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회식은 언제까지 즐거울까?_(1)

[41~44개월] 이 멤버로 회식합니다.

by 하이히니

정상적인 인턴이 두 명이나 들어온 이후, 자신과 뜻을 함께할 세력을 잃은 사과녀는 줄곧 의기소침해 보였다. 그들에게 잠깐 텃세를 부리기도 했지만, 어느새 위기의식이 느껴졌는지, 나와 옥반지에게 업무를 알려 달라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선임님, 혹시 이거 한글에서 표 두 줄로 어떻게 만들어요? 어떻게 검색해야 될지도 잘 모르겠어서...”

“우클릭해서...셀 테두리/배경 이쪽에 가면...이거 보이죠? 이렇게 하면...”


그녀의 질문 수준은 너무 형편없어서, 일부러 우리와 가까워지려고 질문을 위한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일전에 그녀가 “엑셀 이거 갑자기 숫자가 1.23E+ 막 이렇게 나와요오...제가 뭐 잘못했나봐요오...도와주세요.” 라며 패닉 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일부러 하는 질문이 아니라 그녀의 수준이 저 정도라는 것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의 질문에 나름 적절한 대답을 주곤 했지만, 그녀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본인 상황이 유리할 때는 적대감을 표출했던 사람이, 지금 와서 살가운 톤으로 업무 질문을 하는 것이 너무 당황스럽지 않은가?


그렇게 지내다 얼마 뒤, 김성진 수석이 우리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녀는 김성진 수석이 온 다음부터 다시 나와 옥반지에게 적대감을 표출했다.

“수석니임~ 왜 지금 오셨어요.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아 그래서 내가 지금 왔잖아~”

“저 수석님 없으면 왕따예요...진짜 어디 가시면 안 돼요? 저랑 약속해요 약속.”

“뭐? 왜 왕따야? 우리 예쁜 김주임을 누가 왕따 시켜? 어? 옥선임이야? 김선임이야? 누구야? 어? 아니면 상혁이야? 원경이야? 누구야? 내 밑으로 다 집합하라고 할까? 응?”

“아...아니에요...그러지 마세요...그럼 사람들이 저 싫어해요...”

“에? 진짜 누가 괴롭히는 거야? 이 팀 이거 안 되겠네. 이제라도 내가 와서 다행이지, 솔직히 인턴들이 그럴 리는 없고...옥선임이랑 김선임이 그러는 거지?”

“아...제가 제 입으로 누가 그런다고 어떻게 얘기해요...”


저 상황에서, “아...제가 제 입으로 누가 그런다고 어떻게 얘기해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나와 옥반지를 어떻게 생각할지 불 보듯 뻔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사과녀는, 늘 저런 식의 대답을 했다.


어쨌든, 사과녀는 김수석 덕분에 새로운 동력을 얻었고 그렇게 나름의 길로 정진해 나갔다. 새로운 동력을 얻은 건 권팀장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시간 괜찮으면 회의하면서 커피 한 잔? 가볍게?”

느닷없이 권팀장은 약간 ‘펀쿨섹’ 느낌으로 회의를 소집했다. (이 날 머리를 묶고 오지 않아서 저 얘기 하면서 머리를 찰랑 거리며 넘겼다.)


“다들 아는 사이시겠지만, 이거 참, 새로 온 얼굴들이 많습니다. 이제 김수석님까지 오셨고...이거 참 든든합니다? 이 멤버로 첫 회의니까, 앞으로 업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으면 자유롭게 얘기해보죠. 아! 근데 얘기가 길어지기 전에 간단하게 자기소개? 뭐 편하게. 그냥. 간단하게.”


서로 볼 장 다 본 사이끼리 자기소개라니!


“그럼 제가 먼저...”

김수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가장 늦게 합류하게 되었는데, 다들 얼굴 아는 분들 이어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고, 저는 보통 서울에서 근무할 것 같습니다. 아, 팀원들끼리는 이렇게 얼굴 보면서 일해야 하는데...그죠? 참 아쉽네요.”


서울? 그 소문이 사실인가? 권팀장이 김수석에게, 이 팀에 오는 조건으로 서울 근무와 평가 점수 몰빵을 약속했다는 그 소문이?


지방 이전 이후였기 때문에, 구성원 대부분이 서울을 그리워하며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김수석에게 점수 몰빵 한다는 약속도 진짜일 확률이 높았다. 우리팀에 업무 평가를 받는 정규직은 김수석, 나, 옥반지 세 명이었고, 김수석에게 평가를 몰아줘야 한다면 나와 옥반지는 기준 이하의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아...진짜로 서울에서 근무하세요? 진짜로?”


내가 두 번이나 반복한 ‘진짜로’라는 소리에, 권팀장은 약간 당황한듯 상황에 대한 설명을 늘어 놓았다.


“어. 그게 아무래도 김수석은 하본부장님이 하던 업무를 맡을 거니까? 서울에서 근무하는 게 좋겠지? 아예 발령을 서울로 내달라고, 서울 TO로 가지고 왔다.”

“아...진짜 소문이 맞네...”

“소문? 무슨 소문? 그건 그렇고, 옥반지랑 현수는 원래 업무가 많았으니까 인턴들한테 알려주면서 같이 하고. 적절하게. 근데 하나 걸리는 게... 사실 지금 지수가 무기계약직이기도 하니까 조금 더 업무를 제대로 해줬으면 하거든?”


오? 권팀장이 갑자기 바른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지수가 하는 일은 간단한 서무 업무들 말고는 딱히 없으니까, 그건 새로 오신 인턴 분들이 적절히 나눠서 하고. 앞으로 지수는 김수석 도와서 국회 대응 업무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들?”


김수석과 함께 국회 대응이라는 소리에 사과녀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진짜요오? 전 너무 좋아요오! 그럼 저도...서울...에서 일해요?”

“그래야지.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통 제가 의견을 내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


권팀장은 ‘의견을 내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나와 옥반지를 쳐다봤다.


나와 옥반지를 쳐다본다고? 그럼 우린 그의 기대에 부응해주는 수밖에! Yes!!!!


“근데, 김수석님은 서울 TO로 오신 거니까 그냥 근무지가 서울이신 거죠?”

“그렇지.”

“김지수 주임은 서울에서 근무하는 건가요, 아니면 서울로 출장인가요?”

“사실...그게 출장 처리로 보내야 할 것 같아. 앞으로 국감도 있으니까 몇 달 정도 서울로 출장 처리하는 게...”

“근데, 출장 처리하면 하루에 교통비 제외하고 계속 출장비 더 받는 거잖아요. 예산도 별로 없는데, 국감 직전도 아니고 그때까지 출장 처리하는 건 무리 아닌가요? 그리고, 국감 대응이면 취합이 많잖아요. 자료 작성하는 사람들이 다 여기에 있는데, 한 명은 서울에 있고 한 명은 여기 남아 있는 게 맞지 않을까요?”


내 말을 듣고 권팀장은 예전처럼 다시 이죽거리며 나를 비웃었다.


“그래. 이렇게 딴지를 걸어야지.”

“팀장님, 현수가 딴지 거는 게 아니라 업무 하는 것 자체가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 그렇죠. 국감 자료 쓰는 사람들이 다 여기에 있는데 한 명은 여기 남아서 그 사람들이랑 일정 얘기도 하고 자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써야 되는지 얘기도 하고 대응해야죠.”


역시. 내 편을 들어주는 건 옥반지뿐이었다. 그때, 다시 사과녀가 시동을 걸었다.


“선임님...죄송해요오...제가 또 뭐 잘못한 거죠? 저는...그냥...아...제가 잘못했나 봐요... 죄송해요...”


그러면서 그녀는 당황하는 척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자 김수석은 참을 수 없었는지,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왜 이런 뻔한 레파토리에 장단맞춰 주는 사람이 있는걸까?)


“진짜 이 팀 여자들 기세다고 권팀장이 그렇게 걱정을 하더니. 이거 진짜네? 우리나라는 진짜 예쁜 여자가 살 수가 없다니까? 지수가 잘못한 게 뭐야? 도대체? 어? 그냥 일 열심히 하겠다는데. 웃기네 진짜. 그럼 지수를 서울 TO로 바꿔! 그럼 되겠어?”

“아니에요. 수석님. 잘은 몰라도 제가 잘못한 게 있을 거예요... 죄송해요.”


이러더니 사과녀는 회의실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하...정말 선즙필승이구만.


“다들 그만! 너희들 뜻대로 지수 출장 건은 좀 더 고려해볼게. 그건 그렇고 오늘 간단하게 회식할까 하는데, 다들 시간 어떠신지? 옥반지랑 현수는 불참이지?”


권팀장은 황급히 말을 돌리며 회식을 제안했다. 그의 회식 제안에, 김수석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좋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그의 얼굴 표정은 뭔지 모르게 음흉한 구석이 있었다.


상혁씨와 원경씨도 갑작스러운 회식 제안에 약간 당황했지만, “저희도 좋습니다.”라는 대답을 날렸다. 그리고 나는, 평소라면 절대 회식에 가지 않았겠지만 왠지 모르게 ‘옥반지랑 현수는 불참이지?’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이상하게 회식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원경씨가 말했다.

“선임님, 선임님들도 같이 가요. 선임님들 있어야 재미있어요!”


“현수야, 오늘은 회식 가자! 원경이가 가자고 하는데 가야지~”

아마, 옥반지도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괜히 저런 얘기를 들으니까 기필코 회식에 참여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 그렇다면 나도 함께 한다!

“언니랑 원경씨 가는데 나도 가야지~”


우리가 회식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싫어하던 권팀장은, 막상 우리가 회식에 간다고 하자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권팀장, 김수석, 나, 옥반지, 사과녀(울먹거리며 뛰쳐 나가더니 회식은 참여하겠다고 함), 원경, 상혁은 회식 장소로 향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늘 딱 한 군데.


그루미 문이었다. 약간 나이 많은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그루미 문은, 늘 어두웠고 올드팝과 재즈가 흘러나왔다. 무슨 커미션이라도 받는 건지 권팀장은 늘 회식 장소로 그루미 문을 선택했다.


그루미 문에서는 제대로 된 식사 메뉴를 팔지도 않았다. 심지어 권팀장이 보쌈이나 치킨이 먹고 싶은 날에는, 그루미 문에 가서 보쌈과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 곳의 사장님은, 보쌈과 치킨을 시켜주고 그 대가로 시킨 음식의 30% 정도를 수수료로 챙겼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날, 그루미 문에서 우리의 테이블 배치는 이랬다.


나-옥반지 / 김수석-권팀장

원경-상혁 / 사과녀


얼핏 보면, 테이블이 분리되어 있어서 즐거운 회식 자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날의 자리배치. 이 날 우리에겐 무슨 일이 생겼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6. 진짜 인턴이 왔다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