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개방성에 대한 의문
플랫폼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기업이 있었다면 바로 넷플릭스였다.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플랫폼이라 칭했고 넷플릭스의 등장을 소재로 플랫폼 전쟁이라는 책도 출판되었다. 그래서 강의를 할 때마다 가능하면 넷플릭스는 플랫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넷플릭스가 플랫폼이라면 호텔 부페식당도 플랫폼이라는 비유를 들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이제는 넷플릭스를 플랫폼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도 분명 양면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플랫폼들과는 달리 완벽한 폐쇄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느 한쪽 시장이라도 닫혀져 있으면 서비스라 부른다. 플랫폼이 개방하지 않고 성립된 경우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를 플랫폼이라 정의한다면 어쩌면 거의 유일하게 완벽한 폐쇄적 플랫폼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사례로 어쩌면 유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업방식을 보면 넷플릭스는 분명 서비스이다. 모든 콘텐츠를 라이센스를 구입하거나 직접 제작하여 제공한다. 시청자는 구독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매달 일정액을 지불하고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제한된 콘텐츠를 감상한다. 넷플릭스의 허락없이 어느 쪽에서도 진입이 불가능한 완전히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양면시장을 지향하고는 있지만 호텔의 부페 식당처럼 운영자가 준비해서 제공하는 전형적인 서비스이다. 단지 이제 그 서비스가 2억명이라는 가입자를 확보했다는 점이 다르고 넷플릭스가 공급자 시장에 투자하는 금액이 매년 커지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물론 거기에 디즈니 플러스라는 넷플릭스와는 다른 성격의 유사한 진짜 서비스가 나왔다는 점도 무언가 개념의 변화를 요구한다. 즉 디즈니 플러스를 넷플릭스의 경쟁자라 이야기하지만 두 기업이 제공하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디즈니 플러스는 전통적인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즈니 그룹이 만들어 낸 콘텐츠만을 보여주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외부 콘텐츠를 구입해서 제공하는 흡사 유통업을 하는 넷플릭스와는 다른 일종의 브랜드 스토어이다. 즉 스트리밍이라는 시장에 과거에 없던 브랜드 스토어들이 만들어지고 나니 넷플릭스가 마치 아마존과 같은 유통사업자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를 워나브라더스가 HBO Max를 유니버설이 피코크를 출시했을 때 넷플릭스의 경쟁자의 출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모두 브랜드 스토어들이었다. 미국시장에서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에서 미국 가구의 평균 OTT가입숫자가 3.3개에 이른다는 사실을 보면 넷플릭스는 일종의 유통망이고 나머지는 브랜드 스토어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JD Power의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가구중 OTT를 하나도 가입하지 않은 가구가 없어 보인다. 평균이 3.3개이고 이들 중 네플릭스를 시청하는 가구는 81%에 달한다. 2등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비중이 65%인점을 감안하면 넷플릭스를 가입하지 않은 나머지 19%는 아마존 프라임 가입으로 프라임 비디오를 무료로 시청하는 가구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넷플릭스는 코로나 시대에 이미 거의 모든 미국 가구를 접수한 것으로 보인다. 즉 넷플릭스는 개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자 시장을 거의 장악한 것이다. 이는 높지 않은 가격과 계정공유와 같은 수단이 유료라는 실질적인 장벽을 많이 제거한 것이다.
수요자 시장에서의 준독점에 가까운 시장 장악은 결국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공급자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 교차네트워크 효과의 시작은 좋은 콘텐츠 제공에 있었지만 이제 충분히 큰 고객규모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수요자 시장의 크기는 공급자들 시장이 공고해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규모있는 이익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다. 2020년 기준 250억불이라는 매출과 45억불이라는 영업이익을 만들어냈다. 이는 2019년의 201억불, 26억불과 비교해볼 때 엄청난 수익성의 상승을 의미한다. 즉 가입자가 늘어남에 따라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기에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한 가입자의 증가는 영업이익의 73% 상승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과거 10년간 영업이익을 창출해 온 기업이다. 하지만 스트리밍이라는 현재의 비즈모델을 통해 영업현금을 창출해낸 것은 2020년이 거의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지속적인 콘텐츠 투자로 인해 현금이 부족했고 은행차입을 늘려왔어야 했다. 그림을 보면 Cash from Operation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지속적으로 커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장을 하면서 현금을 창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현금적자 폭을 키워왔던 것이다. 심지어 2020년도 투자가 적절히 이뤄지지 못했기에 현금 흑자 전환이 가능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림에서 Other Operating Activities는 콘텐츠 투자를 의미한다. 이 숫자는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2020년에 와서 그 추세가 내려앉았다. 콘텐츠 제작도 어려웠던 코로나라는 상황은 가입자는 늘지만 콘텐츠 제작과 소싱을 위한 비용은 감소하는 최고의 상황을 넷플릭스에게 제공한 것이다.
여기서 초점은 넷플릭스가 공급자 시장에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왔다는 사실이다. 콘텐츠 투자라는 관점에서 역시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기업은 디즈니이다. 하지만 디즈니는 아주 넓은 사업영역을 갖고 있다. 2021년 발표기준으로 디즈니는 2014년까지 디즈니 플러스에 매년 80~90억불을 투자할 예정이다. 디즈니의 총 투자액은 300억불이 좀 넘지만 이 모든 것이 디즈니 플러스에 투자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넷플릭스는 2021년 190억불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이미 스트리밍이라는 시장에서 디즈니를 압도하는 큰 손이 된 것이다. 즉 스트리밍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큰 투자 금액이 시장에 투입되는가에 있다. 넷플릭스가 발표하는 투자 계획은 공급자들에게는 시장을 개방하는 개념과 같다.
즉 우리가 관심을 두고 봐야할 것은 과연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시장에서 공급자들로부터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즉 개방이 아닌 방식으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가의 답변에 넷플릭스는 그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생각해보면 넷플릭스의 시장은 다른 플랫폼들이 성립된 시장과는 조금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첫째,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고품질 영상제작자, 즉 공급자들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거의 모든 공급자를 장악한다면 실질적인 공급독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과거 디즈니(혹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Fox, Sony)와 같은 제작사의 역량은 좋은 기획안을 선별하여 투자하는 역할이었지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비중은 높지 않았다. 즉 콘텐츠 제작자라는 공급자들은 막대한 투자비와 극장 배급비용을 디즈니와 같은 제작사에 의존했기에 현재의 디즈니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 지위를 넷플릭스가 어느새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이미 넷플릭스는 콘텐츠 시장의 리더들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자금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이 커지고 가입자수가 늘면서 넷플릭스의 손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배급망이라는 극장이나 방송국의 역할이 이제는 스트리밍으로 급격히 넘어가고 있다. 코로나 팬더믹의 영향도 있지만 이제는 콘텐츠를 다양한 디바이스에서On-Demand로 보는 것이 일반화됨에 따라 기존에 존재했던 배급이라는 개념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 공급자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관 상영을 통해 추가로 얻어지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현재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배급망이자 제작비를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인 것이다.
역사상 Box Office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얻은 마블 스튜디오의 “Avenger Ultimate Game” 은 개봉 후 2달동안 9,500만명이라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우리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최고의 콘텐츠이고 9,500만명이라는 숫자는 아마도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Extraction” 이라는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한달동안 9,000만명에 시청했다. 두 달 동안 몇 명이나 시청했는지 자료는 없지만 “Avenger Ultimate Game”의 9,500만명을 추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두 개 영화를 제작비, 완성도, 그리고 수입면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단지 영화를 만든 공급자 입장에서 보면 넷플릭스가 훨씬 더 매력적인 파트너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좋은 스토리를 갖고 있고 좋은 제작기획 역량을 갖고 있다면 가장 먼저 만나볼 대상이 넷플릭스라는 의미다. 그만큼 공급자에게 2억명이라는 소비자 규모는 매력적이기에 그들이 넷플릭스를 먼저 선택한다면 플랫폼의 교차 네트워크 효과와 유사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비록 넷플릭스가 개방된 플랫폼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지만 가입자 규모가 계속해서 성장한다면 수많은 콘텐츠 공급자들이 넷플릭스를 콘텐츠 제공의 최우선 대상으로 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2021년에 한국에 5억불의 콘텐츠 투자를 발표했다. 한국은 이미 4백만이라는 충분히 큰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시장인 동시에 한국의 콘텐츠들은 글로벌에서도 이미 충분히 통한다는 결론을 #살아있다, 킹덤 등으로 검증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드라마 제작 시장의 크기는 연간 4000천억 정도이다. 여기에 넷플릭스는 55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물론 5500억이 승리호처럼 영화 콘텐츠의 소싱에도 사용될 것이기 이 두개의 숫자를 직접비교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모든 영화사, 드라마 제작사들은 더 이상 KBS와 같은 공중파 방송사나 CJ와 롯데와 같은 영화투자배급사보다 넷플릭스에 먼저 자신의 기획안을 제시할 것이다. 이미 “기생충”을 통해 한국 콘텐츠의 목표는 한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디즈니가 느꼈을 넷플릭스에 대한 공포는 아마도 지금 한국 시장에서 CJ나 롯데 그리고 방송사들이 느끼고 있는 그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바로 넷플릭스가 계속 성장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이러한 힘의 집중이 주는 공포이다. 알고 보면 디즈니도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하던 공급자였기 때문이다. 마블, 픽사, 스타워즈, 심슨가족 등을 가진 콘텐츠 업계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디즈니로서는 넷플릭스라는 유통사업자로 힘이 집중되는 현상을 그냥 방관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넷플릭스라는 서비스는 이미 2억명의 시청자를 갖고 있고 Netflix 오리지널로 이름 붙여진 콘텐츠들의 한달 내 소비율은 거의 50%에 달하고 있다. 즉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1억이 넘는 숫자의 시청자가 지체없이 감상을 하는 시장이다. 이 감상은 수많은 리뷰를 낳고 이슈를 만든다. 비록 픽사, 마블, 스타워즈에 견주어 콘텐츠 제작자들의 브랜드는 떨어지지만 시장에 자주 노출되고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시청한다는 것은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다른 차원의 세상인 것이다. Queen’s Gambit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한 때 체스붐을 다시 일으키기도 했고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체스 공식에 대해 설명하는 유튜브가 존재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었다. 콘텐츠는 보다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 그 가치가 배가되는 또 다른 네트워크 효과를 갖고 있다. 넷플릭스는 그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SNS상의 파급력뿐만 아니라 에미상이나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 숫자를 살펴보아도 넷플릭스의 도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공식적인 수상이력에서도 콘텐츠 제작의 신입생이라 할 수 있는 넷플릭스가 모두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어워즈들이 갖는 평가의 소구점이 어디 있는가에 따라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넷플릭스가 HBO와 디즈니를 시장 평가에서 추월하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이긴 하다. 보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기에 보다 쉽게 알려지고 보다 많은 기회가 생긴다는 의미로 시장은 해석할 것이다. 콘텐츠 미디어라는 관점에서 디즈니가 올드 미디어의 친구라면 넷플릭스는 뉴미디어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콘텐츠 세상의 중심이 넷플릭스로 이동하는 것이다.
디즈니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아마도 이 힘의 이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크리에이티브가 이제 디즈니가 아닌 넷플릭스를 향한다는 사실과 이제 그 넷플릭스가 현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런 의미에서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