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면에서 5박 6일 어촌체험, 어케이션
만약 여행의 매력이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만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이번 여행은 잠정적으로 거의 100점짜리 여행일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 (그것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게) 20명쯤과 낯선 공간에서 어촌 체험이라. 정말 새로웠다.
어떻게 보면 수년 전 대학생일 때 처음으로 혼자 유럽을 여행했을 때보다, 혹시 총에 맞아 죽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지냈던 중남미 국가 어딘가에서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새로웠다.
지금까지 혼자 여행, 가족 여행, 연인과의 여행, 친구와의 여행, (출장 중에는) 회사 동료와의 여행, 대외 활동 때문에 하는 단체 여행 등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여행을 즐겨왔지만,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진 + 오늘 처음 본 사람과 한 방을 써야 하는 + 어촌에서 하는 여행은 정말 처음이니까.
처음이라는 것이 설레기도 하지만 불편함과 긴장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이 때는 이유 없이 다른 참가자들의 첫인상도 그저 그래 보였다. 뭔가 나랑 잘 안 맞을 것 같고, 누군가는 굉장히 예민하고 까다로워 보이기도 했다.
첫째 날 저녁은 보통의 첫 만남이 그러하듯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저는 얼마 전에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 다닌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 잠시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를 하고 해외여행을 가볼까? 고민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 제가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지내면서 국내 여행을 다닌 적이 거의 없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곳도 한 번 보고 싶고, 이 안에서 대안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의 자기소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자기소개는 누군가에게 꼭 잘 보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수주해야 하거나, 내가 이 자리에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를 알려줘야 하는 그런 것들. 별 두서없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를 해도 되는 그런 자기소개 참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니까 신기하게도 처음보다 그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50대의 나이에도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를 활발하게 운영하며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는 분들. 그분들은 어떻게 하면 릴스가 떡상할 수 있는지 의견도 나누셨는데, 나도 잘 안 하는 릴스까지 알고 계시는 게 새삼 존경스러웠다. 그냥 지방이 소멸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곳을 찾은 사람도 있었고, 은퇴 후 어촌 생활을 꿈꾸며 부부가 함께 이곳에 온 분도 계셨다.
나의 부모님과 연배가 비슷한 분들이 꽤 계셨기 때문인지, 그분들을 보면서 부모님 생각도 참 많이 했다. 우리 아빠도 은퇴했는데, 아빠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을까? 가끔은 무기력해 보이는데, 이런 프로그램에 오면 아빠도 뭔가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랑 비슷한 젊은이들과 늘 치열하게 일해왔던 탓에, 사실은 우리나라에 청년보다 훨씬 많은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이 어디 계셨는지 잘 모르고 살았다. 그분들이 내게 지나가면서 건네는 말에 위안을 얻기도 했다. "퇴사했다고 했죠? 쉴 때도 됐지. 푹 쉬다가 일하고 싶을 때 해요."
자기소개를 다 듣고 나니 어지러웠던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낯설긴 해도 5박 6일 동안 이분들이랑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어케이션 두 번째 날. 나는 평소의 나보다 한 세 시간쯤은 더 일찍 눈을 떴다.
스테이가경주 숙소에 암막 커튼이 없었던 탓에 해가 뜨면 눈도 떠지는 자연스러움을 몸소 체험했다. 평소에는 눈을 뜰 시간도 아닌, 눈을 뜨더라도 다시 바로 잠을 청할 새벽 6시. 그곳에서는 눈이 떠지고 몸도 쉬이 움직여졌다. (그 시간대에 부모님께 안부 카톡을 보내자 부모님은 은근히 감격한 눈치였다. 우리 딸이 이렇게 일찍 활동을 시작하다니!)
덕분에 꽤 오랜만에 새벽(혹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동네를 산책했다. 산책을 하며 깨달았다. 이 시간에는 이미 이 동네 어르신들의 대부분이 깨어 계신다는 것을 말이다. 고남면에 살고 계시는 분들은 어업과 농업에 모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무척 부지런해 보였다. 아무래도 이곳의 미덕은 부지런함이 아닐까.
두 번째 날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구제작 시간이었다. 평소에 어구나 어망 같은 것들을 가까이 본 적도 없는터라, 평소 손재주가 없는 내가 제작을 잘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기대도 되었다. 퇴사 후 오만하게도 난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어쨌든 머리 쓰면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는 일만 했는데, 몸 쓰고 부지런히 일하는 이런 일은 좀 편하지 않을까? 몸은 좀 힘들어도 정신이 얼마나 개운하겠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 했던 생각은 너무나 오만하고 단순한 생각이었다.
첫 번째로, 어촌에서 어업을 하는 것이 몸이 '좀' 힘든 일이 절대 아니었다. 잠깐 동안 어구 제작을 하는 일만 해도 허리면 무릎이며 보통 쑤셔대는 것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을 때쯤 허리를 제대로 못 피는 게 왜 그러는지 절실히 알겠다는 심정이었다. 이 젊은 나이에 잠깐 몇 시간도 이렇게 힘든데, 평생을 그렇게 사셨을 테니...
게다가 이 더위에 이렇게 뙤약볕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정말 고된 일이었다. 이걸 매번 반복하며 일하고 계신다니...
두 번째, 어획량이 줄어들거나 기후의 변동, 지방의 소멸 같은 일들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현지의 주민분들께서는 '그럴 수도 있다.'라고 하셨지만.
세 번째, 다 떠나서, 그냥 내가 손 쓰는 일을 하나도 못하는 똥손이라는 사실이 가장 심각했다. 어구를 만드는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리긴 했지만, 실상은 형편없었다.
뇌가 어떤 정보를 거부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설명을 들으면서 난 그런 느낌을 몇 번이나 받았다. 뭔가 뇌가 어구에 대한 지식을 거부하는 느낌이랄까.
그물통을 고치는 일은 더 심각했다. 기존에 사용하시던 그물통 (내 기억에 이 그물통은 게를 잡을 때 쓰신다고 한다.)에서 구멍이 뚫린 부분을 전용 실로 꿰매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 맘대로 하고 싶은데 내 그물통이 아니니까 맘대로 하지도 못하겠고, 매듭을 묶는 법은 전혀 외워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 이튿날 바다에 던진 그물통을 건져 올리면서 보니, 구멍이 난 것 같다고 내가 실로 묶어버린 곳은 물고기와 게가 들어와야 하는 구멍이었다. 선장님은 꽉 묶인 구멍을 보며 "이건 물고기가 들어와야 하는 입군데 이거 누가 이랬을까요? 이러면 물고기가 잡히고 싶어도 잡힐 수가 없겠죠?"라고 한 마디 하셨다.
다행히 느린 손 덕분에 내가 수정 작업한 그물통은 단 한 개뿐이었다. 이 와중에 손까지 빨랐으면 정말 큰 피해를 줄 뻔했는데 말이다.
이런 작업을 하다 보니 밥이 꿀맛이라는 게 뭔지 절실히 실감했다.
평소에는 머리 쓰다가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딸기라떼니 허니자몽블랙티니 긴급 투여해 버리는 탓에 오히려 밥맛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인 맛있는 것들만 찾았는데, 이곳에서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몸을 쓰는데 평소에 마시던 달달구리를 못 만나다 보니 평소에 내가 끌려하지 않는 메뉴도 한 그룻 한 사바리 뚝딱이었다. 밥을 많이 먹는데도 몸은 더 가벼워지는 신비 체험까지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곳에서는 배달의 민족 어플을 켜면 '텅' 이라는 단어를 볼 수 있다. 배달의 민족으로 시킬 수 있는 음식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나중에 혹시 내가 지치고 마음이 닫히는 날이 온다면, 다시 한번 이런 곳에 와보면 좋을 것 같았다.
투비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