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LOVESTAGE Jan 18. 2022

(연재2)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2. 엄마도 처음만난 며느리

SCENE TWO- 엄마도 처음 만난 며느리


에일린의 집 밖. 


2배속 움직임조금 전까지 카페에서 노래하던 배우()중 한 명쓰고 있던 비니를 벗고 무대 앞으로 나온다에일린의 집 앞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노래를 끝낸 그녀는 등장 인물중 하나인 이화 ’(막내아들 크리스의 아내)가 된다.  배우들이 불쑥 다음 장면의 연기로 이어지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냥 드러나도 된다한 손엔 장미 꽃다발 하나 들려 있다집 번호를 확인하고 립스틱을 바른다. 


옷 매무새를 고치고 현관 앞으로 다가가 벨을 누른다.


딩동 ~


이화                  어머님? 저에요. 


에일린               밖에 누가 왔니? 


에일린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막내 크리스니? 다렌이야? 


이화                  

어머님? 아니요, 크리스 아내 이화에요. 


에일린이 문을 열어주고 이화 들어온다.


어머님. 메리 크리스마스~ 


이화는 에일린을 가볍게 껴안는다. 


에일린               

아, 세상에 누가 온거야? 니가 이..


이화                  

네.. 이화에요. 


에일린               

어서와. 메리 크리스마스. 반갑구나. 이화?..


이화                  

네 크리스 와이프. 


에일린               

아, 그렇지?  크리스… 예쁘구나. 만나서 반갑다. 미안하구나 너희들 결혼식에도 가지 못하고… 그 동안  잘 살고 있던 거야? 처음 오는데 집 찾는 데는 어렵지 않았구? 영국엔 처음 온거지, 그치?


이화                  

네. 근데 그이가 잘 알려줘서 집을 찾아오는덴 어렵진 않았어요. 어머니, 여기 꽃! 장미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이화는 어머니 집  바닥에 마치 팽개쳐진 듯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고…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웃는다.


에일린               

오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언제 또 이런 거 까지 신경썼어? 고맙다. 어제 잘 도착은 한 거야? 잠은 편히 잤구?   


이화                  

네. 오래전부터 예약한 비행기라 힘들지 않게 왔어요. 호텔에 짐 풀어놓고 어젯밤은 정말 모르고 잔 것 같아요. 


에일린               

다행이구나, 음… 그런데 크리스는.. 어디에 있니? 같이 안온 거야? 


이화                  

아, 그이는 곧 도착 할꺼에요. 조금 피곤했는지 준비가 늦어서 제가 먼저 어머님 뵈러 나온거에요. 


에일린               

그래, 전날까지 회사일 하구선 바로 장시간 비행기 타면 피곤할꺼야. 저녁 먹기 전까지만 오면 되지 뭐. 안 그래?


집안에 조금 나쁜 냄새가 나는 듯..


이화                  

네, 그쵸. …. 그런데 어머님, 집에서 냄새가… 이건… 무슨 냄새에요?


에일린               

냄새라니? 오븐에 크리스마스 터키 들어간 거 외엔 뭐 많이 준비 한 것도 없어요 


이화                  

아~ 그래요? .. 아, 그나저나 제가 제일 먼저 도착한 거에요? 다른 사람들은요?


에일린               

어..헬렌은.. 급하다고 먼저 와서 인사하고 갔구, 다렌은  곧 도착할꺼야. 


이화                  

아, 그래요? 그럼 윌리엄, 케이티는요? 지금쯤이면 도착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에일린               

아이들 결혼 준비로 좀 바쁜가봐.


이화                  

무슨 결혼 준비를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해요? 


에일린               

너두 해봐서 알겠지만 부모들이 신경 써야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야. 


양손에 들고있는 다른 꾸러미들을 보고 에일린은 얼른 화제를 바꾼다. 


그런데 뭘 이렇게 또 사온 거니? 


이화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간단하게 과일 좀 사왔어요. 이건 이따 식사하고 함께 먹으려구요. 지금 좀 풀어서 씻구 냉장고에 넣어둘까요 어머니?


에일린               

그래, 크리스 오기 전에 같이 하자.


이화                  

아니에요. 그냥 여기 앉아 계세요. 어머님. 저 혼자 해도 돼요. 아.. 그리고  허리는 좀  어떠세요? 


사이.


크리스에게 들었어요. 많이 좋아지셨어요? 


이화가 엄마를 소파에 앉힌다.


에일린               

고맙구나. 지금은 좀 괜찮아. 하루는 좋았다 그 다음날엔 아프고… 뭐 나이 들면 다 이렇지 뭐. 


이화                  

그래도 요즘같이 추운 겨울엔  더 조심 하셔야죠. 과일 씻는 동안 조금만 앉아서 쉬고 계세요. 어머님. 


이화가 주방으로 향하기 전에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테이블에 말없이 올려둔다. 엄마는 이화가 사온 장미 다발을 화병에 꽂으며 남편의 사진을 꺼내 다시 말을 이어간다.


에일린               

여보 봤어? 작은 아들 새 며느리가 나 힘들 까봐 그냥 앉아 있으래잖아. 아냐, 아냐, 하하..아니, 뭐.. 그렇단 얘기지.


주방으로 간 이화가 사과와 딸기를 씻는다. 거실에서 이상한 말소리가 들리자 잠깐 나와본다. 


이화                  

어머님, 아무도 없다더니 누구랑 얘기하시는 거에요? 어머님…. 혹시….. 


사이. 


이화는 에일린은 잠시 쳐다본다. 


알츠… 하이머? 


에일린               

아니야, 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이화                  

그럼….. 왜 손에다 말을 걸어요?


에일린               

나이 들면 가끔 이런 짓을 하게 돼. 쓰레기 분리 수거해가는 날짜에 몹시 열광해 가는것 처럼. (놓치면 안되는 일인 양 분리수거통을 꼭 집 앞에 내어놓고 기뻐하는 영국 노인들의 모습을 비유)


객석을 보며


주차 끝나고 자동차 오디오 볼륨 줄이는 것처럼. 


사이. 


객석을 보며

여기 니들도 다 그러지? 무슨말인지도 몰라? 차가 없어? ..(시동 끄면 자동으로 꺼지는데.. 영국 노인들은 꼭 볼륨을 꼭 줄인다.) 시동 끄면 오디오 자동으로 꺼지잖아. 


이화 의심의 눈초리로 


이화                  

어머님, 이상한거 아니죠? …. 절 한 번 보세요….. 제가 … 누구에요? 


에일린은 이화를 쳐다본다. 


에일린               

… 아마…엄…?


이화                  

아마엄?


에일린               

..아마……엄마?


이화가 에일린을 쳐다본다. … 에일린이 참지못하고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자..


이화                  

음~~~.. .네!, 멀쩡하시네요!


이화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고 사과를 바구니에 담아 냉장고에 넣으려 냉장고를 열어본다.


이화                  

어머님, 냉장고가… 어머!.  여기 냉장고가 텅 비어 있어요.  어머님, 식사는 어떻게 하고 지내시길래 냉장고가 이래요?... 어? 아니, 이게 뭐야? 


이화 파스타 소스병을 들고 유통기한을 확인하고는…


이거 이미 유통기한이 3개월도 더 지난 파스타 소스가 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 냉장고 정리 한번 해야겠는데요, 어머니?


에일린               

아, 그건 열지도 않은거라 괜찮을꺼야. 공기도 닿지 않았을 텐데 뭐.


이화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님. 크리스가 날짜 지난거 먹지 말라고 얼마나 얘기를 했었을텐데… 이런 거 아깝다고 매번 드시니까, 자꾸 아프고 그런 거 아니에요. 제발 오래 지난 건 좀 버리라고 말씀을 드리는데도…  참…나.  이런게 한 둘이 아니네. 죄다…이 우유도..    


우유는 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아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모두 꺼내 확인하면서 쓰레기 봉투를 찾아서 별도로 담아서 싼다.


에일린               

그게 .. 나도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이제 작은 글씨는 잘 확인이 안되는구나.



이화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거실로 나온다. 


이화                  

안되겠어요. 크리스에게 얘기를 해야겠어요.    


이화가 어머님의 슬리퍼 뒤로 드러난 구멍 난 양말을 쳐다본다.


에일린               

아니, 크리스에겐 왜 또? 


이화                  

아니 어쩜.., 어머님 요즘 구멍 난 양말을 신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 이건.. 우리 친구 부모님도 이러시던데..  얼마전 그분들 돌아가시고 유품 정리하다 보니.. 아니, 부모님들은 왜 그렇게 구멍 난 양말들을 꿰메신는지..  옷장 정리하다 보니까 새 양말 많던데, 오래전 자식들이 선물해드린 포장 뜯지도    않은 옷들이 무더기로 나오더라구요. 


마침 크리스로부터 전화가 온다. 


경쾌한 전화 벨 소리. 


이화 받는다.


여보세요?  응 여보. 오고 있어요? 어. 다왔으면 요 앞에 잠깐 마트에 들려서 어머님 좋아하는 토마토 파스타 소스하고 우유 같은 거 좀 사와. 냉장고에 남아있는게 죄다 유통기한이 지난거밖에 없네. 와인도 두 병 정도 사오구. 우리 식사하고 마시게. 아이, 괜찮아. 오늘은 크리스마스 디너인데 뭐. 그리고 와서 어머님 좀 혼내주고. 새로운 막내 며느리 말은 잘 안듣는거 같아. 


에일린               

하하.. 그만해. 알았다니까.  제발. 


이화                  

그리구 저녁식사 준비 거의 다 되어가니까 빨리와요. 


전화를 끊고 어머니 옆에 앉아 계속 말을 이어간다.


이화                  

어머님, 절약하시는 거 알겠는데요, 이제부턴 새 물건들이나 옷들 아까워하지 말고 충분히 사용하세요.  …..요즘엔 오래되면 새것이라도 남들 줘도 안써요. 그러니까 가진 거 아깝다거나 특별한 날에 써야지 하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시는 거에요. 이제부터 어머님에게 매일 매일이 특별한 날이에요.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그리고 쓰다가 부족한 거 있으시면 헬렌이나 윌리엄에게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에일린은 이화의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부분에서 기분이 좋지 않지만 곧 무시한다. 


에일린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늙은이들은 없을 때부터 살아서 그런지 그게 잘 안되는구나. 


이화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하시면 되죠. 그리고 혹시 몸 아프신 곳이라도 있으면 숨기지 마시고 모두에게 알리구요. 


에일린               

하하..이제 많이 늙어서… 곧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이화                  

아이 어머님~  이러시면 안되죠.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약은 저렇게 많이 챙겨 드시면서... 저기 테이블 위에 영양제랑 각종 약병들 다 봤어요. 옛부터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3대 거짓말 있아시죠? 장사꾼 밑지고 판다는 말,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그리고 노인들이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 이젠 젊은 우리도 다 알아요. 


에일린   

난 아니다. 우린 시간적인 면에서 자연이 준 의무를 거의 다 한거야. 그러니까 자연에 있는 모든 메카니즘은 젊은 사람들에게 다 모아준거구.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나이가 들 이유가 없지 않니? 젊기만 하다가 죽고 싶을텐데 말야. 세상은 노인들에게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난 그렇게 오래 살고 싶진 않아. 그리고 너무 건강해도 늙으면 아이들에게 짐도 되니까…


이화                  

자녀들 때문에, 그리고 자식을 위해 매번 양보하고 살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어머님만을 위해 사시면 되죠. 


에일린               

감사하게도 아직은 혼자 밥 먹고 화장실 다니고 일상적인 신변처리가 가능해 혼자 살아도 문제가 없겠지만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느끼면 그때부터 짐이 되는 거야. 이런 감정은 너두 나이들어보면 알아. 나이든 세대가 기능을 완수한 후부터 삶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구차한 거란다. 


이화                  

하하. 하긴 어머니 정말 옛날 같으면 벌써 무덤 속에 있을 나이라서 지금 가셔도 호상이에요. 


에일린 “옛날 같으면 벌써 무덤 속에 있을 나이” 라는 말에 기분이 또 나빠 이화를 쳐다보고 이화는 말을 실수 했는지 놀란다. 


아.. 어머님.. 아니,, 제 말 뜻은.. 이렇게 건강하신데 무슨 말씀이냐는… .. 


사이. 


… 죄송해요. 어머님. 


에일린               

아!  늦었다. 


에일린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이화를 쳐다본다…


이화      

…죄송해요..


에일린               

야. 너 혹시 경사진 도로위에 차를 잠시 세우고 소변을 보는데 세워둔 차의 사이드 브레이크 걸어 두는 걸 깜빡 잊었다면 차가 어떻게 되는지 아니?


이화                  

네? 어떻게 되는데요?


에일린   

내리막길로 달려가겠지. .. 니 인생도 지금부터 내리막길로 한 번 가볼래?


이화 갑자기 애교를 부린다. 


이화                  

.. 아이 어머니 죄송해요. 


에일린               

뭐 어째?  무덤에 있다고? 음.. 오래 살아서 미안하구나. ㅡ.ㅡ; 호상일 수 있었는데..


에일린 화가나서 밖으로 나가버리고 이화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이화는 아무일 없다는 듯 무대에서 벗어나 다시 악기와 마이크가 셋팅된 곳 앞에 선다. 비니를 쓴다. 무대 한 쪽에서 동료 배우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음악.


3장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연재1)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