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정규직 프로젝트_(3)

[34~36개월]경우씨는권팀장의아들인가?

by 하이히니

“알아. 근데 지금은 경우가 역량이 안 되고, 지금 일을 워낙 좋아하니까...당분간은”

“경우씨가 하는 일이 없잖아요... 당연히 좋아하겠죠. 그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어쨌든, 여기서 업무 더 받을 순 없고 그 일 할 수 있는 인턴을 데리고 오시거나 아니면 경우씨를 교육시켜야죠.”


이 말을 듣고, 권팀장은 우리에게 강한 적대감을 표현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 같았다.


“진짜, 섭섭하네. 너희들은 팀원이 정규직 되는 게 이렇게 아니꼽나? 당연히 한 마음으로 기뻐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너희들이 누리고 있는 걸 뺏기는 기분이 드는 건가? 경우가 정규직 되니까 열등감 같은 게 생기는 건가? 애 셋이나 딸린 애가 이제 좀 제대로 살아보겠다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일할 기회도 없었던 경우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 건가?”


도대체 뭐가 불쌍한거지?

30대 후반까지 아무 일 안 해도 먹고 살 걱정 없었던 경우씨보다는, 24살에 입사해서 개고생하고 있는 내가 더 불쌍한 것 같은데...


이쯤 되니, 권팀장은 도대체 뭘 먹고 자랐길래 이런 상황에서 저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할 뿐이었다. (+또 한 번 그의 꽁지머리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경우씨가 정규직 되는 게 열등감 포인트가 되는 걸까? 우리나라에 총기 소지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내게 총이 있었다면 총이라도 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옥반지도 마찬가지였다.


“팀장님, 도대체 여기서 그런 말이 왜 나오는 건가요? 팀장님이 분명히 경우씨가 아직 업무를 제대로 할 역량도 안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고, 저희도 그거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니까 업무 할 수 있는 사람을 팀에 배정해주세요. 이게 저희 의견 끝입니다. 저희도 정규직인 데 경우씨가 정규직 되었다고 열등감 느끼고 그러는 거 말도 안 되는 일이고요.”


“(피식거리면서) 너희들, 정규직이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거 같냐? 무슨 벼슬인 줄 알아?”

“(후...ㅅㅂ 무슨 이런 완전체가 있지?) 저희가 그런 말을 했나요?”

“너희들이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알겠다. 너네 하수석님한테도 이딴 식으로 얘기하냐?”

“팀장님, 저희가 팀장님이 일 시켰을 때, 우리 업무와 관련된 내용시켰을 때 무조건 싫다고 하고 안 하고 버팅기고 그러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그만!!! 여기까지. 알겠어. 나가봐.”

“네.”


그렇게 자리를 나서려는데, 권팀장이 다시 우리에게 소리쳤다.

“내가 너희들이 이러는 꼴 보기 싫어서라도. 경우 제대로 다른 팀에 보내고, 니들 입맛에 맞는 애 데리고 온다. 알겠냐?”


제발. 그러시길...


참 신기한 게, 우리랑 사이가 안 좋은 와중에 일은 우리(나, 옥반지, 하수석)에게 다 시키고, 그 와중에 이런 식으로 또 일을 넘기려고 하면, 우리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어쨌든, 우리에게 기분이 상했는지 권팀장은 다른 인턴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근데 권팀장에게는, 우리팀에 적절한 인재가 오는 것보다 경우씨가 어느 팀에 가야 능력 없는 것을 숨기고 적응을 잘하며 지낼지가 중요한 것 같았다.


보통 회사에서는, 팀장/본부장이 채용 과정에서 본인이 데려갈만한 직원을 대략적으로는 추려두는 편이었다. 적어도 채용 과정이 끝난 뒤에는 본인의 팀으로 데려갈 직원을 다 초이스 해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뭐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경우씨를 다른 팀에 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권팀장은 우리팀에 직원을 안 받아도 되니까 경우씨를 받아달라고 다른 팀장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팀장들은 한사코 그를 거절했다. 그는 나이도 너무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사회성도 떨어지는 편(사교적이지 않은 편이었다. 오로지 권팀장에게만 잘했음)이어서 팀에 오면 괜히 정규직 TO만 까먹는다는 것이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권팀장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아, 성팀장. 내가 데리고 있어 봐서 잘 알잖아. 경우 진짜 괜찮아. 한 번 받아 줘.”

“아, 걔를 어디다가 써. 우리팀에 올 사람 정해 뒀다니까.”

“아, 이러기야?”

“일은 할 수 있어야지. 다른 팀 보내! 우리 팀은 따로 올 사람 있어.”

“나도 여기 지금 거의 마지막으로 전화한 거야.”

“아니, 권팀장 너무 하네. 다른 팀에서 깐 사람을...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다른 팀들은 다 전문적인 지식 있어야 돼서 안 되고, 갈 수 있는 팀이 그나마 국제나 기획실, 우리 쪽인 거지? 근데 영어는 아예 못하니까 국제 못 가고. 기획은 가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것 같고. 우리가 만만하다 이거지?”

“아니, 성팀장.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만만하긴.”

“권팀장, 걔랑 개인적으로 친한 거 아는데, 그런 애 정규직 시켰으면 그 팀에서 끝까지 책임져. 괜히 걔한테 생색내고 부담은 다른 쪽에 넘기지 말고.”


결국 권팀장과 성팀장은 이날 싸웠다.

며칠 뒤, 성팀장은 해외 출장길에 오른다. 그리고 성팀장이 출장 간 사이, 권팀장이 인사팀에 손을 써서 경우씨를 성팀장의 팀으로 보낸다. 반대로, 성팀장의 팀으로 가기로 했던 인턴을 우리팀에 배치받도록 변경해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성팀장이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날. 성팀장은 우리팀에 찾아와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권팀장! 내가 안 받는다고 했지!”


그 싸움을 인사팀장이 중재하다가, 회의실로 들어가게 되고 한 시간 가량의 토론이 이어졌다. 그들의 토론이 끝나고, 권팀장은 하수석님, 나, 옥반지 이렇게 세 명을 회의실로 불렀다.


“후...지금 이렇게 회의 소집한 이유는, 우리팀에 어떤 인턴이 오게 되는지 안내해주려고...일단, 일단 경우는 우리팀에 남기로 했다.”

“그럼 하수석님 일 서포트 하나요?”

“김현수! 내가 그때 말하지 않았나? 경우는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좋아하고, 또 아직은 제대로 된 업무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우리 팀에 두 명 받기로 했다.”

“네? 정규직 TO가 1명인데 어떻게 두 명을 받아요?”


그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회사에서 정규직 TO 1명 남아있는 곳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인턴을 두 명이나 배정해준다는 것은...


“그것까지 내가 얘기해야 하나? 내가 얘기 끝냈고, 그래서 경우랑 또 다른 남자가 우리팀에 와서 근무할 거고 그 남자애가 하수석님 서포트할 거야.”


그래도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두 명이 오는 거면 경우씨가 저 지경이더라도 일이 돌아가겠지 싶었다. 근데...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우리팀에 갑자기 2명을 줄 수가 있나? 그럴 수가 있나...?


그렇게 의구심을 품고 지내던 중에, 기조팀 주선임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어~ 너네 팀 이제 어떻게 하냐?”

“저희 팀 왜요?”

“인턴.”

“인턴 두 명이나 온다는데요?”

“그래. 폭탄 두 개.”

“네? 폭탄이요? 경우씨는 그렇긴 한데...한 명은 왜요?”

“너네 팀장이 말 안 해? 걔 낙하산이야. 걔 뽑으라고 전화 왔었어. 그래서 너 쟤 못 건드려. 아마 너랑 옥반지가 시중들어야 될지도 몰라. 나이도 너네보다 좀 많고.”

“네? 진짜요?”

“어. 채용 공고 나자마자 우리 회사에 전화 왔었어. 뽑아야 된다고. 그래서 다들 걔 안 받으려고 했어. 니네 팀에 가는 사람 둘 다 폭탄이야.”

“저희 그럼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그냥 망한 거지. 수고해라.”


그랬다. 우리 팀에 새로 오게 된 두 명. 한 명은 낙하산. 한 명은 경우 씨.


미칠 노릇이었다.


일 안 해도 사바사바 잘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장발의 꽁지머리 권 팀장.

우리랑 함께 고생하는 하수석님.

중년 남성들의 뮤즈, 애교머신 핑크빌런 김지수(사과녀).

기*리와 파*메라 소유한 국어국문학과 출신 사진사, 경우씨.

정체불명의 낙하산.

그리고 그 안에서 미쳐가는 나와 옥반지.


이제부터 우리가 한 팀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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