해결한 것이 페이스북입니다. 아마존과 같은 시장 플랫폼들은 두가지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습니다. 이들이 없었으면 우리는 현재의 지식검색, 미디어 참여, 그리고 당일배송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에 산업에 어딘가 많이 아픈 지점이 있어야 플랫폼의 역할이 생기고 사업이 성립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이라는 시장에서 공급자인 금융기관이나 수요자인 고객들은 큰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보라는 면에서 불균형도 커 보이지 않았고 국가의 감독이 필요하기에 쉽게 참여라는 것을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는 산업입니다. 물론 토스나 카뱅은 편리라는 면에서 기존 금융기관 대비 엄청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아픔이라기 보다는 불편함을 덜어준 서비스 개선으로 보는 것이 맞고 기존 금융기관들이 이 수준으로 따라가지 못한다면 역시 경쟁열위에 설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불편 개선을 플랫폼의 성립으로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금융이라는 영역은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성립되기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즉 토스나 카뱅은 금융 플랫폼이라기 보다는 진보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서비스 사업자로 정의하는 것이 맞습니다. 쏘카가 모빌리티 플랫폼이 아니라 진보된 렌터카 서비스 사업자인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즉 한국이라는 발전된 금융시장에서는 플랫폼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금융과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결합시키기 힘든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금융이라는 영역에서는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그냥 잊어버려도 되는 것일까요? 한국의 상황과는 다르게 플랫폼이 시장의 아픔을 해결하면서 성립된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금융서비스가 한국처럼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소비자금융은 아주 초보적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정치형태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경제의 성장대비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금융인프라는 상대적으로 늦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융기관과 금융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습니다. “정보의 비대칭”도 크고 “참여방식의 부재”도 존재합니다.
여기에 알리바바라는 전자상거래 기업이 나타나 두 시장의 연결점을 만들어 버립니다. 바로 타오바오라는 전자상거래 사이트와 와 알리페이라는 지불결제 수단입니다. 이 두가지 수단을 바탕으로 알리바바는 앤트 파이낸셜이라는 금융플랫폼을 만들어 버립니다. 앤트 파이낸셜은 이후 상장을 위해 앤트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앤트그룹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사업 라이선스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고 다양한 금융기업들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100개의 은행, 170개의 투자회사, 80개의 보험사를 공급자로 가지면서 이들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추천 판매합니다. 상장을 시도했던 2020년에 이미 대출은 한화로 355조, 투자상품은 694조, 보험은 9조원을 판매하였습니다. 알리페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지불결제기능을 바탕으로 전자상거래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영역에 이미 존재하기에 다양한 길목에서 금융상품의 니즈를 찾아내어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쉬운 예가 타오바오의 상거래 과정에서 상품 구매시의 한도부족을 대출로 연결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사용자가 여유자금이 있다 판단되면 적절한 투자상품을 제안하기도 하고 보험상품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즉 앤트그룹은 플랫폼의 기본요소인 양면시장을 지향하면서 시장이 가졌던 아픈 부분들을 채워내고 있는 것입니다. 앤트 그룹은 이 과정에서 보안과 추천, 그리고 신용평가라는 플랫폼의 기능을 개발했고 그 대가로 기술료를 받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우려와 관여로 앤트그룹의 상장이 좌절됐고 아직 그 미래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앤트그룹이 금융플랫폼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고 그 바탕에는 중국 금융산업의 문제점이 존재했습니다.
동일한 관점에서 한국에서 금융플랫폼을 주장하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유사하지만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카카오뱅크는 상장하면서 금융플랫폼을 강조합니다. 대출자산 기준으로 KB국민은행의 5%에 불과했던 카뱅은 상장시에 33조(KB국민은행은 22조)라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금융플랫폼이라는 다섯글자였습니다.
카카오뱅크의 상장 서류를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보입니다.
“동사는 은행업 고유의 예대사업 외에도 1,653만명(2021년 5월 말 기준)의 고객기반을 활용하여 파트너사와의 제휴를 통해 증권계좌개설, 연계대출, 신용카드 모집, 26주 적금 with 제휴사 등의 플랫폼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는 편의성 높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미래 성장동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증권계좌 개설이나 신용카드 모집, 연계 대출 등의 영역을 플랫폼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금융상품 간의 협업은 이미 금융지주사들이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입니다. 은행에서 보험을 팔기도, 증권계좌를 개설하기도 했고 신용카드를 대신 발급해주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카카오뱅크는 상장심사 서류에 이러한 사업들을 플랫폼 비즈니스로 적시했고 카카오뱅크는 이를 바탕으로 경이로운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카카오뱅크의 기업가치가 상장 시 가치의 반 아래로 내려앉은 이유는 카카오뱅크도 타 금융그룹과 다른 점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금융플랫폼에 가까울까요?
알리바바의 앤트 파이낸셜과 유사한 사례를 꼽는다면 카카오페이와 토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카카오페이는 송금, 페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다양한 금융상품을 중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상품의 중개라는 맥락에서는 플랫폼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카카오페이 홈페이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카카오페이가 판매 및 중개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업적인 용어로 보면 이는 카카오페이의 사업이 아닌 광고로 해석해야 합니다. 유일하게 대출이라는 영역에서는 다양한 금융기관들의 대출상품을 비교 제공하면서 금융플랫폼임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품 가격비교 사이트와 유사합니다. 고객들의 신용정보를 바탕으로 대출상품을 비교해주는 가격비교 서비스라 보는 것이 맞습니다. 대출 상품의 비교라는 서비스의 대가로 각기 다른 광고비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개방적인 거래 플랫폼이라 보기에 적절치 않습니다.
토스의 경우도 유사합니다. 토스는 먼저 송금으로 규모를 확보했습니다. 1800만이라는 사용자는 토스가 만들어 낸 아주 쉬운 송금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토스는 은행, 증권, 보험, 지불결제로 서비스를 확장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4대 금융지주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아니 4대금융지주의 디지털 버전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물론 제로에서 시작했기에 보다 개방적일 수 있고 보다 유연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기존 금융사들과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체 금융서비스를 갖고 있다는 것은 경쟁 금융서비스를 공정/공평하게 받아들일 수 없기에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대출상품 비교라는 맥락에서는 카카오페이와 동일합니다.
결국 한국에는 아직 금융플랫폼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적절한 기업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가장 큰 이유는 4대 금융지주사들은 물론이고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토스 모두 자체 상품을 가져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체 상품을 가지면 본질적으로 플랫폼의 길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그나마 금융플랫폼에 가장 가까웠던 기업은 카카오페이와 토스 정도 일 것입니다. 이들이 자체 금융상품을 만들지 않고 앤트그룹처럼 모든 금융상품을 추천 중개하는 역할에 집중했다면 아마도 금융플랫폼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업과 이론은 다르고 금융시장이 갖고 있는 규제라는 장벽을 고려할 때 순수한 의미에서의 금융플랫폼은 존재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금융이라는 영역이 만들어 내는 고급 데이터들은 상거래와 밀접하게 연관되기에 아마도 추후에 상거래 플랫폼들과 융합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중국의 알리바바 그룹이 상거래와 금융 플랫폼을 모두 가지면서 성장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금산분리라는 현재의 규제, 그리고 충분한 힘을 가진 상거래 플랫폼의 등장이 아마도 진정한 의미의 금융플랫폼 등장에 있어 사인 포스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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