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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폼 교수 Jun 14. 2021

구독의 새로운 모습

구독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

구독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바뀌고 있다. 


2019년 말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다. 하나는 나이키(Nike)가 아마존(Amazon)과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직영망 중심의 유통망 개편을 발표한 것이고 또 하나는 디즈니(Disney)가 넷플릭스(Netflix)와 결별하고 자신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Disney+)를 출범시킨 것이다. 스포츠 패션업계 가장 가치로운 브랜드를 가진 나이키와 콘텐츠 시장의 대장 디즈니가 기존 유통망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이 두 기업의 2020년 말 실적보고서를 보면 “Direct to Consumer”라는 전략방향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두 기업 모두 기존의 간접 유통망을 통해 고객을 만나던 방식에서 직접 고객을 만나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보여주는 전략이 아닌 회사의 명운을 건 선택이었고 이 변화에 시장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이 시장의 환영을 바탕으로 두 기업 모두 2020년 한 해 동안 엄청난 기업가치 상승을 경험한다. 나이키는 2020년 동안 기업가치가 30% 이상 상승했고 디즈니는 20% 정도 상승했다. 애플,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동일 기간 거의 100% 가까이 상승한 것에 비하면 높지 않은 성장이지만 더 이상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제조업과 콘텐츠 사업에서 이런 성장은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대부분의 매출을 간접 유통망을 통해 만들었던 두 기업이 기존과는 180도 다른 직영망이라는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역설적이었다. 재무적 관점에서 보면 변화를 선택한 두 기업의 예상 재무 성적표는 분명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이들이 선택한 Direct to Consumer 전략 그 자체를 현명하다 판단한 것이고 그 판단의 기저에는 플랫폼이라는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시장운영 파트너라 치부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장 지배자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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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을 비롯한 상거래 플랫폼들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규모를 키웠고 상거래의 거의 모든 영역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엄청난 거래량은 엄청난 고객의 데이터를 의미했고 멀지 않은 미래에 플랫폼들이 고객을 장악할 것이라는 예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콘텐츠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 미국에서 넷플릭스의 가입자가 1억 명을 넘어서면서 케이블 가입해지는 가속화됐고 극장과 VOD라는 기존 유통망을 통한 매출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디즈니의 CEO 밥 아이거(Bob Iger)는 넷플릭스의 성장이 향후 디즈니와 같은 콘텐츠 사업자의 위치를 위협할 것이라 자백했고 과거 극장이라는 유통사업자와 유지했던 평화롭던 관계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Disney+)를 출시하면서 자신만의 고객을 갖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이키는 2년간의 아마존과의 협업을 포기하면서 이베이 출신의 존 도나휴를 CEO로 영입한다. 이는 나이키만의 고객과의 관계를 다시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전까지 기업의 보편적인 판매, 마케팅 방식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삼았다. 소비자는 내가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대상이었지 나와 무언가를 같이 하는 주체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시장은 유통망이라는 중간자를 탄생시켰다. 그냥 상품을 만들어 유통망에 던지면 그 이후는 잊으면 되는 그런 산업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기업이 소비자와 지속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꿈에 그리던 일이다. 이를 충성고객이라 하기도 하고 Lock-in이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이 관계가 지속된다면 그 관계를 나타내는 유일한 단어가 “구독”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신문과 잡지를 구독했고 우유를 구독했다. 그 구독의 선택은 상품과 기업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다. 나이키와 디즈니가 선택한 Direct to Consumer라는 전략은 그런 맥락에서 기업이 선택하는 구독 전략이다. 기업은 다시 고객과 직접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기업의 선택이라는 표현은 기존의 구독이라는 단어의 주체가 소비자였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구독 전략은 기업이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을 혹은 자신이 제조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독하게 만드는 전략이라는 뜻이다. 


구독 전략은 기업이 언제나 꿈꿔온 충성고객을 많이 갖게 되는 것과 결과는 동일하다. 그런데 지금 구독 전략을 다시금 이야기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시장의 새로운 지배자인 플랫폼의 등장으로 촉발된 고객의 소유권을 둘러싼 전쟁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의 고객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미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이 전쟁은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지배자와 플랫폼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급자라는 기업들 간의 전쟁이다. 아마존이라는 플랫폼과 아마존에서 상품을 판매했던 나이키라는 상품 공급자 간의 전쟁이고 넷플릭스와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했던 디즈니 간의 싸움이다. 플랫폼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단순히 플랫폼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것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알게 된 상품 공급자의 대장들이 선언한 독립전쟁이 바로 구독 전쟁이다. 과거 시장의 맹주이자 패자가 새로운 군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쟁의 목적은 고객이고 전쟁의 승패는 독립하기에 충분한 구독 고객을 가졌는가로 판단될 것이다. 나이키와 디즈니가 충분히 큰 구독 고객을 만들어 낸다면 독립이 성공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수많은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공급자 중의 하나로 다시 전락할 것이다. 


구독 전략에서 데이터의 의미

기업이 구독이라는 기존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목표를 추구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유통이라는 영역에서 플랫폼 기업들의 역할과 영향력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시장에서 고객 데이터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기술환경의 등장과 새로운 인류들이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고 빅데이터 분석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시장의 변화를 예측할 필요 없이 그저 고객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해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고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고객을 이미 장악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에게 종속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비 플랫폼 기업들, 즉 제조사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존에서는 거의 모든 브랜드의 운동화가 판매된다. 나이키의 경쟁자인 아디다스, Under Armor 등 거의 모든 브랜드를 아마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마존의 빅데이터팀은 현재 소비자들이 어떤 브랜드의 어떤 디자인의 운동화를 선호하는지 전수 분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나이키가 설문조사를 통해 이해하는 시장판단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미 많은 고객 데이터는 플랫폼에 의해 축적되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정보, 유통, 심지어 서비스를 이들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는 공급자들은 자신들의 고객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과거 콘텐츠가 왕이라는 세상이 이제는 플랫폼이 왕이 되는 세상으로 바뀌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고객의 데이터는 누가 뭐라 해도 미래의 자산이 될 것이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 될 것이고 이 정보가 생산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활용될 것이다. 제조사 중에서 아직 고객 정보를 활용하여 사업 전체를 바꿔내는 Digital Transformation에 성공한 기업은 많지 않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이미 Digital 기업이다. 굳이 Transformation을 할 이유가 없다. 데이터가 미래라면 미래는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 변화에 대항하면서 플랫폼의 지배에서 벗어나 고객과의 관계를 다시 만들려는 시도가 바로 구독 전략이다. 내가 고객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하고 관계 맺고 거래하는 방식으로 사업방식을 바꿔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구독이라는 단어를 정기구매와 같이 한정된 의미로 사용하면 안 된다. 이제는 구독의 개념을 좀 더 확대해서 Direct to Consumer 전략 즉 고객과의 관계를 다시 만드는 전략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플랫폼 기업과 싸우는 방법, 구독

다수의 고객이 모이면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그 네트워크는 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한다. 그 네트워크의 가치는 고객과의 직접적, 반복적, 복합적 거래(Transaction)를 통해서 급격히 증가한다. 직접적이라는 의미는 고객과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반복적이라는 뜻은 이 커뮤니케이션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복합적이라는 의미는 커뮤니케이션의 재료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장 고품질의 네트워크가 나타나는 곳은 플랫폼이고 그래서 우리는 플랫폼의 미래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플랫폼이 아니라면 이와 유사한 고객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검색을 하는 구글이나 SNS 미디어를 하는 페이스북, 그리고 상거래를 하는 아마존, 모바일을 장악하고 있는 애플과 구글 등은 모두 고객과 직접적, 반복적, 복합적 관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정보와 데이터는 꾸준히 축적되고 있고 이 과정을 통해서 축적된 데이터의 품질은 단일한 상품을 가진 제조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래에 플랫폼과 비 플랫폼 기업 간의 데이터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이다. 이 점이 플랫폼과의 경쟁을 생각할 때 가장 무서운 점이다. 특히 플랫폼에 대항한 규모의 경쟁은 옳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에 굴복했을 때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고 싸움을 해야만 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고객 네트워크의 품질을 올리는 길이다. 즉 집중만이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다.

 

플랫폼은 명백한 단점을 갖고 있다. 플랫폼이 추구하는 것은 규모라는 사실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거의 전 인류를 상대하고 있고 중국을 제외하면 아마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독점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이라고 하지만 하나하나의 고객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들이 아마존 프라임 같은 구독 전략을 선택하는 것도 자신이 집중하고 싶은 고객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더욱이 플랫폼은 아주 넓은 영역을 자신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아마존은 모든 것을 파는 플랫폼이지 스포츠용품만을 곳이 아니다. 대형몰이 전문몰의 전문성을 따라오기는 힘들다. 즉 브랜드의 구독 전략은 깊이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독 전략 추구하는 세 가지 원칙은 기억해야 한다. 직접적, 반복적, 복합적 거래(Transaction)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조사들도 이제는 고객들과 직접적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단지 내가 갖고 있는 상품의 특징을 감안해서 반복적이라는 단어는 “관계 맺음”으로 바뀌어야 하고 복합적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방식의 깊은 접촉”으로 바뀌어야 한다. 상품이 단일하기에 고객과 만나는 접촉면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단점이기는 하지만 장점일 수 있다. 포탈에서 그냥 아무 기사나 읽고 받아들이는 뉴스 소비자도 있지만 뉴욕타임스에서 유료로 기사를 읽는 고객도 존재한다. 그리고 나이키를 디즈니를 사랑하는 고객이 존재한다. 


제조사가 플랫폼 대비 가지는 유일한 장점은 고품질의 상품이고 그 품질을 인정하는 고객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가 보여주고 나이키가 디즈니가 선택한 전략을 우리는 구독 전략이라 이해한다. 고객과 직접 만나고, 관계를 맺고, 자주 만나는 것이 바로 새로운 구독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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