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의 절정
여행 중 충만한 행복으로 온화한 기운이 마구 솟아날 때가 있다. 나는 그때 직감한다.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은 다양하게 적용된다.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 내가 꼭 보고 싶었던 그림을 봤을 때, 어처구니없게도 한국에도 있는 예쁜 꽃을 봤을 때도 해당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어떻게 내게 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막연한 행복. 감사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역시 행복으로 가득 찬 순간이 내게 왔다. 그것도 길게.
이번 여행에선 크리크베니카(Crikvenica)에서 보냈던 1박 2일이 그랬다. 사실 아직도 난 이 지역의 이름이 한국말로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크리크베니카라고도 나오고 치리크베니차라고도 나오는 곳. 크로아티아에서도 한국에서도 열심히 이 특별한 곳에 대해 알고 싶어 검색을 해봤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여행 책에 제대로 소개도 되지 않은 이 작은 마을을 난 이번 여행의 절정으로 꼽고 싶다.
크리크베니카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모든 것이 느긋하고 여유로웠던 곳. 가장 붐비던 레스토랑에서 조차 서두르는 것이 오히려 예의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작은 마을. 내가 여행에서 가장 찾고자 하는 '여유에 흠뻑 취해 유유자적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작은 마을에서 피어나는 온화함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가 됐다. '우리 부부는 다르다'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떠들어대던 것조차 멈출 수 있었다.
한편으론 이 곳에 나 혼자 온 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가능한 이곳에서 오래 있고 싶었기 때문. 크로아티아 여행의 진수 중 하나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라고 들었지만 난 그곳마저도 최대한 늦고 싶었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다음을 스킵하고 크리크베니카에 더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하는 여행에서 이건 이기적인 생각이다.
더욱이 크리크베니카는 내가 아니라 남편 덕분에 알게 된 곳이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로 넘어가기 전, 거쳐가는 곳으로 오빤 크리크베니카를 선택했다. 하지만 난 안다. 바로 몇 해 전이라면 이런 작은 마을에 오빠는 절대로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을 거다. 보고 싶고 궁금한 게 많은 오빠는 빠듯하더라도 플리트비체에 그날 도착했을 거다. 이젠 많이 보는 것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이 더 좋다고 하는 남편이지만 난 다 안다. 다음 날 크리크베니카에서 차오른 온화한 마음으로 플리트비체로 떠날 수 있었다. 이기적인 마음은 접어두고 아주 기쁘게. 긴 여운을 가지고.