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정규직 프로젝트_(1)

[34~36개월]경우씨는권팀장의아들인가?

by 하이히니

밖에서 보면 전략팀은 한 팀이었지만, 사실 안에서 보면 두 개의 집단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권팀장을 필두로, 권팀장의 비위를 맞춰주며 살고 있는 김지수 주임(사과녀)과 경우씨. 그리고 권팀장의 입맛에 맞는 행동을 하진 않지만 열심히 소처럼 일하는 하수석님, 나, 그리고 옥반지. 이렇게 두 개로.


박상호 주임이 퇴사한 후에 권팀장은 당장 인력 충원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아마도 인력 충원을 당장 하지 않는 이유는, 경우씨 때문인 것 같았다.


"팀장님, 근데 저희 박주임 나간 다음에 사람 안 뽑아요?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리자. 이게 잘하면 경우를 계약직을 시켜주거나, 아니면 아예 정규직으로 하는게..."


권팀장은 늘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과녀와 경우씨가 회사에 영원히 남기를 바랐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들이 일을 잘, 많이 해서 우리들이 좀 쭈글 해지길 원했다.) 그래서 무리수를 둬가며 사과녀를 무기계약직으로 만들었고, 그 과정 중에 우리와 갈등이 꽤 있었다. 거기에서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남은 건 경우씨였다.


심지어 경우씨는 정규직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 이유도 조금 웃기긴 하는데, 사과녀는 여자이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을 해도 사는데 지장 없고 괜찮지만, 남자인 경우씨는 정규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경우씨를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파견직이었던 그를 계약직 직원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를 시작한다.


때마침, 적절한 시기에 회사에 계약직 채용 공고가 떴는데, 지방 이전 때문인지 계약직 경쟁률이 1:1 아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사실상 큰 하자가 있는 것이 아니면 계약직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게다가 우리팀도 박상호 주임이 하던 일을 할 계약직이 필요했고, 이 자리를 경우씨가 차지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경우야, 경우 일로 와봐라.”

“(쏜살 같이) 넵!”


경우씨가 얼마나 세게 일어났는지,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벌렁 뒤집혔다.

“너, 혹시 우리 회사 계약직 채용 공고 봤나?”

“넵. 봤습니다.”

“이거 써.”

“네. 근데 제가 될 수 있을까요?”

"너 전공이 뭐였어?"

"저 전공 국어국문학과였습니다!"

"그래? 애매하네...그래도 상호 때문에 우리도 계약직 한 명 들어와야 되거든. 너가 될 수 있는 확률이 높단 말이야. 같은 팀이니까. 어쨌든 내가 다 도와줄 테니까, 일단 써. 지원서 넣은 다음에 다시 말해.”

“넵!”


저런 류의 대화는, 둘만 따로 했으면 좋겠는데 꼭 이런 얘기를 사무실에서 다 들리게 했다. 그런 대화를 들으면서 난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경우씨가 계약직 되면 우리 팀에 오는 건가?’

‘싫은데... 근데 이변이 없으면 되겠지...?’ 등등.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계약직 서류 발표가 있는 날. 팀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이경우! 이경우! 일로 와봐라!”


권팀장의 표정은 뭔가 어두웠다.

“넵!”


이번에도 얼마나 세게 일어났는지, 경우씨의 의자가 뒷사람 의자에 닿을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너, 너...너 이 경우. 도대체 계약직 지원할 때 어떻게 했냐?”

“네? 그냥 지원서 작성해서 넣었습니다.”

“너, 진짜, 진심이야?”

“네? 떨어졌습니까?”

“이렇게 항목별로 2~3줄 끄적거려서 내는 새끼가 어딨어? 어? 지원동기가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국어국문학과 나왔다는 새끼가...너 진짜...이게 자기소개냐?”

“그럼, 저는... 떨어진 겁니까?”

“붙었겠냐? 이 새끼야? 어? 기본은 해야 될 거 아니야! 상호 자리라서 이거 거의 다 된 건데!”


30대 후반이었지만 제대로 된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정말 자기소개서를 개판으로 썼던 경우씨는, 경쟁률이 1:1에 육박하는 계약직 채용에서 서류 탈락을 하게 된다. 경우씨가 내가 생각했던 수준보다도 수준 미달이라는 것이 놀라웠고, 그건 권팀장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근데 팀장님께서 일단 지원서 접수 한 다음에 다시 말해달라고...”

“야, 서류를 이렇게 해서 서류부터 탈락하면 내가 어떻게 뭘 하겠어? 어? 아니 필기시험도 없는 계약직이라 서류만 멀쩡하게 냈으면...아휴 진짜.”


풉...서류 탈락이라니.


나랑 옥반지의 채팅방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로 도배되었다. 사과녀가 부정한 방법으로 무기계약직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경우씨가 제대로 된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정의는 살아있구나! 그래도 우리나라 채용 절차가 온통 허점 투성이인 것은 아니구나!


한 개인의 슬픔에 ‘ㅋㅋ’를 쓴다는 것에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게 정의 아닌가! 그리고, 따지고 보면 진짜 위너는 경우씨였다. 일을 안해도 기*리랑 파*메라가 있는데...


그렇게 안심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의가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경우씨가 서류 합격자가 된 것이다.


<팀 채팅방>

권팀장: 어쨌든, 경우! 면접 준비는 확실히 하도록!

경우씨: 넵! 알겠습니다!


분명, 서류 불합격이었는데...? 그리고 몇 시간 뒤, 경우씨는 6시가 되자마자 가방을 싸서 사무실을 나섰다.


“팀장님, 저 면접 준비 때문에 오늘 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가 봐라.”


그러더니 권팀장은 경우씨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러더니,

“면접은 팀장급들만 온다더라. 내가 가면 좋은데, 그때 우리 봤던 강팀장이랑, 박팀장 알지? 그 사람들 스타일 대충 알어? 걔네들은 아마, 이번에 회사 기사 나온 거 봤어? 그런 쪽으로 말해야 좋을 거다. 그러면 백 퍼센트 붙는다.”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히 나는 이런 식으로 능력도 스펙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비공식적으로 밀어주는 모습을 굉장히 싫어했다. 물론, 경우씨가 지원한 것은 계약직이었지만, 어디엔가 계약직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나나, 옥반지가 이 상황을 싫어하는 것을 알 법도 한데, 꼭 이런 얘기들을 사무실에서 나눴다. 이런 식으로 면접 정보에 대한 대화를 굳이 사무실에서 우리에게 다 들리게 한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화나게 하고 엿 먹이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어쨌든 경우씨에게 면접 꿀팁을 전수해준 권팀장이 다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할 때, 내가 질문했다.

“팀장님, 근데 경우씨 아까 서류 탈락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분명 그렇게 들었는데.”

“아...아...그게 전산 오류였다는데?”

“전산오류요? 합격자 발표하는데 전산 오류가 있었다고요? 지금까지 그런 적 없었잖아요.. 대규모 지원하는 정규직에서도 그런 일이 안 생기는데...경우씨한테만 그런 일이 생겼다고요?”

“어...그랬다던데? 그래서 인사팀장이 막 여기에 와서 사과도 하고 그랬어.”

“신기하네요...”

“아무튼, 경우가 중요한 면접 앞두고 있으니까 다들 경우한테는 일 되도록 시키지 말고, 응원해주는 걸로.”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권팀장은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경우씨를 응원하라는 저 말에, 사과녀는 “네~그래야죠오! 헿.”이라며 화답했고, 옥반지는 “네. 어차피 지금도 아무 일도 안 시키는데, 지금처럼 계속 저희가 일 다 하면서 있을게요.” 라며 팩트 폭격을 가했다.


인사팀장과 권팀장은 친한 사이였다. 사실, 권팀장이 친하게 지내는 정말 거의 유일한 팀장이었다. 함께 군복무를 했다고 했나? 어쨌든 전우애와 동료애 등등으로 똘똘뭉친 그 둘의 사이로 미뤄봤을 때, 권팀장이 인사팀장에게 경우씨의 서류 합격을 사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짐작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냥 이 생각을 더 이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정말, 전산오류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수정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내 마음이 더 편했으니까.


잠정적으로 경우씨가 우리팀에 계약직으로 오게 되는 것이 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난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더 큰 반전이...

경우씨가 면접에서도 탈락하게 된다. 또다시 나와 옥반지의 채팅방은 ‘ㅋㅋㅋㅋ’로 도배되게 된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못할 수가 있지? 소문에 의하면, 경우씨는 우리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면접관의 질문 의도도 파악하지 못했고, 동문서답만 늘어놨단다. 그리고 얼마나 긴장을 많이 했는지, 본인의 전공이 국어국문학이라는 것도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국어...어...' 까지 얘기하고 더듬 거렸다고 한다. 지원자도 별로 없어서 가능하면 합격시켜주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팀장님...그럼 저희 팀에 오는 계약직 결정 된 거에요?"

"아니? 일단 안 받기로 했다. 얼마 있으면 채용형 인턴 공고 나오는데, 그때 인턴 1명을 받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경우가 확률이 더 있을 것 같아서."


우리팀은 경우씨가 합격할 때까지 인력 충원은...없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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