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눈치병
나의 남편에겐 치유할 수 없는 병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같이병'. 무엇이든 같이하길 바라는 병. 같이병은 여행에서 특히 그 증세가 악화된다. 같이 가야 하고, 먹어야 하고, 찍어야 한다. 함께하는 건 사실 나쁜 게 아니지만, 이 병이 정말 싫을 때가 있다. 바로 같이 사진을 찍어야 할 때다. 셀카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우리 둘이 나오는 사진.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아마도 4년여의 유학생활을 하면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여러 상황에 눈치를 볼 때가 많다. 그 시절엔 어떤 이유로든 주목받는 게 싫었고, 민폐 끼치는 게 싫었다. 동방예의지국의 세련된 에티튜드를 보여주고 싶은 그런 허세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런 사고방식이 몸에 밴 나는 아닌 척 하지만 상당히 주위의 눈치를 보는 편이다. 어울리지도 않게. 이렇게 사는 게 스스로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게 예의가 바르다거나 눈치가 빠르다고 해주었기 때문에 조금 피곤할지라도 이렇게 지내는 게 나의 삶이 됐다.
이 눈치에 지금까지 딱 한 사람 싫은 내색을 한 분이 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엄마다. 빠른 눈치와 행동, 이거 다 엄마한테서 온 건데 나한테 그럼 어떡해. 그래도 엄만 싫은 건 딱 싫은 사람이라 나의 행동이 여러 사람에게 좋을지 몰라도 정작 챙겨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을 서운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그땐 엄마의 말을 흘려 들었다.
여하튼 이런 나에게 오빤 여행을 가면 꼭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흔히 말하는 포토스폿에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줄을 서서,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뒷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카메라 앵글에 굳이 같이 들어가야 하는 게 정말 곤혹스러웠다. 내 기준에선 이건 민폐니까.
크로아티아에서도 같이병은 쉬히 낫지 않았다. 나쁜 마음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남편의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사실 좁은 길을 가야 하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선 참기 어려웠다. "같이 찍자" 졸라대는 오빠에게 "또 같이병이야. 그놈의 같이병"하고 핀잔을 줬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나도 참 야박하다. 하지만 그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 우리 때문에 기다리고, 혹시라도 이 좁은 길에 누구라도 다치면 어떡하지? 민폐다 민폐. 오빠 때문이라고 혼자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오빠의 반응이었다. 내가 그렇게 자기에겐 못되게 굴고 다른 사람 때문에 전전긍긍하는데도 허허실실이다. 넉살 좋게 "쏘리. 땡큐" 외치며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니 혼자 유난을 떤 것 같아 멋쩍어졌다. 어차피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이 여기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사진 이외에도 까칠하게 같이병을 운운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말라고 잔소리할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바로 엄마가 말하던 그거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정작 못 챙기는 것. 그때까진 몰랐다. 이놈의 같이병보다 내 눈치병이 더 심각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