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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히니 Jul 29. 2024

나는 90년대생 이장입니다.

(가위바위보로 선발되었지만)

 그렇게 가경주 경로당 옆 세미나 장소에 도착.


 미리 양해를 구하고 집결 시간보다 3시간 정도 늦게 온 탓에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리틀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스태프가 나눠준 세부일정표를 보면, 리틀포레스트를 본 이후에는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다른 참여자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 수 없기에 고개를 적극적으로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내 나이대 비슷한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장 내 시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분은 딱 봐도 우리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다른 분들의 나이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나와 같은 세대를 산 것으로 추정되는 분들은 한 분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래를 한 명도 발견하지 못하자 괜한 후회가 밀려왔다. 분명 참여 신청 대상이 청년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내가 잘못 봤었나 보다. 영화가 끝나면 누구랑 대화를 해야 할지도 참 막막했다. 회사에서 일할 때 어른들과 이야기할 기회는 꽤 많았지만, 이렇게 심각할 정도로 어른들'만' 있는 곳은...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내게 유일한 위안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별뽀빠이. 어릴 때도 이 과자를 먹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 과자가 이렇게 맛있는 과자인 줄은 몰랐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별뽀빠이에 '별'이 별로 없다는데, 리뉴얼이 된 것인지 별도 무척 많았다.


 별뽀빠이가 무척 맛있기는 했지만, 머리 한쪽에는 '그냥 오늘 하루만 자고 내일 간다고 할까? 그래도 일단 참여한다고 했는데 끝까지 하는 게 맞겠지?'라는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괜찮다면, 그때 이 세미나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첨부하고 싶은 심정이다.


 과연 이 분위기에서 이 프로그램이 잘 끝날 수나 있을까? (나중에 듣기로,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참여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스태프들도 뭔가 이 분위기에서 프로그램이 화기애애하게 잘 끝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다수의 대외 활동과 회사 워크샵 참여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이 영화가 끝난 후에는 조 편성이 이루어질 것이다. 조 편성이 이뤄지면, 5박 6일 동안 조별로 해야 하는 활동이 참 많을 것이고... 문제는 여기에서는 그 누구와도 조를 해도 적응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것?...


 예상대로 영화가 끝나자 랜덤으로 조를 편성하게 되었다. 마치 호그와트의 기숙사 편성 모자처럼, 어떤 모자(혹은 박스였나?)에 있는 작은 코인(?)을 뽑아서 같은 색인 사람들끼리 같은 조가 되는 시스템으로. 난 파란색을 뽑았다. 파란색을 뽑은 사람들은 세미나실 왼쪽 뒤편 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번뇌로 가득 찼다.




 우리 조원은 총 4명. 나 빼고 모두 남자였다. 한 분은 60년대생, 또 한 분은 70년대생, 나머지 한 분은 80년대생, 그리고 90년대에 태어난 나. 이렇게 4명이었다.


 난 우스개 소리로 "만약에 우리 조 이름을 만들어야 하면, 6789라고 하는 거 어때요? 60년부터 90년까지 모든 세대가... 다 모여 있어요!" 라고 말해봤지만 별다른 반응도 없었다.

 

 우리는 4명 중에 이장(사실은 조장)을 한 명 뽑아야 했고, 가위바위보를 진 대가로 내가 이장이 되었다. 이분들과 한 조라니. 내가 이들의 이장이라니...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내가 이장으로서 어떻게 분위기를 잘 꾸려갈지 그것도 걱정이었지만 더 걱정스러운 건 당장의 어색한 분위기였다.


 이럴 때 가장 무난한 대화 주제는 mbti 아닐까? 60년대 초에 태어난 우리 아빠와 엄마도 mbti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우리 조원들에게 mbti를 질문했다.


나 : "다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혹시 mbti 알고 계세요?"

60년생 조원님 : "mbti? 난 모르는데."

70년대생 조원님 : "저도 잘 몰라요. mbti요?"


 mbti를 알고 있는 건 나와 80년대생 조원 한 명뿐이었고, 내가 제시한 대화 주제는 절벽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내가 생각한 그나마 가장 무난한 주제는 침몰했다!


 이 와중에 다행인 것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나보다 어린 여자 참가자 한 명 있었다는 것이고, 그녀와 나는 룸메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룸메인 것을 보고 지나가던 어른들은 "MZ들끼리 같은 방 쓰네!" 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막상 알고 보니 그녀는 00년대에 태어나서 나와 나이가 거의 10살쯤은 차이 났다.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MZ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이기에는 내가 조금 미안할 정도로 어렸다.




 저녁을 먹은 후 룸메는 내게 노을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사실 내게 제안한 건 아니고, 그녀의 조원들이 노을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내게 같이 갈 것을 제안했다.) 덕분에 난 밥을 먹은 후에도 치킨을 뜯으며 노을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내가 경주의 이름을 따라한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했던 가경주. 그 가경주항에서 노을을 보며 치킨을 먹는 호사. 지금까지 넷플릭스를 보며 치킨을 뜯는 게 치킨 먹기의 정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정석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꼭 정석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는 내가 알던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 많다는 것.


 벌레가 조금 날아다녀도, 지는 노을에 눈이 살짝 부시기는 해도, 가끔 바람이 끈적하게 느껴져도,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 서서 치킨을 먹는 것도 참 좋았다. 꽤나 자주 누리고 싶은 호사였다.


 난 이 노을을 보면서 처음으로 5박 6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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