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회사 전략팀의 비밀

[41~44개월] 모든 일엔 전략이 필요하다

by 하이히니

권팀장과 함께 일할 당시, 나는 전략팀이라는 곳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었다. 전략팀에서 일하고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그냥 회사생활 짬밥이 조금 쌓여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전략팀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몇 가지 알게 되었다.


(물론, 다른 회사 전략팀은 다를 수도 있지만...)


첫 번째, 전략팀에는 사실 전략이 없다. 또한 전략팀에서 진짜 전략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전략팀은 사장님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팀에 더 가깝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만약 우리 사장님이 회사가 나아갈 방향이나 사업에 대해서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있다면, 우린 그게 적합한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걸 적합하게 만드는 일을 했다. 사장님의 생각이 말이 되게 그에 대한 근거를 찾고, 그걸 제대로 된 전략이 되게 만드는 일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한 생각인 것 같아도 그건 전략이 되어야만 했다. 전략을 짜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의 생각을 전략으로 만드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두 번째, 전략팀은 사실 서포트 팀이었다. 그것도 회사 내 대부분의 팀의 일을 서포트 하는 팀. 처음 전략팀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내가 상상했던 전략팀은 이런 느낌이었다.

“김선임, 이번 해에는 우리 회사가 어떤 전략으로 사업을 해야 할까?”

“제가 사업 현황을 분석해봤을 때는 이런 식이고, 또 경쟁사에서는 이런 걸 하고 있고, 근데 시장의 흐름은 이렇게 흐르고 있고, 우리는 여기에 강점이 있으니까, 우린 이런 전략을 취해야 합니다!”

“김선임. 역시 대단해! 하하! 정말 전략팀에 있어야 할 인재라고!”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찡긋~하하하하하”


물론, 이건 과장되고 허황된 상상일 뿐이지만, 기획실에 있는 전략팀인데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사실상 거의 서포트 팀이었다. 실제 많은 일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김선임, 지금 5층 좀 다녀와.”

“저요? 왜요?”

“거기 지금 이번에 행사하는 것 때문에 회의한다네”

“아...그 행사...근데 저는 왜요?”

“거기서 걔네 사업 전략이랑 비전 선포한다고 하거든? 가서 우리팀 입장으로 회의 같이 하고, 같이 해야 될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리하고. 지원할 수 있는 건 같이 지원해.”


아무래도 뚜렷하게 전략팀이 하는 일이 없다보니 각종 회사 입장 발표, CSR, IR 비슷한 것, 국회 관련 외부 대응, 회사 내 각종 본부의 전략 수립 지원 같은 온갖 일을 짬뽕해서 해야했다.


세 번째, 이건 높은 확률로 이 회사의 전략팀만 가지고 있을 문제인 것 같은데, 권팀장은 전략팀 인력 지원을 본인이 편한 본부 위주로 더 적극적으로 해줬다. 뭔가 본인과 사이가 데면데면한 사람들이 많은 본부에서 하는 전략 수립에는 우리팀 인력을 지원해주거나 같이 회의를 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우리를, 특히 나와 반지 언니를, 그 팀에 전입시키는 수준으로 일을 지원시켰다.


암튼, 그런 전략팀의 비밀로 인해 나는 한동안 5층 본부에서 하는 회의에 밥먹듯이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김선임님, 그럼 저희 이번 행사 지원도 나오시는 거죠?”

“아니요. 행사 지원 계획은 없고, 행사 전까지 선포식 할 때 쓸 자료는 좀 다듬어서 다시 드릴게요.”

“어? 저희 팀장님이 말씀하시기로는, 권팀장님이 김선임님 행사 지원 간다고 했다던데...”

“그래요?”

“네. 행사 내내 같이 행사장에 계실 거라고 그러던데...”

“아...팀장이 보내면 가야죠 뭐...”


후...진짜 권팀장이랑은 친하게 지낼라야 지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당시, 권팀장이 꽁지머리 삭발식을 진행하기 전이었는데, 이 얘기를 듣고 또다시 그의 꽁지머리를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권팀장이 처음 이런 식의 행동을 했을 때는 나도 따져보기도 하고, 이런 식의 일은 싫다는 듯한 표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정말, 미리 협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 다른 팀과 회의를 잡아두고 통보하거나, 내 이름을 대면서 행사나 자료 작성을 지원해줄 거라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빌미로 본인은 또 나름대로의 이득을 취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나를 신물 나게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물론 이것보다 더 심한 상황은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어떻게 보면 난 그냥 단념한 상태로 행사장에 지원을 가기로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화나는 건, 이렇게 행사장에 보내 두면 거기서 노트북으로 계속 일하면서 집중도 못하고, 행사장은 행사장대로 바쁘고 그러는데...후)


그렇게 불만을 품고 그 5층 본부 행사를 지원하러 행사장에 갔다.

“허주임님, 뭐 지원할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지금은 저 컴퓨터로 뭐 좀 할 게 있어서...”


그나마 그 행사 실무 담당자 허주임은 일도 잘하고, 나름 나쁘지 않은 관계로 지내던 사람이었다.

“선임님, 그냥 편하게 일하고 계세요. 최대한 저희 팀에서 할게요!”


역시 허주임...! 난 가급적 외진 곳을 찾아 노트북을 펴고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김...현수 주임님? 김현수 주임님 맞죠?”


헐...여기서 이 사람을 만날 줄이야?


“김현수 주임님 맞죠?”

“헐...사무관님! 와...이거 몇 년 만이에요?”


혹시 최준모 사무관을 기억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최준모 사무관님 기억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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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주임님 맞네요!”

“와...대박...아 그리고 사무관님 저 승진했다구요. 이제 주임 아니라 선임이라구요. 선임이라고 불러주십쇼.”

“아...제가 또 선임님이 되신 분을 못 알아보고 주임님이라고 불렀네요. 아 정말...죄송합니다. 무릎 꿇을까요?”

“어떻게 미천한 을 앞에서 사무관님이 무릎을 꿇으시겠습니까...!”


지금 회상해보면, 사무관과 공공기관 직원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친근하고, 어떻게 보면 선을 넘은 느낌도 약간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불편한 느낌 없이 엄청 깔깔 웃으면서 계속 대화를 나눴다. 이게 사람이 첫 번째 만났던 거랑 두 번째 만나는 게 확실히 다른 게, 진짜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면서도 반가움이 증폭되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낄낄 거리는 소리를 들은 허주임은,

“사무관님이랑 선임님이랑 원래 같이 일하신 적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마도, 숨겨진 뜻은 ‘너네 왜 이렇게 친한데? 서로 드립까지 치네?’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허주임의 질문에 최사무관은,

“아, 지금 김선임님이랑 허주임님 같은 팀이세요? 저희는 예전에 행사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 맞다. 그때 우리 쪽에 자료 하나도 공유 안 해주셨었죠?”

“자료? 아...그...그 행사 자료? 왜요? 그거 가지고 권성배 주임이 뭐라 했어요?”

“그 정돈 아닌데, 그냥 김주임이 자료 공유 안 해준다고 몇 번이나 말했거든요.”


우리가 계속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자, 안 그래도 바쁜 허주임은 그냥 자리를 떴다. 안녕...


허주임은 떠났지만 우리 대화는 계속되었다. 너무 신기했으니까. 같이 일한 적도 없는데 건너 건너 행사장에서 몇 번 마주친 것도, 그리고 그 철천지 원수 같던 권성배랑 같이 식사를 한 것도. 그리고 몇 년 있다가 또다시 (내 입장에서는) 남의 행사장에서 만난 것도.


“선임님, 근데 왜 그 뒤로 자료도 안 주고 식사도 안 나오고 그러셨어요?”


자료는 안 준거 맞는데, 그 뒤로 식사도 안 나온 건 뭔 소리?


“식사요?”

“예. 제가 그 교육 다음에도 권성배 선임한테 얘기한 적 있었거든요. 비슷한 일 하는 사람들인데 같이 식사 자리 만들면 좋겠다고.”

“아 그래요? 올...사무관님 저와의 식사 자리가 꽤나 재밌었나 봐요ㅋㅋ”

“아ㅋㅋ진짜 이런 게 너무 웃기다니까요. 주변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고요 정말.”

“근데 전 그 뒤로 권성배 선임이랑 연락한 적이 없는데...”

“아 그래요? 약간 뉘앙스가 김현수 주임이 시간이 안 된다, 뭐 다른 일이 있다, 뭐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은데...”


아. 그랬겠지. 권성배는 내가 사무관님이랑 있는 거 엄청 불편했을 테니까. 몇 년 지나긴 했지만 갑자기 입이 근질거렸다.


“그분이랑 저랑 사이 안 좋아요. 같이 사적으로 밥 먹을 사이는 아니거든요.”

“그래요? 근데 혹시 선임님 오늘 여기 행사장에 왜 오신 거예요?”

“아...그냥 저희 팀 행사는 아닌데 지원할 게 있어서...”

“여기서 퇴근하세요?”

“예...아마?”

“그럼 저랑 저녁 드실래요?”


저녁? 뭐지 이 흐름은?

“저녁이요?”

“예. 둘이 뭐 그냥 간단하게...여기 근처에 먹을 데도 많고.”

“저 지금 법카 없는데...”

“제가 살게요. 법카 말고 개카로.”

“개인카드로요? 왜요?”


“선임님 나이가 몇 살이에요?"

"저 27인데요?"

"제가 선임님보다 더 나이 많으니까 사도 되죠 뭐.”


나이가 많아서 개카로 저녁을 사주겠다고...? 이건 무슨 전개일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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