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회사에 찾아온 찰나의 평화 주간_(1)

[41~44개월] 눈물을 흘리는 경우씨

by 하이히니

최준모 사무관과 식사를 하고 난 이후, 회사에는 찰나의 평화가 찾아왔다. 회사 차원에서는 평화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은 그 전보다 한결 편해졌다.


이 심경변화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최준모 사무관이었다. 아무래도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한 게 심리적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어찌저찌 최준모 사무관과 식사를 한 날, 우리는 명함이 아닌 진짜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편하게 카톡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명함을 교환하든 연락처를 교환하든 서로 핸드폰 번호를 알게 된다는 결과는 똑같았지만, 사실 명함 교환한 사이는 편하게 카톡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지 않는가?


“초등학교랑 대학교 같으면 처음과 끝이 같은 건데, 회사 다니면서 이런 사람 만나는 거 힘든 일이에요. 우리 가끔 연락해요.”

“그래요. 오늘 제가 흘린 눈물은 모두 잊어 주십쇼...!”

“선임님, 근데 저한테 말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나이도 얼마 차이 안나고...”

“사무관님...무슨 말씀이세요? 3살이면 우리 사이에 억겁의 세월이 있는 건데...우린 아예 다른 세대를 살아가고 있다고요.”


우린 식사 한 번 만에, 이런 헛소리를 나눠도 되는 사이가 되었다.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는 건 아니고, 그냥 예전보다 훨씬 친해졌다는 얘기다.) 일하는 몇 년 동안 사적으로 이 정도까지 친해진 사무관은 최사무관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불편한 감정이 들 법도 한데 불편하다기보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 설렜다.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런 얘기 하기는 좀 어색하긴 하지만, 처음 봤을 때에도 최사무관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최사무관은 목소리가 좀 낮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동굴에 있는 것처럼 낮고 음울한, 잘 안들리는 목소리는 아니고, 또렷한데 낮아서 뭔가 계속 듣게 되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키도 182cm였고, (햄버거 먹으면서 물어봤다.), 안경도 잘 어울리는 타입이었다. 우락부락한 몸은 아니었지만 뭔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살 것 같은 체형이었고, 인상 자체는 약간 차가운 편이었는데 실제 성격은 다정해서 그런지 그게 반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 최사무관과 나는 일로 직접적으로 엮인 적은 없었다. 업무를 하면서 서로의 민낯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그와 대화를 시작하면 티키타카가 되고 웃겼다. 난 남이 하는 말에 진심으로 잘 웃는 편은 아니어서, 날 웃게 해주는 사람이 좋았는데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 좋다고 하면, 다들 ‘이 사람 진짜 재밌어.’, ‘얘가 진짜 웃겨.’ 하면서 소개팅을 주선하기도 했다. 근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냥 목소리가 크고 뻘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거나, 자기 혼자 웃겨서 혼자 말하고 혼자 웃거나, 술 마시고 술 게임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그냥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잔잔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쓰니까 마치 나 혼자 최사무관과 결혼까지 생각한 느낌이 나서 부끄럽긴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 평화가 찾아온 첫 번째 이유는 최사무관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권팀장이었다. 권팀장과 그 잔당들은 그 주 월요일부터 한 동안 사무실에 오지 않을 예정이었다. 원래 팀장이랑 사이가 좋아도 팀장이 부재중이면 기분이 좋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팀장이랑 사이가 더럽게 안좋은 나 같은 경우, 팀장이 사무실에 없다는 건 천국과 같은 일이었다.


심지어, 권팀장 한 명이 아니라 나머지 두 명까지 없다니! 이건 리얼 천국! 사무실에는 나와 옥반지, 상혁씨, 원경씨만 있을 예정이었다. 이건 정말 날아갈 듯이 기쁜 소식이었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감사 대응을 위해 서울에 출장을 갔다. 일이 많은 건 변함없었지만, 그래도 일도 많은데 속까지 부대끼는 것 보다는 일만 많은 게 훨씬 나았다.


나와 옥반지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일요일 밤에 미리 만나서 월요일에 사무실에서 다 함께 먹을 디저트까지 구매했다. 월요일에 함께 출근하는 길에도 우리 기분은 최고조였다.


“언니, 이거 아침에 바로 먹을까?”

“굿...! 아침 먹었어?”

“아니, 이거 먹을라고 안 먹음ㅋ”

“굿...! 나도...와...당분간 그 자식들 얼굴 안 볼 생각 하니까 개좋다.”


그렇게, 아침부터 그 디저트를 먹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사무실에 도착하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우리가 사무실에 왔을 때, 원경씨와 상혁씨는 의자를 가까이 하고 핸드폰을 함께 보면서 뭔가 쑥덕거리고 있었다.

뭐지? 또 무슨 일이 있나? 방만수 연구원 사건 때에도 느꼈지만, 직장인이 불길한 분위기를 감지한 경우, 그 감지 센서가 제대로 작동한 것임이 증명되는 경우가 더 많았기에...저 쑥덕거림이 뭔가 무섭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선임님 안녕하세요!”


둘은 쑥덕거리다가 나와 언니를 보자 대화를 멈추고 활기찬 인사를 건넸다. 100%. 뭔가 일이 있는 거였다.

“둘이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주말 잘 쉬셨어요?”

“네...”


상혁씨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지만 100% 왠지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입방정 때문에 상혁씨가 내 전남자친구의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우린 꽤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아, 상혁씨~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뭐에요? 네?”

“아~ 아니에요. 확실한 게 아니라서...”

“아 뭔데요.”

“아...그게...”


'확실한 게 아니라서' 라는 말은, 무슨 일이 있긴 있다는 소리였다.

“상혁씨...전 전남자친구가 누군지도 깠는데...섭섭하네요...”


섭섭 공격에 어쩔 수 없이 상혁씨는 입을 열었다. 상혁씨가 뭔가 말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나와 옥반지 원경씨는 모두 상혁씨 자리 쪽으로 의자를 끌고 모여들었고, 나와 옥반지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사온 디저트 포장을 풀었다.


어떤 사건 때문에 이런 쑥덕거림이 생겼는지와 별개로, 그 순간 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래...이 맛에 회사 다니는거지! 가끔 동료들이랑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팀장 없을 때 같이 디저트도 먹고! 어?’


“잘 먹겠습니다...아, 근데 이거 진짜 아직 얘기하기 좀 그런 것 같긴 한데...”

“뭡니까...식빵까지 드렸는데...이거 잼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식빵이라고요...”

“아...그래...솔직히 전 선임님이랑 더 친하니까...뭐냐면... 경우형 회사 그만 둔대요.”


??

뭐라고? 누가 회사를 그만 둔다고? 경우씨가?


난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경우씨가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데 회사를 그만 둔단 말인가? 회사에 들어와서 권팀장의 온갖 수발을 들었고, 권팀장의 마음을 산 이후에는 그의 밀착 케어로 채용형 인턴까지 될 수 있었는데...


물론 채용형 인턴 중 일부가 정규직 전환이기 때문에 결과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굳이 왜 퇴사를 한 단 말인가? (그리고 채용형 인턴 이후에 전환이 되지 않으면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가 될 수 있는데, 왜 몇 달 남지도 않은 기간을 미리 퇴사한 단 말인가?)


“왜요? 여기 들어올려고 그 난리를 쳐놓고 왜...?”

“그 형 지금 팀에서 장난 아닌가봐요. 지난 주에 회사에서 울었거든요.”


네? 울었다고요? 그만둔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회사에서 울었다고?

나로선 정말 상상하기 힘들었다. 남자 어른의 눈물이라...

물론,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황정민을 닮은 우리 전팀장님께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워낙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불같은 사람이라 오히려 눈물이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황정민을 닮은 얼굴 덕분인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반면 경우씨는 평소에는 거의 감정 표현도 없었고,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경우씨가 회사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아이가 세 명이나 있는 사람이 회사에서 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왜요?”

“회사 일이 힘든 가봐요.”

“일이요? 지금까지 일 한 적도 없잖아요? 무슨 일이요?”

“지금 주선임님네 팀이잖아요. 거기서 엄청...”


경우씨가 그만 둔다는 것이 나에게는 희소식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이해는 되지 않았다. 약간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상혁씨는 핸드폰을 건냈다. 핸드폰 화면에 나와있는 상혁씨 동기 채팅방은 거의 경우씨의 독무대였다. (어느 기점으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데 혼자 계속 얘기하는 중이었다. 뭔가 분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아...저 진짜 지금까지 도움 준 분들 생각해서 끝까지 있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이렇게 악마 같은 사람 만날 줄은 몰랐네요ㅋ;’

‘솔직히, 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ㅋ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은데, 어쨌든 회사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거 였거든요ㅋ.’

‘근데 이 사람은 정말 제가 어떻게 해도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고 예민하고. 평생 이런 사람 처음 보네요ㅋ 앞으로 다들 주선임 조심하세요. 저는 이렇게 가겠지만.’

‘저는 이 사람이랑 한 시도 같이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 먼저 떠납니다. 저와 함께 해줬던 동기들 너무 감사하고...’


“상혁씨...이게 무슨 일인데요? 지난 주에 무슨 일 있었어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투비 컨티뉴...


참고로, 주선임은 누구인가? 성격 더러운데 일을 끝장나게 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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